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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난 후회하지 않아요
5  enterskorea 2017.06.26 14:46:35
조회 389 댓글 2 신고

난 후회하지 않아요

 

 

위대한 작품 뒤에는 위험한 사랑이 있다. 천재적인 예술가, 철학자, 시인들과 그들의 뮤즈. 그들의 사랑이 불멸의 작품으로 남겨지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클라라와 슈만)

 

 

클라라와 브람스의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브람스의 스승인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슈만은 피아노 교수 비크의 문하생이 되어 그의 집에 드나들게 되는데, 비크에게는 신동으로 불리는 딸인 열한 살 소녀 클라라가 있었다. 클라라는 자라나면서 슈만과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비크 교수는 신동으로 불리며 어린 나이에 이미 유럽의 유명 스타가 된 딸과 풋내기 청년 슈만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슈만은 클라라를 얻기 위해 법적 공방을 불사하며 1840년에 마침내 클라라와 결혼했다.

클라라는 결혼 후 가정에 충실하며 음악가로서의 삶보다는 양육과 남편 뒷바라지에만 헌신된 생활을 했다. 다만 생계를 위해 해외 순회공연을 자주하며 가계를 도왔고, 그녀의 사랑과 헌신으로 슈만은 많은 명작을 남길 수 있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음악적 감각과 분석력으로 음악가 남편의 성장을 적극 도울 수 있는 여자를 선택한 슈만은 여자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던 셈이다. 그런데 슈만은 여자를 보는 눈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음악 천재를 알아보는 눈도 탁월했다.


 

(젊은 브람스와 클라라)

 

 

18539, 갓 스무 살이 된 청년 작곡가 브람스가 슈만을 찾아왔다.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조심스럽게 들고 온 청년 음악가를 반갑게 맞이한 슈만 부부는 그의 연주를 듣고서 탁월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슈만은 브람스를 한 달 넘게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친절을 베풀며 음악적인 교감을 함께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슈만 덕분에 브람스는 음악계에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고, 이것이 슈만, 클라라, 브람스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삼각관계의 시작이 되었다.

 

청년 브람스가 슈만을 찾아온 무렵, 슈만은 젊은 시절 방탕하게 지냈던 탓에 일찌감치 매독 증세를 보인데다 정신착란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이명현상으로 불안해했다. 그 후로도 슈만의 증세는 계속 심해져 정상적인 생활이 점점 불가능해졌다. 이후 슈만은 결국 교외의 엔데니히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클라라는 여덟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일곱 아이를 혼자서 길러내야 했다.

 

자신에게 은혜와 친절을 베풀어준 슈만 부부에게 불행이 닥치자 브람스는 정성을 다해 클라라와 슈만의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 사이 브람스의 가슴에 클라라에 대한 연모의 감정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물론 브람스와 클라라가 세상으로부터 지탄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자라는 사랑의 감정까지도 잘라낼 수는 없었다.

 

 

(영화 '클라라(Geliebte Clara)' 속 클라라, 브람스, 슈만 영상 캡쳐)

 

 

 

사랑하는 클라라,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싫증도 내지 않고 아첨도 하지 않고 사랑의 뜻을 가진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1856531,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쓴 편지이다. 이 편지를 보내고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 했는데, 이때 슈만의 나이는 46세였다. 37세의 미망인 클라라 곁을 지키고 있는 청년 브람스는 23세에 불과했다. 스승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브람스에게 슈만의 죽음은 비극이면서 동시에 클라라가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음을 말해주는 희망의 소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클라라는 끝까지 슈만의 아내로 남는 길을 택했다.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한 사랑의 고백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괴팅겐 대학 교수의 딸 아가테 폰 지볼테와 약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약혼은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평생 혼자 살았다.

 

브람스는 홀로 남은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레퀴엠>을 작곡했다. 사실 브람스가 클라라를 위해 곡을 만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처음 만났던 즈음에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해서 바쳤고,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피아노 3중주곡 제1번을, 슈만이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클라라가 혼자서 막내를 낳았을 때는 슈만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바친 바 있다.

 

 

(브람스 '레퀴엠' 악보)

 

 

라라는 브람스와 부부의 연을 맺지 않았지만 같은 음악가로서 동반자적 우애를 지속해나갔다. 그리고 남편의 음악성을 키워주던 그 능력으로 브람스의 음악적 성장을 도왔다. 특히 브람스는 첫 번째 교향곡을 2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작업을 할 때도 자신이 쓰고 있는 부분에 대해 클라라의 의견을 듣곤 했다.

 

짜임새는 훌륭하지만 멜로디의 친근함이 좀 아쉽네요.”

 

브람스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op. 34b)를 작곡했을 때도 클라라의 도움이 있었다.

 

이것은 훌륭한 작품이긴 하지만, 소나타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악보는 완전한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 악상으로 가득 차 있는 만큼 당신은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검토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말년의 브람스, 클라라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안하 64세 나이로 사망)

 

 

클라라의 의견에 따라 브람스는 그 곡을 피아노 5중주 형태로 수정했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홀로 남겨진 클라라에게 브람스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듯 브람스에게도 클라라는 없어서는 안 되는 여인이었다. 스승의 아내였던 까닭에 끝내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브람스는 클라라와 한평생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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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스캔들 <박은몽> 저

책이있는풍경, 2017년04월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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