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다소 가벼운 오락 영화로의 리메이크
" 뒤돌아 보지마 유다네 삶은 앞에 있으니까 "
< ▲ 리메이크작 '벤허'에서 '벤허'는 잭 휴스턴이, '메살라'는 토비 켑벨이 연기합니다 >
<벤허>는 어떤 영화인가? 안보신 분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제목은 한번쯤 다 들어보셨을 것으로 생각되는 위대한 고전 <벤허>는 1880년에 쓰여진 루 윌리스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1925년에 무성영화로 한번 제작이 되었었고, 1959년 당시로는 엄청난 거금인 1,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되어 윌리엄 라일리 감독의 손에서 리메이크 되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꼽히는 <벤허>입니다. 이번에 개봉된 영화는 그 고전을 <원티드>, <링컨 : 뱀파이어 헌터> 등의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이 다시 한번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꼽히는 <벤허>
서기 26년,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유다 벤허'와 '메살라'가 중심이 됩니다
< ▲ 얼굴까지 등장하시는 리메이크작의 예수님 >
근래에 다시 재개봉이 되기도 했던 1959년작 <벤허>는 러닝타임이 무려 222분에 달하기 때문에 중간에 인터미션까지 한번 있을 정도로 근래에 보기 드문 긴 러닝타임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그 긴 러닝타임 내에는 서기 26년, 신성 로마제국 시대 로마군에 의해 함락된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에는 우정을 나눴지만 성장 후에는 지배층인 로마군과 피지배층인 유대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다시 말해 당시의 비극적인 시대상에 의해 금이 가고 말았던 '유다 벤허'와 '메살라'의 관계와 그로 인해 비극적인 일을 겪게 되고 조금씩 변해가는 '유다 벤허'를 따라갑니다.
처음에는 폭력에 반대했고 평화와 동족을 사랑했던 유다 벤허. 하지만 오랜 친구마저 적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던 그 가혹한 시대는 벤허와 그의 가족을 한순간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만들었는데, 그 모든 일들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던 벤허는 죄책감과 함께 '메살라', 더 나아가 '로마'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벤허의 들끓는 마음은 그를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켜가는데, 이렇게 벤허를 중심에 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던 나사렛 예수의 신념과 모든 이들의 죄를 등에 이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 분의 모습과 그로 인해 구원을 얻고 믿음을 갖게 되는 벤허의 모습을 통해 <벤허>는 믿음과 사랑, 용서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원작은 종교적인 색채가 굉장히 강한 작품 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으로 깊이 있는 해석은 불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 원작의 러닝타임은 무려 222분, 하지만 리메이크작은 123분
때문에 이야기는 압축될 수 밖에 없었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습니다
< ▲ 리메이크작의 벤허와 일더림(위), 원작의 벤허와 일더림(아래) >
이처럼 원작 <벤허>는 굉장히 방대한 이야기를 자랑하는 '대서사시'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리메이크 된 <벤허>는 러닝타임이 원작의 절반에 가까운 123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원작의 이야기를 압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압축의 대상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꼽히는 <벤허>이기 때문에 본 리메이크작은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리메이크작들도 다 마찬가지지만 리메이크되는 영화는 원작과의 비교를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데 그 원작이 <벤허>인 이 영화는 굉장히 큰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일테죠. 어쩌면 건드리면 안되는 영화를 건드린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그래서 티무크 베크맘베토브 감독은 선택과 집중을 했던 것 같습니다.
▣ 결말부터 시작해서 원작과 리메이크 사이에는 제법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리메이크작은 '전차 경주신'에 많은 힘을 주고 있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 ▲ 리메이크작의 전차 경주신(위), 원작의 전차 경주신(아래), 같은 장소에서 촬영됐다고 하더군요 >
우선 결말부터가 다른 리메이크작과 원작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비교해서 차이점을 더 살펴 본다면 '벤허'와 '에스더'의 결혼시기가 다르고(뭣이 중헌디? 하실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이야기 전개에 제법 차이가 있습니다) 나병에 걸리고 마는 벤허의 어머니 '미리암'과 여동생 '티르자'의 이야기와 벤허가 노예선에서 겪게 되는 일들은 대폭 축소되어 있으며, 벤허 인생의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인물인 로마의 집정관 '아리우스'는 리메이크에선 아예 삭제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수의 뒷모습만을 보여줬던 원작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기도 했던 본 작품에서는 아랍 상인 '일더림'의 역할을 확대해놓고 있었는데 바로 이 '일더림' 캐릭터가 앞에서 언급한 감독의 선택과 집중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 같더군요.
<벤허> 하면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 그 '전차 경주신', 감독은 바로 그 신에 힘을 주기 위해 '일더림' 캐릭터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는 것만 같았던 것인데 그로 인해 영화는 언뜻 <글래디에이터>스러운 느낌까지 들면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원작과는 달리 그저 가볍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로서 리메이크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은 빼고 다소 오락성에 집중한 선택으로 인해 인물들 사이의 관계는 느슨해질 수 밖에 없었고 - 심지어 벤허와 메살라 사이 마저도 - 증오와 복수, 용서와 구원 그리고 관용 등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드라마는 짜임새가 헐겁게만 느껴집니다. 게다가 여러가지 말씀들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저 아파트 초인종 누르고 '좋은 말씀 전하러 오시는 분'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로도 느껴지지 않더군요.
▣ 해상 전투신과 전차 경주신 등 볼거리가 있는 영화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았던 원작 전차 경주신의 손을 들고 싶네요
< ▲ 원작과 리메이크작 해상 전투의 차이, 확연히 느껴지시죠? >
다만 1959년의 작품과 비교하기에 그 '기술력'만큼은 월등하게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 당연히 존재합니다. 바로 이오니아 해에서 그리스의 해군(이 역시 원작은 그리스 해군이 아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까먹었네요)과 대규모 교전을 벌이는 장면인데 그 해전의 전투신 만큼은 훨씬 향상된 기술력을 선보이지만, 그 곳에서 노예가 되어 노를 젓고 있던 벤허에 대한 묘사는 원작이 더 훌륭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또한 <벤허>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전차신' 역시 1959년 당시의 기술력으로 어떻게 찍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장면들을 연출했던 원작의 그것만큼의 임팩트에는 못미치는 재현에 불과한 리메이크작 <벤허>였습니다. 게다가 비종교인인 제가 보기에도 성스러움이 가득 느껴지던 원작과는 달리 다소 통속적인 느낌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영화의 결말 역시 그다지 인상적이진 못하네요. 역시 '굳이 왜 이 영화를 리메이크 하는 것인가?' 라는 우려가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린 작품 <벤허>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