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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 그만의 방식으로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완성된다.
12  쭈니 2017.11.06 18:37:24
조회 152 댓글 1 신고

 

 

감독 : 정지우

주연 : 최민식, 박신혜, 이수경, 류준열, 이하늬

개봉 : 2017년 11월 2일

관람 : 2017년 11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자식은 언젠가 둥지를 떠난다.

 

제가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보기에 흠뻑 빠지기 시작했던 몇 년전, 저는 웅이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네가 크면 친구들과 영화본다며 나랑은 영화보러 안갈거지?" 그러자 웅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내 친구중에 아빠처럼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는 없을테니, 커서도 아빠랑 영화보러 다닐께요."라며 제 어깨를 토닥여주더군요. 그땐 웅이가 정말 기특했고,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웅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지만 언젠가는 제가 아닌, 친구 혹은 연인과 더 자주 영화를 보러 다닐 것임을...

지난 토요일, 웅이는 친구와 [토르 : 라그나로크]를 보러 가기로 했다며 들떠 있었습니다. 비록 그 전주에 저와 함께 [토르 : 라그나로크]를 보긴 했지만, 친구와 아이맥스로 다시한번 보겠다고 하네요. 순간 '이제부터 시작인가?' 싶었습니다. 하긴 저도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다녔던 것이 웅이 나이 때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예상대로 웅이는 친구와 [토르 : 라그나로크]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음엔 [저스티스 리그]를 함께 보기로 했다며 제 눈치를 살핍니다. 저는 쿨하게 "친구와 보고 싶으면 봐!"라고 승낙했지만 약간은 씁쓸했습니다. 어쩌면 다음주 주말에 웅이는 친구와 함께, 그리고 저는 혼자 [저스티스 리그]를 보러 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웅이가 친구와 함께 [토르 : 라그나로크]를 보러 간 사이, 저는 혼자 [침묵]을 보고 왔습니다. 최민식의 열연이 돋보인다는 [침묵]을 보며 느낀 것은 의외로 임태산(최민식)의 부성애였습니다. 자신의 약혼녀 유나(이하늬)를 살해한 죄로 법정에 선 딸, 미라(이수경). 태산은 사랑하는 약혼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잠시 잊고, 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라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뒤쫓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태산이 발버둥쳐도 둥지를 떠나려는 자식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친구들과 영화 보기를 시작한 웅이를 막을 수 없는 저처럼...

 

내게만큼은 진실을 말해야해.

진실을 말하면 도와줄 수 있지만,

거짓을 말하면 도와줄 수 없어.

 

 

그에겐 정말 그날의 진실이 중요했던 것일까?

 

[침묵]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태산 그룹의 총수 태산은 유명가수인 약혼녀 유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들 사랑의 단 한가지 장애는 태산의 딸, 미라입니다. 유나가 죽은 엄마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한 미라는 일부러 삐뚤어지며 태산과 유나에게 반항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라는 유나가 젊은 시절 찍은 섹스 동영상을 보게 되고, 태산과 데이트중인 유나를 불러냅니다. 그리고 그날 밤 유나는 죽은채 발견됩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미라는 만취했던 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산은 일단 미라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태산의 재력이라면 업계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할 수 있을텐데, 그는 최고의 변호사들을 마다하고 초짜 변호사인 최희정(박신혜)을 미라의 변호사로 선임합니다. 태산은 미라가 다른 변호사들의 접견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실제 미라와 희정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태산의 면회조차 거부하던 미라는 희정에게만큼은 선생님이라 부르며 잘 따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 뿐일까요?

어쩌면 태산은 미라의 무죄를 믿는 변호사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변호사들은 미라를 심신미약으로 몰아 형을 줄이는데에만 몰두하지만, 희정만큼은 미라가 살인을 저지를 아이가 아니라며 무죄를 확신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태산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든 정황상 범인은 미라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딸을 살인자로 감옥에 보낼 수 없었던 태산은 미라의 무죄를 믿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닌 거짓이라 할지라도 태산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죠.

 

정말 미라가 무죄라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당신은 미라의 변호사입니다.

 

 

진실을 쫓는 태산의 방식

 

[침묵]은 기본적으로 법정 스릴러 영화입니다. 유나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미라와 그녀의 변호를 맡은 희정, 그리고 희정의 전 남편이자 검사인 동성식(박해준)의 치열한 진실공방이 이 영화의 주된 구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독자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쫓는 태산이 이야기가 곁들여집니다. 그런데 영화 속 진실을 쫓는 태산의 방식이 남다릅니다. 그는 성식을 매수하려하기도 하고, 유나의 사생팬인 김동명(류준열)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그날의 진실이 담긴 CCTV를 빼앗기 위해 불법 침입을 감행하기도합니다. 그러한 태산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스릴러 영화에서 진실을 쫓는 보편적인 주인공이 아닌, 오히려 진실을 감추려는 악당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지금까지 태산이 일을 해왔던 방식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매수하고, 무엇인가를 빼앗는 것이 그에겐 익숙했던 것이죠. 그렇기에 이번 사건도 그와 똑같이 해결하려합니다. 하지만 벽에 부딪힙니다. 성식에게 검찰총장 자리를 제안하지만 성식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동명에게 CCTV 원본을 넘겨주는 댓가로 거액의 돈을 제시하지만 동명은 그따위 돈에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태산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결해야하는 위기에 처하게된 것이죠.

[침묵]의 반전은 바로 그러한 태산의 처지에서 비롯됩니다. 만약 태산의 방식대로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면 태산은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식과 동명은 태산이 지금까지 만나왔던 류의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의 방식이 통하지 않았고, 그로인하여 태산은 모험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것이 이 영화의 키포인트이며, [침묵]이 영리한 스릴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진짜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돈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랑... 친구... 가족... 그런게 더 중요하다고.

 

 

태산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이후 영화의 스포가 있습니다.)

 

유나가 죽은 그날의 진실을 쫓던 태산은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태산 역시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근거없이 미라의 무죄를 믿는 희정처럼 태산 또한 딸의 무죄를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미 사랑하는 유나를 잃은 태산의 입장에서는 딸마저 잃을 수 없었기 떄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믿고 싶었던 것과 다른 진실 앞에서 '침묵'을 결정합니다.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미라를 진실 앞에서 구해내려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음을 알게되자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합니다.  

사실 영화의 첫번째 반전인 태산이 범인이라는 결말은 식상해도 너무 식상했습니다. 특히 사람의 목숨값이 모두 똑같은줄 아느냐고 강변하는 태산의 궤변은 '이 영화가 정말 시사회에서 잘 만든 스릴러라는 칭찬을 받았던 영화가 맞나?' 라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정지우 감독은 태산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통해 그가 범인일 수도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췄습니다. 태산의 방식은 진실을 쫓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진실을 은폐하는 악당에 더 어울리기에 결국 동명의 CCTV가 태산을 범인으로 지목했을때 나도 모르게 '너무 식상하잖아.'라고 투덜거리게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함정입니다. 태산이 치밀하게 파놓은 함정. 어쩌면 이것 또한 최민식의 이미지를 이용한 정지우 감독의 계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민식은 최근 [특별시민]에서 부정부패에 찌든 서울시장 변종구를 연기했고, 종구는 자신이 저지른 뺑소니 사건을 딸에게 뒤집어 씌울 정도로 권력 앞에 무정한 인물이었습니다. ([특별시민]속 종구의 딸, 변아름을 연기한 배우 역시 이수경입니다.) 그러한 [특별시민]의 종구와 [침묵]의 태산은 교묘하게 겹쳐지며, 태산이 유나를 죽인 범인이라는 첫번째 반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만듭니다.

 

마땅히 죽을만한 년이 죽은거야.

이 세상 목숨값이 전부 같은 줄 알아?

 

 

최악의 순간, 모든 것이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된다.

 

태산이 진범이었다는 첫번째 반전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침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특히 성식이 희정의 변호사 사무실에 와서 "네가 아니었다면 믿지 않았을거야."라며 태산이 숨긴 USB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태산이 의도한 계획임을 깨달았습니다. 태산을 성식을 속이기 위해 희정을 이용했고, 그러한 그의 계획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결국 그는 미라의 죄를 모두 뒤집어쓴채 아버지로써의 희생을 결심합니다.

사실 자식의 죄를 뒤집어쓰는 아버지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1996년 영화인 [비포 앤 애프터]에서는 여자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한 아들 제이콥(에드워드 펄롱)에 대한 어머니 캐롤린(메릴 스트립)과 아버지 벤(리암 니슨)의 상반된 대처를 그리고 있습니다. 과연 진실을 덮는 것이 제이콥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당한 죄의 댓가를 받도록 이끄는 것이 제이콥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하지만 태산의 선택에 대한 논란을 잠시 접어두고나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태산의 뒷모습에서 묘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유나와 비슷하게 생긴 태국의 여성을 바라보는 태산의 애틋한 모습... 유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뜨거운 눈물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느 기자는 [침묵]의 시사회를 마치고 '최민식의 연기에 또 설득당했다.'라고 썼습니다. 영화의 첫번째 반전까지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영화가 끝나고나니 그러한 기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임태산의 부성애와 순애보. 이렇게 법정 스릴러로 시작한 [침묵]은 반전을 거치면서 한 남자의 사랑으로 새롭게 시작되며 영화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최민식의 눈물에 설득당한채 먹먹함을 안고 극장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람에겐 각자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진실을 쫓는 태산의 방식대로

부성애를 표현하는 것 역시 태산만의 방식이었다.

[침묵]은 태산의 방식으로 스릴러가 되었다가,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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