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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 자유의지로 결정한 선택이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삶의 긍정이다.
11  쭈니 2017.07.07 18:53:27
조회 224 댓글 1 신고

 

 

감독 : 이준익

주연 :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

개봉 : 2017년 6월 28일

관람 : 2017년 7월 7일

등급 : 12세 관람가

 

 

웅이의 기말고사 때문에 미뤄둔 영화가 너무 많다.

 

웅이의 기말고사가 끝나면 함께 보려고 미뤄뒀던 영화가 수두룩합니다. 일단 저와 웅이의 2017년 최고 기대작중 한편인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이미 토요일 오전에 예매해 놓았고, [스파이더맨 : 홈커밍]을 보기 전, 복습 차원에서 금요일 밤에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를 다시 한번 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을 보고나면 토요일 오후엔 집에서 [스머프 : 비밀의 숲]을 보려 합니다. 지난 4월에 개봉한 [스머프 : 비밀의 숲]은 웅이의 중간고사 때문에 극장에서 놓치고 지금까지 미뤄놓은 영화인만큼 더 이상 관람을 미룰수가 없습니다.

일요일 오전에는 오랜만에 온 가족이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옥자]를 보기로 했습니다. 집근처 멀티플렉스에서 [옥자]가 상영하지 않는 덕분(?)에 뜻하지 않은 서울시내 나들이 계획이 잡혀 버렸습니다. [옥자]의 관람을 마친 후, 그동안 먹고 싶었지만 집 근처에서 파는 곳이 없어서 먹지 못한 초계탕으로 외식을 하기로 했고, 날씨가 너무 무덥지만 않다면 6월 26일 전면개방된 청와대 앞길을 여유롭게 산책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저희 가족은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모든 일정이 촘촘하게 계획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에서 한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박열] 관람입니다. 2016년 3월 1일 이준익 감독의 전작인 [동주]를 본 후, 서점에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구매해서 온 가족이 함께 시낭송회를 했던 좋은 기억이 있기에 이준익 감독의 차기작이며 [동주]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한 [박열]도 꼭 구피, 웅이와 함께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이번 주말에는 [박열]까지 극장에서 볼 시간이 나지 않네요. 그래서 아쉽지만 [박열]은 본격적으로 주말이 시작되기 전에 저 혼자 보고 왔습니다.

 

 

 

일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조선의 개새끼를 만나다.

 

[박열]은 '개새끼'라는 제목의 시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박열'이 실제로 쓴 이 시는 불령사를 조직해 일본 열도에서 항일 운동을 하던 조선의 청년 '박열'(이제훈)의 성격을 표현함과 동시에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연결고리 역할도 해냅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내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이렇게 [박열]이 한편의 시로 시작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준익 감독은 [박열] 직전에 [동주]를 연출한바 있습니다. 이 두 영화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두 영화 모두 일제 시대가 배경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윤동주와 '박열'이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항일 운동을 했던 조선의 젊은 청년이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동주]가 아름다운 시를 통해 일제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박열]은 스스로 조선의 개새끼임을 자처하는 열혈청년 '박열'의 통쾌한 법정 반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윤동주의 서정적인 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박열'의 시는 그렇기에 영화의 분위기를 대변합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한 영화라면 [동주]처럼 아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영화일 수 밖에 없다는 편견을 [박열]은 영화의 처음부터 깨버립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도 충분히 통쾌하고, 유쾌할 수 있다며 '개새끼'라는 제목의 시가 관객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박열'은 책략가?

 

'박열'은 아나키스트입니다. 무정부주의를 뜻하는 아나키스트는 모든 제도화된 정치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특히 '박열'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일본인들에겐 신격화된 존재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일본 천황의 권력, 권위를 부정합니다. 그는 상해에서 폭탄을 들여와 일본의 황태자를 암살하려합니다. 일본 황태자가 죽으면 일본인들이 무지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며 '박열'의 계획은 어긋납니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본인 폭동을 막기 위해 미즈노(김인우) 대신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타고 집을 불태우고 있다는 거짓소문을 퍼트려 일본인의 일본 천황이 아닌 조선인에게 돌리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일본인의 분노가 예상보다 커서 6천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되자 미즈노는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새로운 계책을 세웁니다. 그것은 바로 조선 청년 '박열'의 대역사건을 조작해서 대내외적 모든 관심사를 '박열'에게 돌려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박열'은 미즈노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박열]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박열'의 뛰어난 책략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일본 경찰에게 스스로 붙잡힙니다. 일본 자경단이 조선인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상황에서 경찰서가 더 안전하는 것이 '박열'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미즈노가 '박열'에게 대역사건을 뒤집어 씌우려하자 스스로 자신이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사건을 계획했다고 자백합니다. 사형선고가 내려질 것이 뻔한데 '박열'은 스스로 죽음으로 이르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과연 그는 왜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일까요?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사실 처음엔 저도 '박열'이 무슨 의도로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스스로 대역사건의 배후가 되려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 검사 다테마스는 '박열'을 그저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하는 정신병자 취급을 하고, 조선에서 건너온 신문기자 이석(권율)은 '박열'로 인하여 관동 조선인 대학살이 묻혀지고 있다며 '박열'의 동료들을 다그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박열'이 의도했던 것입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역사건 재판에서 관동 조선인 대학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대역사건 재판이 더욱 언론의 이목을 끌게 하기 위해 '박열'은 재판장에 조선 관복을 입고 나타나는 기행을 벌입니다. '박열'과 공범으로 지목된 후미코 역시 일본에서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이 되겠다는 선언을 하며 '박열'의 계획에 동참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사형이 선고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죽음 또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후미코는 영화 후반에 이런 말을 남깁니다. '단순히 움직인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의지를 따라 살아간다면, 그것이 비록 죽음을 향하더라도 그 삶은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긍정일 것이다.'

대역사건 재판에서 '박열'이 전 세계 언론에 관동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알렸고, 일본 정부는 여론의 악화로 인하여 진상 위원회를 발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가해자 스스로 조직한 진상 위원회가 관동 조선인 대학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박열'의 희생 덕분에 영원히 묻힐뻔한 관동 조선인 대학살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아직도 절대 잊어서는 안될 우리 역사의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박열'의 인간적인 매력에 흠뻑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결코 불의에 굴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죽음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열'과 후미코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박열'은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며 외칩니다.

하지만 '박열'이 진정으로 매력적인 것은 후미코를 향한 상남자스러운 사랑 때문입니다. 후미코가 '박열'의 공범임을 자처하자 '박열'은 다테마스 검사에게 후미코의 정신감정을 꼭 하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은 사형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후미코 만큼은 정신 이상 판정을 받아서라도 살아남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재판에 앞서서는 후미코를 법적 부인으로 받아들이는데, 가족만이 시신을 수습할 수 있다는 일본의 법 때문입니다. 자신과 후미코가 사형을 당하면 조선의 부모님에게 자신은 물론 후미코의 시신도 수습하여 고향에 함께 묻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한 '박열'의 사랑이 있었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박열'과 후미코의 실제 사진은 제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영화 자체는 유쾌하고 통쾌했지만, '박열'과 후미코의 사랑 만큼은 그 어떤 사랑 영화보다 아련했고, 가슴 아팠습니다. 이것이 암흑의 시대에 대한 [박열]만의 아픈 감성입니다. 비록 '박열'은 당당하게 일제라는 암흑의 시대에 맞서 싸웠지만, 시대의 아픔은 여전했습니다. '박열'과 후미코의 사랑을 통해서... 

 

과연 나는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내 자유의지로 내 삶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비록 죽음일지라도 당당하게 내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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