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은 어떤 영화인가? <밀정>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항일 무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을 소재로 하는 작품으로 1923년 일본 황궁에 폭탄을 투척한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등의 작품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의 신작. 참고로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은 실존 인물 '황옥', 공유 배우가 연기한 의열단원 '김우진'은 실존 인물 '김시현 열사', 특별출연한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의열단장 '장채산'은 말할 것도 없이 '김원봉 열사'를 모티브로 하며 여성 의열단원 '연계순'과 오프닝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상옥' 역시 모두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합니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

이번에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입니다

드라마, 코미디, 공포, 스릴러, 느와르, 서부극 등등 그동안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들은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로 풀어졌었고 거기에 감독 특유의 개성있는 연출을 통한 변주가 가해지면서 '김지운표 영화'가 완성 됐었는데 이번에는 1920년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놈놈놈> 역시 시대극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국식 서부 영화에 가까웠기에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정통 시대극 <밀정>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2시간 30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을 촘촘히 채우고 있었던 그 암울했던 시대의 이야기는 충분히 감독의 이름에 걸맞는 것으로 느껴지더군요.

조선총독부의 총독이 말하기를 조선인들은 복종하거나 아니면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 일제강점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들의 밑으로 들어가서 충실한 개가 되어 머리를 조아렸고 일본인들보다 더 악랄하게 동포들을 핍박했지만, 또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 하나쯤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각오와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만으로 그들에게 맞섰습니다. 이토록 같은 조국의 사람들이 극명하게 갈라질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모습. <밀정>은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인 출신 일제 경찰 '이정출'(송강호)과 의열단원 '김우진'(공유)을 통해 그 비극적인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정출과 김우진의 만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때문에 어쩌면 선과 악의 단순한 대립구도로 느껴질 수도 있고 일제 경찰에 투입된 밀정과 의열단에 투입된 밀정이 주가 되는 흡사 <무간도>와 같은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밀정>은 단순히 누가 밀정, 즉 '스파이'인가를 밝혀가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리고 일제와 독립군의 대결 구도라기 보다는 모두가 같은 민족이었던 독립군과 밀정 사이의 이야기가 주가 되면서 또 한번 그 시대의 아픈 상흔을 떠올리도록 만듭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같은 나라의 같은 민족들마저 팔아넘겼던 이들과, 그들을 색출해내서 처단해야했던 이들의 모습은 모두가 그 시대가 낳은 비극적인 아픔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아픔은 어쩌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습은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밀정'이 득실대고 있는 것만 같은 현시대의 모습인지라..

또한 <밀정>은 '케이퍼 무비'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던 <암살>과는 달리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이 모티브인 그들의 거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인물들의 내면에 더더욱 집중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적이고 아군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곁에 있던 친구들마저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낄 수 밖에 없는 고뇌와 참담한 슬픔, 하지만 그럼에도 속여야 했고 속아넘어가지 않아야 했던 이들의 치열하고 비장한 암투가 영화 가득 담겨져 있었던 것인데, 때문에 계속해서 변해가는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이런 긴장감을 이어가는 영화의 분위기는 <암살>과는 또 다른 재미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밀정>이 흥미로운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에는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그중 특히 시대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심리 변화를 겪게 되는 송강호 배우의 힘이 크게 느껴집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네번째로 함께 작업을 한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합은 충분히 훌륭하게 느껴지네요. 게다가 영화 오프닝부터 시작하여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았던 비쥬얼 역시 돋보이는 작품이었고,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울려펴진 경쾌한 노래를 통한 비극의 극대화를 비롯하여 장면 장면의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고 있었던 음악의 활용 역시 훌륭했으며 '박희순', '이병헌' 등의 특별 출연 역시 충분히 제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2시간 30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로 완성되어 있었던 작품 <밀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