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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 현대사회의 먹거리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11  쭈니 2017.07.12 17:36:55
조회 203 댓글 0 신고

 

 

감독 : 봉준호

주연 : 안서현, 틸다 스윈튼, 폴 다노, 변희봉

개봉 : 2017년 6월 29일

관람 : 2017년 7월 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머나먼 길을 나선 것이 얼마만인가?

 

집근처 멀티플렉스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손쉽게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이제 평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그러한 일상은 꿈도 꾸지 못했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시내에 있는 극장에서 줄을 서서 표를 산 후 어렵게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어렸을 적에는 영화를 보는 날은 정말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그러한 특별한 날을 기록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일기가 지금의 영화 블로그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고요.  

하지만 요즘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워 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습관처럼 꼬박꼬박 영화 이야기를 쓰고 있으며,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를 기념하기 위해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웅이와 그림으로 그리고 있기도합니다. 특별한 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 평범한 날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한 저만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옥자]를 보기로 계획한 지난 일요일은 다른 영화들처럼 손쉬운 영화관람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유료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에서 극장 개봉과 동시에 동영상 서비스를 오픈하기로 결정했고, 이러한 넷플릭스의 결정에 CGV, 메가박스, 롯데 시네마가 반발을 하며 멀티플렉스 개봉이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은 [옥자]를 보기위해 마치 20여년 전처럼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의 대한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만해도 국내 최고의 극장이었던 대한극장도 오랜만이었고, 어린시절 영화를 보기 위한 가슴 설레는 외출이 생각나 [옥자]의 관람 자체만으로 제겐 특별했습니다.

 

 

 

산골소녀의 아주 특별한 외출

 

[옥자]는 2007년 뉴욕, 글로벌 기업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새로운 CEO인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의 취임식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루시는 취임식에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발표합니다. 칠레의 한 농장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된 새로운 품종인 슈퍼 돼지를 자연 교미 방식을 통해 26마리의 새끼를 번식시켰고,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26마리의 슈퍼 아기 돼지를 26개국의 현지 축산농민들에게 한마리씩 분양하여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담긴 전통 방식으로 키우게 만듭니다. 그리고 10년 후 26마리의 슈퍼 아기 돼지를 대상으로 베스트 슈퍼 돼지 축제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요란스러운 루시의 취임식 장면이 끝나면 10년 후 대한민국 강원도 산골로 무대가 바뀝니다. 그곳에는 산골소녀 미자(안서현)와 할아버지(변희봉)가 살고 있었고 그들이 키우는 슈퍼 돼지 '옥자'는 어느새 그들에게 친구이자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옥자]는 미자와 '옥자'의 아주 특별한 관계를 정성껏 표현해냅니다. 발을 헛디뎌 벼랑 끝에 떨어질뻔한 미자를 구하고 대신 벼랑으로 떨어지는 '옥자'의 모습은 그들이 그저 단순히 사람과 가축의 관계가 아닌 가족 그 이상의 관계임을 제게 충분히 어필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옥자'를 구하기 위해 물불 안가리는 미자의 활약이 제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이 되자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갑니다. '옥자'가 베스트 슈퍼 돼지로 선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옥자'와 헤어질 수 없는 미자는 홀홀단신으로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지사가 있는 서울로 향하고 그곳에서 동물 보호 단체인 ALF의 도움으로 '옥자' 구하기에 나섭니다. 이로써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와 순수한 산골 소녀 미자의 예측 불가한 대결이 펼쳐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골소녀가 글로벌 기업을 이기는 방법

 

자! 그렇다면 과연 미자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막강한 자본력을 막아내고 '옥자'를 구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대중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회사이고, 그렇기에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회사의 이미지이며, 대중의 여론입니다. 루시가 미자를 굳이 뉴욕으로 초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대중의 여론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 미란도 코퍼레이션 취임식에서 루시는 자신과 회사를 향한 대중의 좋은 이미지에 대한 강박증을 보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슈퍼 돼지를 칠레에서 우연히 발견된 자연이 선물해준 새로운 돼지 품종이라며 거짓을 만들어내고, 슈퍼 돼지로 만든 식품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10년동안 베스트 슈퍼 돼지 축제라는 거대한 쇼를 기획한 것입니다. 그런데 '옥자'를 되찾기 위한 미자의 소동으로 지신의 이미지에 타격이 예상되자 미자를 뉴욕으로 초청해서 미자와 '옥자'의 감동스러운 재회를 연출하려합니다.

비밀 동물단체인 ALF의 리더 제이(폴 다노)는 그러한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이미지를 무너뜨리려합니다. '옥자'와 슈퍼 돼지들이 실험실에서 학대받는 장면을 촬영하여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대중이 등을 돌리게끔 만드는 것이 그들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실패하고맙니다. 왜냐하면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전CEO이자 루시의 언니인 낸시(틸다 스윈튼)의 예상 밖 등장 때문입니다. 그녀는 루시와는 달리 회사의 이미지 따위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만 움직일 뿐입니다. 낸시의 등장과 함께 [옥자]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자본과 폭력이 만났을 때

 

사실 [옥자]는 중반까지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영화에서 악당이라 할 수 있는 루시는 위협적인 인물이라기 보다는 애정 결핍에 빠져 있는 철없는 공주에 더 가깝습니다. 루시에게 고용된 동물학자 죠니 윌콕스(제이크 질렌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한때 동물을 사랑했고,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TV 동물쇼에 출연했지만 지금은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에서 슈퍼 돼지들을 학대하는 악당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지?"라며 자책합니다. [옥자]는 조금은 과장된 루시와 죠니의 모습을 통해 기업의 이미지를 거짓으로 꾸며내려는 현대의 기업가와 그것에 빌붙어 돈과 인기를 얻으려는 연예인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합니다.

동물 보호 단체인 ALF도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ALF의 멤버중 한국인인 케이(스티븐 연)가 제이와 미자의 대화를 통역하는 장면에서는 의도적으로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려 했고, ALF의 멤버 중 한명인 실버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음식을 거부하는 과한 모습까지 보입니다. 육식을 거부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채식마저 거부한다면 어떻게 살겠다는 것인지... 그의 신념이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웃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만해도 저는 [옥자]가 과장된 캐릭터를 통한 블랙 코미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낸시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바뀝니다. 낸시는 사설 경호업체를 이용해서 ALF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합니다. 루시는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미자와 타협의 여지가 있었지만 아무런 감정조차 없어보이는 낸시는 타협의 여지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슈퍼 돼지 사육장에서 '옥자'와 같은 슈퍼 돼지들이 도살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분위기를 공포스럽게 이끕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암울한 이 시점에서 미자는 자본의 논리로 낸시와의 협상을 시도하는데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먹을 것인가? 안 먹을 것인가?

 

며칠전 맥도날드에서 덜 익은 패티로 만든 햄버거를 먹고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렸다는 어린 아이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잘 압니다. 햄버거가 결코 건강에 좋은 음식이 아님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햄버거를 먹는 이유는 편하기 때문이며, 좋은 햄버거를 만든다는 맥도날드의 광고에 현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복인 오늘은 개고기에 대한 케케묵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기호식품이라하며 개고기를 먹는 것을 옹호하고, 한쪽에서는 반려동물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로 개고기를 반대합니다.

이 두가지 논란은 [옥자]와 맞닿아 있습니다. 루시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슈퍼 돼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슈퍼 돼지로 식품을 만들면 좀 더 맛있고, 많은 식품을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잘 압니다. 아직은 유전자 조작 음식의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음을... 하지만 슈퍼 돼지로 만든 음식이 출시된다면 사람들은 값싸고 편하기 때문에, 그리고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광고에 현혹되어 슈퍼 돼지로 만든 음식을 별 생각없이 먹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개고기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돼지, 소고기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이유는 반려 동물인 개와는 달리 돼지와 소에게는 감정적 이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옥자]에서 미자는 '옥자'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이입하였지만, '옥자'를 그저 먹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미자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는 마찬가지로 개를 반려동물이 아닌 그저 먹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무엇을 먹느냐는 우리 자유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음식인지, 나쁜 음식인지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스스로 해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옥자]는 시골소녀의 특별한 모험담을 통해 그러한 우리 시대의 먹거리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완성해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며

웅이와 유전자 조작 음식에 대한 토론을 했다.

점점 안전한 먹거리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유전자로 조작된 음식을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과연 우리는 '옥자'를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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