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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자리] - 미움과 증오는 평생 해야하지만, 용서는 한번만 하면 된다.
11  쭈니 2017.05.25 11:04:14
조회 609 댓글 1 신고

 

 

감독 : 데릭 시엔프랜스

주연 :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레이첼 와이즈

개봉 : 2017년 3월 8일

관람 : 2017년 5월 23일

등급 : 15세 관람가

 

 

단비가 내리던 날, 내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고 싶었다.

 

아마도 전날 피가 낭자한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을 보고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구피는 요즘 우리나라 박스오피스에서 의외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겟 아웃]을 보고 오라며 퇴근 후 자유시간을 허락해줬지만, 저는 [겟 아웃]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향했습니다. [겟 아웃]은 관객의 좋은 평가가 잇따르고 있어서 꼭 봐야할 영화이긴 했지만, 공포 장르의 영화인 [겟 아웃]을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을 본 후 하루만에 관람한다면 후유증이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비가 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가뭄과 미세먼지를 날려줄 단비가 하늘에서 내렸고, 저는 이 비를 뚫고 극장에 가느니 그냥 집으로 향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30년전 사춘기 시절에는 비가 내리면 괜히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거리를 걸었는데 (그때의 후유증이 제 모발에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ㅜㅜ) 요즘은 비가 내리면 만사가 귀찮고 그냥 집에가서 뒹굴거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찬밥에 물을 붓고 꿇여 대충 김치와 함께 먹고, 쇼파에 뒹굴거리며 프로야구를 보려했지만 우천취소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해야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비오는 날에는 감성충만 멜로 영화가 제격이지."라며 영화 보기를 선언했으니 단비가 내리던 날, 만사가 귀찮은 제 감성을 촉촉히 적셔줄 영화로 선택된 것은 [파도가 지나간 자리]입니다.

 

 

 

등대지기 부부, 어린 아기를 발견하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1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지만 이젠 전쟁이 할퀴고간 상처만 떠안게된 톰(마이클 패스벤더)은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듯이 외딴 섬 야누스의 등대지기를 지원합니다. 하지만 굳게 닫혀 있던 톰의 마음은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에 의해 활짝 열립니다. 전쟁으로 두 오빠를 잃었지만 밝은 미소로 톰에게 다가선 이자벨. 톰은 평생 이자벨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자벨과 결혼을 합니다.

야누스에서 둘만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톰과 이자벨에게 시련이 닥칩니다. 병원이 없는 외딴 섬에서 이자벨이 두번이나 유산을 당한 것입니다. 유산으로 인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파도에 실려 떠내려온 보트 안에 남자의 시신과 울고 있는 여자 아기를 발견하게됩니다. 톰은 이 사건을 당국에 신고하려하지만, 이자벨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며 아기를 키우겠다고 고집합니다. 결국 이자벨의 행복을 위해 톰은 남자의 시신을 섬에 묻고 아기에게 루시라는 이름을 붙여 마을 사람들에게 이자벨이 낳은 딸이라 거짓말을 합니다.

문제는 수년이 지난 어느날 루시의 친모인 한나(레이첼 와이즈)가 나타나면서 시작됩니다. 죄책감에 빠진 톰과 어떻게든 루시를 지키고 싶었던 이자벨. 하지만 진실을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루시가 한나의 딸임이 밝혀지자 톰은 자신이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톰에겐 루시의 납치죄 외에도 한나의 남편이자 루시의 친부에 대한 살인죄가 적용되고, 한나는 이자벨에게 톰의 살인을 증언하면 루시를 키우게 해주겠다는 뜻밖의 제안을 하게됩니다.

 

 

 

아름다운 화면, 아름다운 사랑

 

일단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아름답습니다. 뉴질랜드 남섬의 북동부 끝에 위치한 캠벨 곶 등대에서 촬영된 야누스 섬의 풍경은 때론 톰과 이자벨의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세상과 단절되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위험천만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문(門)의 수호신 야누스의 이름과 정말 어울리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자벨을 향한 톰의 사랑도 아름답습니다. 사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이자벨이 루시를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부터입니다. 이자벨을 위해 엄연한 범죄 행위에 가담을 한 톰은 이후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쓰려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톰과 이자벨의 범죄가 발각된 것은 톰이 한나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처음엔 딸이 남편과 함께 죽었다고 생각했던 한나는 톰의 편지를 받고 딸이 살아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톰이 한나에게 루시의 장난감을 보냄으로써 결국 톰과 이자벨의 범행은 발각됩니다. 톰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처음에 저는 톰의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한나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는 톰의 죄책감에 의한 행동임이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한나에게 루시의 장난감을 보낸 것은 단순히 톰의 죄책감 때문이 아닙니다. 그 시점이 이자벨이 한나가 루시의 친모임을 깨닫게된 순간이었고, 톰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사는 것이 어떤 지옥보다도 괴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톰은 이자벨을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행동을 했고, 모든 처벌을 혼자 받기로 결심하며 끝까지 이자벨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는 평생 해야하지만, 용서는 한번만 하면 된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가 대단한 것은 영화를 보며 여러 캐릭터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 저는 톰에게 감정이입을 했습니다. 이자벨을 향한 사랑, 그리고 그녀의 행복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던 모습까지... 하지만 톰이 한나에게 편지와 장난감을 보냄으로써 루시를 빼앗기게 되자 이자벨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루시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이자벨은 톰의 행동으로 인하여 한나에게 루시를 빼앗기자 그를 증오하게됩니다. 톰과 이자벨의 행복을 빌었던 저역시도 그러한 이자벨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루시의 친모인 한나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한꺼번에 잃은 한나. 그런데 어느날 딸이 살아있음을 알게됩니다. 당연히 그녀 입장에서는 딸을 되찾아야 했고, 남편의 죽음에 대한 의심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톰과 이자벨을 용서합니다. 남편이 독일인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를 드러내는 마을 사람들을 용서했듯이...

'미움과 증오는 평생 해야하지만, 용서는 한번만 하면 된다.' 이 말은 한나의 남편이 한나에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입니다. 결국 톰과 이자벨을 향한 한나의 용서는 이 영화의 마지막 감동을 이끌어냅니다. 시간이 흘러 톰을 찾아온 루시. 이 벅찬 감동은 한나의 용서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요. 평생 이자벨을 지켜준 톰의 사랑,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루시를 그리워한 이자벨의 사랑은 결국 한나의 용서에 의해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용서는 사랑만큼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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