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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Okja
11  후니캣 2017.07.21 08:43:32
조회 249 댓글 0 신고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에게 옥자는 10년 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가고,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극비리에 옥자를 활용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까지.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서,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여정은 더욱 험난해져 간다.”






참고 : http://www.djuna.kr/xe/review/13257381

참고 :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33598

참고 : http://movie.naver.com/movie/magazine/news.nhn?section=main&office_id=140&article_id=0000033590

참고 : http://movie.naver.com/movie/magazine/news.nhn?section=main&office_id=140&article_id=0000033591

참고 :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7699






‘플란다스의 개’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살인의 추억’을 통해서 주목하게 되었으며 ‘괴물’, ‘마더’, ‘설국열차’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영화 ‘옥자’는 우선은 영화에 대한 평가에 앞서 제작부터 넷플릭스가 참여했다는 점 때문에 영화 외적으로 먼저 주목을 받았었다.


어떤 방식으로 제작자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들이 어떻게 영화에 개입되었는지는 상세히 알 수 없고, 배급되고 배포되는 과정에서의 다른 점(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는 점)이 갖고 있는 특이성에 대해서도 크게 말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어떤 식으로 보느냐에 대한 고민과 논란은 이미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이고 다만 이런 식으로 이것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불거진 것이 조금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옥자’가 만들고 있는 웃음들처럼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만들 뿐이다.


그런 소란보다는 오히려 넷플릭스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특별하게 개입하지 않아 마음껏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과 4K의 화질-해상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알렉사65 카메라로 디지털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다리우스 콘쥐 촬영감독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2007년에 시작해서 2017년에 마무리되는 미자와 옥자의 모험극이며 소동극인 ‘옥자’는 ‘살인의 추억’ 이후 항상 주목받고 뛰어난 완성으로 칭찬을 받던(약간의 딴소리를 한다면 개인적인 평가지만 사람들이 ‘설국열차’를 왜 그렇게 좋게 평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고 ‘설...’이 실패작까지는 아니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영화였기 때문에 다들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언론에서도 무척 띄어주기도 했고.


전반적으로는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대체적인 평가와는 달리 ‘옥자’ 또한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와 더불어 이번에도 좋지 못한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불협화음으로 가득하고 덜컹거리면서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갸우뚱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말해야 할까? 좋은 점을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좋지 않은 부분들만 눈에 들어온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실패작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들쭉날쭉하면서 어색하고 뭔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대로 된 흐름이나 분위기를 잡지 못하고 중심 없이 들떠 있기만 한 것 같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설국열차’도 좋지 않게 생각했지만 ‘옥자’는 그보다 더 좋지 않은 완성이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설...’은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외국 영화였다면, 반대로 ‘옥자’는 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한국 영화라고 생각되어서인지 이야기를 부풀리고 해외 관객과 국내 관객 모두를 고려하다보니 내용이나 대화들 그리고 웃음을 만들려고 하는 모든 순간들이 전부 갈팡질팡하면서 뭘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의식했던 것일까?


‘옥자’는 어쩌면 처음에는 그냥 한국에서 한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이야기도 이리저리 덧붙여지고 수정되는 과정이 있어서 이처럼 매끄럽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혹은 너무 많은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지 못한 결과물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는지 허둥지둥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들을 낱낱이 말하려고 하는 내 기분 나쁨은 어째서일까? 뭐가 그렇게 싫어서 이리저리 그것들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옥자’는 강원도 산골에서 소박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부풀리고 덩치를 키워서 뉴욕으로까지 향하고 있으며 반려동물과의 각별한 교감이나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들 그리고 온갖 풍자들이나 유전자 조작과 먹거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 등등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보여주겠다는 욕심 때문인지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생각이 많았고 욕심이 컸다.


‘이웃집 토토로’와 ‘E.T.’ 그리고 이런 저런 영화들을 봉준호 감독만의 방식으로 이리 뒤틀고 저리 뒤튼다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결과물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활력이 없어 보인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슈퍼 돼지

유전자 조작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생각해낸 슈퍼 돼지 선발대회

슈퍼 돼지 옥자와 깊은 교감을 나누는 소녀 미자

그 둘이 함께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지내는 모습들


굳이 전체 2시간의 상영시간 중 30여분을 옥자와 미자가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를 보여주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감독의 의도에 동의하지 않게 된다.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지만 그래야만 했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들의 관계를 더 이해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원도 산골에 대한 묘사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겠다는 방식에서의 전형적이고 진부한 설정들(지게, 오래된 TV 등등)은 차라리 이걸 한국의 어딘가가 아닌 중동의 어딘가로 했다면 더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굳이 한국의 어딘가를 배경으로 했을 필요가 있었을까?


옥자를 데려오겠다며 미자가 막무가내로 도시로 향해 둘이 다시 만나기까지의 과정도 풍자와 웃음을 만들려는 것은 알겠지만 영 이상하게만 보일 뿐이다. 


예를 든다면 옥자를 되찾으려고 미자가 미란도 그룹 건물로 향했을 때 그곳은 분명 거대한 건물이었지만 옥자가 커다란 화물차 안에 갇혀 차가 출발한 다음 갑작스럽게 장소는 골목길로 가득한 허름한 동네로 뒤바뀌게 된다.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일부러 그런 곳에서 미자가 뜀박질을 하게 만들게 하려고 그리고 차에 뛰어드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장소를 뒤적거렸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상할 정도로 앞뒤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유전자 조작, 동물보호, 동물학대, 먹거리 문제와 같은 부분들을 진지하게 다루겠다는 생각이라면 동물해방전선 ALF 를 그런 식으로 우스꽝스럽게 보여줘야만 했을까? 뭐든 재미를 계속해서 만들려고 했던 것 같고 그런 욕심이 영화의 완성을 더 단단하게 하기 보다는 영화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만 계속 들도록 만든다. 그들을 마지막까지 웃음거리 이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을 풍자하려고 하는 것이었고 이럴 것이면 슈퍼 돼지로 가득한 삭막하고 어두운 도살장과 거대한 농장에서는 왜 그렇게 진지하려고 했던 것인가?


이것도 저것도 다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다가 ‘옥자’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없어진다.


재미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뭐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으로 가득하고 그래서인지 자연스럽지 않고 활력 있어 보이지만 오히려 지쳐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은 울상인 느낌?


결국에는 옥자와 미자는 만나게 되고 그 이후에 도심에서 도망치고 지하상가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과정은 볼만한 것이 없는 이 영화에서 그나마 볼만한 볼거리를 만들고 있다. 존 덴버 John Denver 의 Annie's Song 이 왜 그 순간에 들려줘야하는지는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를 떠나) 뜬금없었지만.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의 대화가 만들어내는 웃음을 잠시 보여준 다음 ‘옥자’는 뉴욕으로 향해 마지막 소동을 벌이게 된다.


뉴욕으로 향한 다음 ‘옥자’가 보여주는 것은 도살장으로 향하기 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별다른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옥자’에서는 미자를 제외하면 모든 등장인물들은 자기에게 상황을 유리하게하려고만 하고 있고 다들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오직 미자만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고 옥자에 대한 그리움과 데려가겠다는 간절함을 잃지 않고 있다.


미란도 그룹의 대표 루시 미란도는 어떻게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도록 밀어붙이려고 하고 있고, 루시에게 밀려났던 낸시 미란도는 몰래 다시 미란도 그룹의 대표로 복귀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굳이 틸다 스윈튼에게 1인 2역을 하게 할 필요까지 있었나?). 동물해방전선의 지도자 제이도 동물들을 그렇게 생각한다면서도 결국 본인들이 급박하게 될 때는 동물들에게 폭력을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고 자신들의 신념 또한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물박사 조니는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본모습을 지나칠 정도로 연극적이고 과장해서 보여주면서 ‘옥자’는 누가 더 위선적이고 어떤 사람이 더 역겨운 사람인지를 경쟁하듯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인간에 대해서 구역질하고 있지만 그것조차 과장으로 가득해보이고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충격을 주려고  의도한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뭔가 계속 틀어져 있다.


‘옥자’는 옥자와 미자에 대한 영화인가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을 까발리려는 영화인가

육식과 먹거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인가

그게 아니면 온갖 난장판을 만드는 영화인가

‘옥자’는 그걸 다 담아내려고 하고 여러 가지를 의도했지만 그럴수록 모든 것이 이상해져만 가고 있을 뿐이다.


잠깐 딴소리를 한다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과장된 행동과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은 연극을 하고 있거나. 그건 ‘설...’에서도 느꼈던 부분이었는데, 왜 그런 방식으로 연기를 하게 만드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옥자가 성적 육체적 학대를 받은 다음 옥자와 미자는 뉴욕에서 다시 만나고 ‘옥자’는 엉망진창의 난장판을 다시 한 번 벌인 후 도살장으로 향하면서 ‘옥자’는 갑작스럽게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며 육식과 먹거리 문제에 대해서 음울한 표정으로 우리들에게 생각해보도록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몰아붙인 다음 ‘옥자’는 특별한 결론 없이 그 잔혹한 현실에 등을 돌리고 있을 뿐이다. 눈을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 실컷 물음을 던진 다음 대충 이런 것이 있고 이런 문제를 좀 생각해보라고 알려준 다음 이야기를 돌려세우고 있다. 


‘설...’도 그랬었는데, 뭔가 진지한 고민을 실컷 내놓은 다음 그걸 더 생각해보기 보다는 그냥 흐지부지하고 있는데, 이럴 것이면 왜 그런 고민을 했던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 적당히 몰아세우다가 대충 뭉개고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설...’도 ‘옥자’도 계속해서 오락가락하고 있기만 하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문제의식이 드러난 문제점들만 다루고 있을 뿐 더 들여다보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야 슈퍼 돼지들이 계속해서 끌려들어가는 도살장에서 옥자와 갓 태어난 슈퍼 돼지 한 마리를 몰래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 이해가 된다. 미자는 그 잔혹 속에서 옥자와 아기 돼지를 데리고 나올 뿐이다. 그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도 행동하지 않는다. 위선과 잘못을 폭로하려고 하는 봉준호의 시선이 오히려 더 위선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육식주의자가 체식주의에 대해서 홍보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옥자’는 놀이공원과 같은 영화라고.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디즈니랜드와 같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쪽에 가면 이런 놀이기구를 이용하고 저쪽에 가면 저런 놀이기구를 탈 수 있듯이 ‘옥자’도 이런 장면에서는 이런 장르와 스타일을 저런 장면에서는 저런 장르와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좀 들쭉날쭉하게 느껴지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각 장면 장면과 상황 상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놀이공원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놀이기구를 갈아타며 여러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인지 ‘옥자’도 놀이공원에 갔을 때의 기분과 마찬가지로 영 별로였던 것 같다.


‘옥자’에 대해서 너무 불평 불만한 쏟아낸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옥자’를 보는 내내 왜 저럴까? 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평론가 듀나의 말대로 이 영화는 “굉장히 수많은 분위기와 장르 설정이 불필요한 완충막 없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영화”고 “기성품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난폭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기성품 헐리우드 영화이기 보다는 들쭉날쭉하게 어떤 제대로 됨 없이 욕심스럽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던 영화라는 생각이 더 크다.


아쉽다.

이런 결과물이라.


봉준호 감독은 다음 영화는 이런 방식이 아닌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그랬을 때는 어떤 결과물인지 기다려본다.





참고 : 이상한 말이지만 동물해방전선의 지도자 제이와 미자의 관계가 조금 더 흥미롭지 않을까? 옥자와 미자와의 관계는 만약 옥자가 동물이 아니었다면 여성과 여성의 동성애적 관계라고 볼 수 있을 때 제이가 미자에 대한 관심은 그저 인간적인 관심 이상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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