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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 -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아 헤매는 스릴러
11  쭈니 2017.03.09 15:29:57
조회 196 댓글 0 신고

 

 

감독 : 이수연

주연 : 조진웅, 신구, 김대명, 이청아

개봉 : 2017년 3월 1일

관람 : 2017년 3월 8일

등급 : 15세 관람가

 

 

결국 [해빙]까지 보고 말았다.

 

일요일 밤에 구피와 함께 [로건]을 보고나서 그날 밤 저는 악몽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버스의 앞좌석에 앉아 있는데 뒤가 서늘한 것입니다. 무서워서 뒤를 돌아보지는 못하고 버스의 백미러로를 쳐다봤는데, 글쎄 백미러에 비친 버스 뒷좌석에는 귀신들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지만, 서늘했던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날 밤은 잠을 설쳤습니다. 다음날 구피에게 꿈 이야기를 해줬더니 [23 아이덴티티]와 [로건]을 연달아 봤기 때문이라며 한동안은 밝은 영화를 위주로 보라고 조언을 해주더군요. 

제가 [해빙]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도 그날의 악몽 때문입니다. 심리 스릴러인 [해빙]까지 보고나면 다시한번 악몽을 꿀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화창한 봄이 왔건만 극장가에서는 제 유리심장을 달래줄 밝은 영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코미디 영화나 멜로 영화로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데 극장가에는 어쩜 이리도 어두운 영화들 뿐인지... 영화는 보고 싶은데, 밝은 영화는 보이지 않고, 결국 고민끝에 [해빙]을 보고 말았습니다.

[해빙]을 보면서 가장 걱정했던 장면은 영화의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승훈(조진웅)의 꿈 장면입니다. 승훈은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사람의 머리를 발견하는 꿈을 꿉니다. 영화에서도 그 장면은 가장 공포스럽게 연출되었는데, 솔직히 고백해서 저는 승훈이 성근(김대명)과 술을 마시던 도중 냉동실에 들어가는 장면부터 손으로 눈을 가리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장면을 제외하고는 제 심장을 옥죄는 장면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네티즌들의 혹평과는 달리 저는 영화를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후반부에 가서 긴장감이 너무 급속도로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지만, 두번에 걸친 반전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후 영화에 대한 스포가 가득합니다.)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해빙]은 심리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스릴러 장치는 승훈의 의심에서 비롯됩니다.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다가 도산하고, 선배 병원에 취직한 내과의사 승훈. 그런데 선배의 병원이 위치해있는 곳은 한때 미제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경기도의 한 신도시입니다. 선배의 병원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승훈은 어느날 정노인(신구)이 수면내시경 중 가수면 상태에서 흘린 살인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집주인인 정노인과 성근 부자에 대한 승훈의 의심은 점점 커져만갑니다.

의심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한번 의심을 시작하면 사소한 것들까지 이상하게 여겨지고, 그러한 것들이 모여 눈덩어리처럼 점점 커져만갑니다. 승훈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정노인의 살인고백을 단순하게 치매노인의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노인과 성근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정육점 주인인 성근의 행동 하나 하나, 정노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점점 커져만가는 의심 속에서 승훈은 점점 이성을 잃어갑니다. 결정적으로 승훈을 만나러 왔던 전처, 수정(윤세아)이 실종되자 승훈의 의심은 확신으로 돌변하고, 승훈의 아들인 영훈마저 성근에게 납치당하자 결국 폭주하고맙니다. 그리고 승훈의 폭주는 결국 파멸로 이어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아주 작은 의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해빙]은 심리스릴러답게 승훈의 의심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완성한 셈입니다.

 

 

 

당신의 기억은 정확한가?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것이 바로 사람의 기억이라고합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되기도 하고, 삭제되기도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기억의 조작은 인간의 자기보호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승훈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빙]은 철저하게 승훈의 시선으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그렇기에 저는 승훈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그가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영화 속에 몰입하게됩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서 승훈에 대한 믿음은 배신으로 돌아옵니다.

사실 승훈은 병원 도산 이후 프로포폴에 중독된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환각 상태에서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조경환(송영창)입니다. 승훈의 곁을 맴돌던 경환은 승훈에게 자신이 연쇄살인사건의 담당 형사였다고 소개합니다. 그는 비록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퇴직 후에도 정노인과 성근 부자를 의심하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경환의 등장은 승훈의 의심이 확신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 가서 경환은 승훈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경환의 모델은 승훈의 정신과 주치의인 남인수였고, 조경환이라는 이름은 승훈이 자주 읽는 추리소설의 작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감정이입을 했던 승훈의 기억이 모두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노인과 성근에 대한 의심은 승훈에 대한 의심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승훈이 과거 사채업자를 토막살인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모든 범행이 승훈의 짓이었음을 확신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또다른 기억 조작에 불과합니다.

 

 

 

거짓으로 꾸며진 세상

 

정노인과 성근에 대한 의심이 프로포폴에 중독된 승훈의 환상이자 기억조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건의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모두 거짓에 불과합니다. 승훈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는 미연(이청아)은 승훈의 기억 그대로 병원의 프로포폴을 훔쳐서 비싼 값에 팔고 있었고, 수정을 죽인 범인은 정노인이며, 사건을 은폐하고 수정의 시체를 토막낸 사람은 승훈의 의심 그대로 성근이었습니다.

결국 [해빙]의 모든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거짓으로 자신의 기억을 조작한 사람들 뿐입니다. 승훈은 사채업자를 죽인 과거를 조작하고 있고, 미연과 성근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진실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해빙]의 메인 포스터에 실린 카피문구인 '나는 함정에 빠졌어.'라는 승훈의 한 마디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처음엔 승훈의 편이었지만, 나중엔 승훈을 의심하기 시작한 저 역시도 승훈을 함정에 빠뜨린 장본인중 한명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이수연 감독이 치밀하게 짜놓은 함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의 편이 되어야 마땅할 관객마저도 승훈을 의심하게 만들면서 승훈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을 파놓은 것이죠.

사실 영화를 곰곰히 되짚어보면 수정을 살인하고 토막낸 범인이 승훈이 아님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병원에 경찰아 다녀간 이후 미연이 승훈의 집을 찾았다는 것은 미연의 범죄가 승훈의 기억조작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단지 경찰이 병원에 왔음을 알리기 위해 승훈의 집에 갔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차라리 승훈이 자신을 신고한줄알고 다급한 마음에 승훈의 집을 찾았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있습니다.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아 헤매다.

 

수정의 살인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범인이 승훈이라면 정말 말이 안됩니다. 어디에서 수정의 시체를 토막냈을 것이며, 시체를 토막내며 옷에 묻은 피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었을까요? 토막살인이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범인은 승훈이 아닌 정노인과 성근 부자임이 확실해집니다. 하지만 조경환이 승훈의 환상속 인물이고, 승훈이 사채업자를 토막내어 살인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우리는 수정을 살인한 살인마로 승훈을 의심하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어버린 것입니다.

승훈은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답이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추리소설은 범인이라는 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추리소설은 영화로 따지면 스릴러 영화입니다. 그런데 스릴러 영화인 [해빙]은 승훈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답이 없습니다. 승훈은 결국 사채업자에 이어 수정을 토막살인한 살인마로 낙인찍혔고, 미연은 태연하게 프로포폴을 또다시 판매하고 있으며, 정노인과 성근은 여전히 정육점을 운영하며 평범한 시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추리소설만큼은 답이 있어서 좋다는 승훈. 하지만 이제 추리소설마저 답을 상실한 셈입니다.

2003년 박신양, 전지현을 캐스팅하여 [4인용 식탁]이라는 매력적인(그러나 흥행에는 실패한) 공포영화를 연출했던 이수연 감독은 '한번 실패는 영원한 계층 추락으로 이어져 그 어느때보다 미래 에 대한 불안이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해 가고 있다.'며 연출변에서 밝혔습니다. 한때 자신이 중산층이라 믿었을 승훈은 병원의 도산 이후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로인하여 결국 더욱 깊은 파멸의 함정에 빠지고맙니다.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아 헤맸으니 어쩌면 그의 파멸은 당연한 결론일지도... [해빙]의 결말이 결국 제게 찝찝함만을 남긴 이유는 어쩌면 저 역시도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리가 사는 세상은 답이 없다.

그런데 답이 없으면 또 어떠하랴.

답이 없는 상황에서 나만의 정답을 만들어 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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