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전망 좋은 방'
오, 아버지! 그를 사랑해요!
푸치니의 <자니 스키키> 중…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전망 좋은 방>
▲ <전망 좋은 방> ▲ 푸치니의 '자니 스키키' 오페라 장면
창문으로,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청아한 가을 하늘은 마음을 절로 설레게 한다. 분명 가을은 사랑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그러니 이런 계절에는 역시 수채화 같은 멜로나 드라마 쪽의 영화가 제격이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제임스 아이버리 감독의 <전망 좋은 방>이다.
푸치니 오페라 <자니 스키키> 중에서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유려하게 흘러나오면서 시작되는 <전망 좋은 방>. 이 작품은 몰이해가 넘쳐나는 사회 속의 인간 비애를 다룬 포스터의 고전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서는 전환기를 맞아 갈등과 진통을 겪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정통적 기법으로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거친 듯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이탈리아와 보수적인 영국 사회의 상이한 문화 전통을 대비시킨 배경 속에서 여러 유형적 인물의 성격 대립이 영화 흐름의 중심축을 이룬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길들여진 루시, 전형적인 권위주의자 샤로트, 속물근성의 보수주의자 세실, 위선적인 사회를 벗어던지려는 조지, 양면성을 지닌 신부 등의 다양한 인물을 통해 아이버리 감독은 모순된 사회의 희생자인 루시가 가치 있는 삶을 찾아 어떻게 자유의지를 회복해 나아가는가에 영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때문에 이 영화에서 르네상스의 발상지 플로렌스가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암시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
모범적인 교육을 받고 예절과 교양으로 양육된 젊은 처녀 루시가 그녀의 샤프롱이자 나이 든 독신녀 샤로트와 함께 플로렌스로 여행을 떠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내 그녀들 앞에 백마 탄 두 기사, 조지와 그의 아버지가 나타나면서 흥미로운 진전을 이룬다. 루시는 조지와 이내 섬광 같은 눈 맞춤을 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보수적인 아버지 때문에 관계는 진전되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정해준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이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 루시는 자기처럼 메마른 운명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샤로트의 격려에 힘입어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감정에 따른 사랑을 선택한다. 용기 있는 사랑을 시작한 루시와 조지는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었던 플로렌스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선율과 함께…….
특히 양귀비꽃 가득한 플로렌스의 풍경에 낭만적 설렘을 얹게 되는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는 오페라 1막에서 여주인공 라울레타가 아버지 스키키에게 리누치오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부르는 아리아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그를 사랑해요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우리는 함께 포르타로 가서 결혼반지를 사고 싶어요
예, 저는 가고 싶어요
제가 그를 헛되이 사랑하는 것이라면
베키오 다리로 달려가겠어요
달려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어요
내 이 괴로움을, 이 고통을!
오 신이시여, 저는 죽고 싶어요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허락해줄 것을 아버지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인데, 영화 속 루시의 마음을 이보다 더 확실히 짚어낼 수 있는 것은 없을 터!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는 1918년 작곡된 1막짜리 오페라다. 1299년 피렌체의 대부호 부오조 도나티가 죽고, 전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한다는 그의 유언장 내용이 알려지자 친족들은 모두 당황해한다. 이에 머리 좋기로 소문난 자니 스키키가 불려온다. 부오조의 사망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스키키는 스스로 부오조로 위장하여 공증인을 부르고는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한다.
모든 것을 자신 앞으로 증여되도록 한 스키키, 그 덕분에 그의 딸 라울레타는 리누치오와 결혼할 수 있게 돼 마냥 즐겁다. 스키키는 관중을 향해 소리친다.
“청중 여러분, 부디 저를 용서해주소서!”
줄거리만으로도 유쾌한 희극이지만, 다소 엉성한 구성 때문에 오페라 자체보다는 작품 속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더 유명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루시의 사랑이 그토록 애타게 그려지던 이 아리아가 엉뚱하게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효심’의 노래로 종종 소개되어 듣는 이를 경악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효도는커녕 사랑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성의 ‘불경하기 짝이 없는’ 노래인데도 말이다.
<전망 좋은 방>을 본 사람이라면,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돌아오는 어버이날에 이 노래가 또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일이 있거든 부디 항의 편지라도 쓰기를 바란다.
‘제발 그 노래만은 틀지 마세요. 어버이날 학(?)실히 망칠 일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