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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 진짜 중요한 대결은 병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2  쭈니 2017.09.20 16:52:20
조회 220 댓글 1 신고

 

 

감독 : 원신연

주연 : 설경구, 김남길, 김설현, 오달수

개봉 : 2017년 9월 6일

관람 : 2017년 9월 1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주말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 영화

 

월요일 오후, 해야할 일은 산더미같지만 온 몸에 나른함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앓고 있다는 월요병이 또다시 저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월요일 오전엔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가지만, 점심 식사를 하고난 이후인 오후만되면 나른함과 무기력증이 동시에 저를 덮칩니다. 그럴땐 내 자신을 위한 당근이 필요합니다. 저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퇴근 후 영화보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아메리칸 메이드], [베이비 드라이버] 등 보고 싶은 영화는 많았지만 그 중에서 저는 개봉한지 2주가 지난 [살인자의 기억법]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살인자의 기억법]을 선택한 이유는 조금은 느슨해진 제 일상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칸 메이드]와 [베이비 드라이버]의 경우는 경쾌한 리듬의 할리우드 오락영화이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마라는 파격적인 소재의 스릴러 영화입니다. 이런 스릴러 영화는 마음의 여유가 없을때 보면 후유증이 꽤 오래 가지만, 지금처럼 뭔가 느슨해진 기분이 들때 보면 정신이 바짝 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살인자의 기억법]의 관람을 차일피일 미뤘던 이유는 이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설경구, 김남길이라는 믿음직한 주연 배우가 버티고 있고, [세븐 데이즈]라는 꽤 잘 만들어진 스릴러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의 영화이기에 믿음이 갔지만, 그래도 더 정확한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영화가 개봉 첫째주에 이어 둘째주에도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최종적으로 [살인자의 기억법]을 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관객의 결정은 대부분 옳았고, 특히 2주 연속 1위를 했다는 점은 영화에 대한 입소문도 나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마의 기억을 쫓아라.

 

[살인자의 기억법]은 앞서 언급했듯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영화의 소재에서부터 특별함이 부여됩니다. 우선 영화의 주인공이 연쇄 살인마라는 점이 특별합니다.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에서는 연쇄 살인마를 뒤쫓는 경찰이 주인공이고, 연쇄 살인마는 그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살인자의 기억법]은 연쇄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새로움을 추구한 것입니다.

연쇄 살인마 김병수(설경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위해서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를 위한 변명을 합니다. 그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첫번째 살인을 시작했고, 주변의 인간 쓰레기를 처단함으로써 자신의 살인은 청소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며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이렇게 병수가 연쇄 살인마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영화 초반에 정성껏 설명함으로써 [살인자의 기억법]은 병수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시킵니다.

이 영화의 두번째 특별함은 알츠하이머입니다. 우리에겐 치매로 더 잘 알려진 알츠하이머는 최근의 기억부터 점차 잃어가는 퇴행성 뇌질환입니다. 병수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병수의 증상은 영화의 스릴을 더욱 높입니다. 병수는 우연히 민태주(김남길)를 만나고, 그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연쇄 살인의 범인임을 직감하지만 태주에 대한 기억은 알츠하이머로 인하여 자꾸만 잊혀만갑니다. 급기야 태주는 병수의 외동딸인 은희(김설현)에게 접근하고, 태주로부터 은희를 지켜기 위해서는 자꾸 사라지는 기억을 쫓아야만합니다. 이렇듯 [살인자의 기억법]은 연쇄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알츠하이머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색다른 이야기를 제 앞에 풀어놓습니다.

 

 

 

늙은 연쇄 살인마와 젊은 연쇄 살인마의 대결

 

결국 [살인자의 기억법]은 17년전 살인을 멈춘 연쇄 살인마 병수와 현재 살인을 계속 하고 있는 연쇄 살인마 태주의 대결로 압축됩니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 전개는 [살인자의 기억법]이 첫 시도는 아니었습니다. 2007년에 개봉한 정길영 감독의 스릴러 영화 [우리 동네]에서 이미 선보인바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연쇄 살인마 효이(류덕환)와 그의 살인을 모방한 살인마 경주(오만석), 그리고 사건을 파헤치는 강력계 반장 재신(이선균)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살인자의 기억법]과 비교해본다면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우리 동네]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은희의 존재입니다. 은희는 병수의 유일한 약점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태주는 병수와의 대결에서 적극적으로 은희를 이용합니다. 은희에게 접근해서 그녀의 남자 친구가 되어 끊임없이 병수를 압박하고 영화의 후반부에는 그녀를 납치하기도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본적으로 설경구와 김남길이라는 연기 잘 하는 두 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웁니다. 그렇기에 걸그룹 출신으로 연기력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김설현의 캐스팅은 그 자체만으로 논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신연 감독의 의도는 확실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은희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연기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설현을 캐스팅해야만 했던 이유입니다.

병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첫 살인을 했고, 그 이후에도 인간 쓰레기들을 죽였지만 아무리 영화가 병수에 대한 변명을 해도 그가 연쇄 살인마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관객이 병수와 태주의 대결에서 확실히 병수의 편에 서게끔 하려면 병수가 태주와 싸워 지켜야만했던 순수의 존재가 필요했고, 그것이 은희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김설현은 굳이 연기를 잘하지 않아도 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보호 본능을 일으킬 매력만으로 충분했으니까요.

 

 

 

17년전 마지막 살인, 거기에 답이 있다. (이후 영화의 스포 포함)

 

이제 병수와 태주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 대결은 병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병수는 한때 엄청난 완력으로 맨 손으로 사람들을 죽였지만, 지금은 늙고 병든 중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태주는 젊고 건강합니다. 게다가 그는 경찰이기에 때문에 정보력에서도 병수를 압도합니다. 특히 병수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은희와 알츠하이머. 이 두가지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태주와의 대결은 해보나 마나 질 것이 뻔합니다. 병수는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은희를 수녀원에 있는 누나에게 맡기고,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녹음하며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은 제게 대결을 요청합니다. 하긴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영화와 관객 간의 두뇌 싸움임을 감안한다면 꽤 적절한 시점에서의 대결 요청이었습니다. 첫번째 대결 주제는 17년전 사건의 진실입니다. 병수는 17년전 살인을 한 후 집에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며 뇌를 다쳤고, 그 후유증으로 알츠하이머를 앓게됩니다. 영화 초반 병수는 일기를 쓰며 17년전 마지막으로 그가 죽인 여성의 살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살인에 대해서는 인간 쓰레기 청소라며 정당성을 부여했던 그가 마지막 살인의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뭔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병수의 절친인 안소장(오달수)이 여기에 미끼를 투척합니다. 17년전 홀연히 사라진 담배가게 아가씨의 이야기를 꺼내며 마치 병수가 마지막으로 죽인 여성이 담배가게 아가씨라는 인식을 관객에게 살짝 심어놓은 것입니다. 꽤 영리한 함정입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터 병수 아내의 부재가 계속 신경쓰였던 저는 처음부터 병수의 마지막 살인이 아내였음을 눈치챘습니다. 하지만 은희가 병수의 딸이 아니었다는 반전은 의외였습니다. 어쩌면 병수는 은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은희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기억을 잊어야만 했고, 그것은 곧바로 마지막 살인에 대한 기억까지도 지워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낳은 정도 중요하지만 키운 정도 중요하기에, 살인마 병수로부터 은희를 지키기 위해 아빠 병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연쇄 살인마 병수와 아빠 병수의 대결

 

은희가 병수의 친딸이 아님이 밝혀지는 장면을 본 후 저는 [살인자의 기억법]이 더욱 흥미로워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이 영화가 단순히 병수와 태주의 대결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대결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중요한 대결이란 연쇄 살인마 병수와 딸바보 병수의 대결입니다. 17년전 불륜에 빠진 아내를 죽이며 은희가 자신의 딸이 아님을 알게된 병수는 은희만큼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아내를 죽이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는 이미 마음 속으로 은희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실제로 교통사고 후 집에 돌아온 병수는 어린 은희에게 "누가 네 아빠야!"라며 죽이려합니다. 하지만 때마침 교통사고 후유증에 의한 알츠하이머 증세가 시작되고, 은희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연쇄 살인마 병수와 아빠 병수의 대결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아빠 병수의 기세가 워낙 대단했기에 17년 동안 연쇄 살인마 병수는 존재감이 희미해집니다. 병수의 살인 행각이 17년전 멈춰버린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태주와의 만남을 계기로 연쇄 살인마 병수는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는 은희의 목을 조르고, 태주가 은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에는 은희를 태주에게 보내버립니다. 영화 후반부, 은희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태주에게 은희가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 역시 다름아닌 병수입니다. 병수의 내면 깊숙히 숨어 있던 연쇄 살인마 병수는 이렇게 끊임없이 은희를 죽이려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아빠 병수가 막아섭니다. 태주에게 납치된 은희를 구하러가며 그는 녹음기에 "은희는 내 딸이다."라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합니다. 은희를 죽이려는 태주를 온 몸으로 막아섭니다. 그리고 태주는 결국 죽인 후에야 모든 짐을 내려 놓습니다. 은희에게 내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으니 넌 살인마의 딸이 아니라고 위로하며... 이렇듯 병수의 내면 속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마 병수와 아빠 병수의 대결은 [살인자의 기억법]을 더욱 흥미로운 스릴러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태주와의 대결에서 아쉬웠던 점

 

하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후반부 병수와 태주의 맞대결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병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줄 알았던 안소장은 예상대로 허무하게 태주에게 죽임을 당하고, (병수는 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경찰들은 병신들이다.') 이제 병수 혼자 태주와 맞서야 합니다. 그런데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동안 쌓아올린 스릴러적 긴장감이 아닌 액션적 쾌감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17년전 비밀이 벗겨지며 긴장감이 한참 고조되었는데,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 그러한 긴장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셈입니다. 저는 차라리 태주가 은희를 죽이고 싶었던 연쇄 살인마 병수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면 스릴러적 긴장감이 더 살아났을 것 같습니다.  

태주가 은희에게 자신이 여자에 대한 증오를 갖게된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원신연 감독의 의도가 뒤늦게나마 태주의 살인에 대해서도 측은함을 부여함으로써 병수와 태주의 대결을 동등하게 만들어 싶었던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태주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유 대신 그냥 이유없는 연쇄 살인마로 남는 것이 더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태주의 사연이 병수와의 대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민태주는 살아있다.'라는 병수의 한마디가 약간의 여운을 남기긴 했지만, 병수가 기억을 잃는 것 뿐만 아니라 오래전 자살한 누나를 수녀로 기억 조작을 한 것으로 미뤄봐서 태주는 실제 살아 있는 것이 아닌 병수의 기억 속에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신연 감독은 병수의 마지막 한마디로 스릴러적인 열린 결말을 선보이려했지만, 이미 영화는 후반부부터 스릴러보다는 액션에 치중했기에 너무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원작인 김영하의 소설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마지막 순간까지 반전이 있다라고 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차라리 원작에 충실했으면 어땠을런지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희를 죽이고 싶은 살인마 병수와

은희를 지키고 싶은 아빠 병수의 대결이 아닐까?

살인마 병수는 은희를 목조르고, 태주에게 보내버리고, 숨어 있는 곳을 알려준다.

아빠 병수는 스스로의 기억을 지우고, 태주와 맞서고, 은희는 내 딸이라고 녹음한다.

이 둘의 싸움이 병수와 태주의 싸움에 가려진 것 같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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