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 내가 될 수 있는
유행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한 동안 왕따이야기가 사회문제가 되며 자살로 연결되며 연일 방송에 나올 때가 있었다.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여 유명인의 자살이 뉴스에 나오면 자살 사건이 늘어난다는 통계 - 유의미하게 보이진 않은 듯 하지만 - 도 있다. 왕따 문제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다. 유독 '우리'문화가 발달한 한국에 특히 더욱 도드라졌다. 성인도 어려운 문제를 예민한 사춘기에 겪을 아이는 지옥일 것이다.
내가 청소년 시기에도 왕따 문제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그때도 있었을 것이라 본다. 우리가 현재 겪는 수 많은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원래부터 있던 것을 우리가 미처 눈여겨 보지 않을 때가 많다. 예전에도 있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기도 했을터이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획일성이 더욱 강조되며 유행처럼 순식간에 타오는 불꽃처럼 듫끌었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늘 가족은 제일 중요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대체적으로 가족에게서부터 출발한다. 사춘기가 되면 조금 다르다. 여전히 가족이 중요하지만 친구가 제일 중요한 순간이다. 함께 있는 시간은 가족이 더 많을 수 있어도 무엇간 공유하는 시간은 또래 친구들이 더 많다. 한국처럼 같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거의 하루 종일 보낼 때 그 안에 있는 친구의 중요성은 더 이야기해서 무엇하겠는가. 부모나 가족이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또래 압력이 가장 강하다.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의지와 힘도 아직은 여물지 못한 시기다. 이런 와중에 왕따를 경험한다면 어지간한 성인들도 멘탈적으로 이겨내기 힘들다. 이럴 때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된다. 나를 믿어주는 단 한 명의 친구. 나와 놀아주는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왕따는 아니다. 내가 어릴 때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친한 친구와는 늘 다른 반과 학교가 되었다. 초,중,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은 거의 없다. 실제로 날 기억하는 친구나 선생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들 정도다.
아무리 기억을 떠 올려도 내 학생 시절은 투명인간이 아니었을까. 무색무취로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던 학생. 수업을 빼 먹지 않지만 튀지도 않고 있어도 없어도 티가 전혀 나지 않던 수 많은 학생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딱히 교우관계가 넓고 원만하지도 않았다. 내가 앉는 책상 주변 아이들정도나 알고 지냈다. 그 범위를 넘어가면 같은 반이라도 알지 못했던 듯 하다. 한 반에 60명이 넘게 있었으니. 다행히도 교회친구들과 오래도록 놀았다.
왕따는 아니었을지라도 학교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던 내가 별 탈 없이 자란 배경은 교회에서 사귄 친구들은 사춘기 내내 함께 자란 덕분이 아닐까한다.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김향기)가 자살하며 시작한다.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른다.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그 사실이 밝혀진다. 천지가 유일한 친구였지만 자신도 왕따 당하기 싫어 아등바등했던 화연(김유정). 힘든 고등학교를 보낸 언니 만지(고아성). 삶을 살아가며 생활하기도 벅찼던 엄마 현숙(김희애).
영화는 굳이 산파로 흐리지도 않고 누가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도 않는다. 모두 피해자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미라(유연미)가 유일한 친구였지만 사소한 오해로 돌아서자 끈을 놓게 된다. 사실을 알게 된 만지가 따지려 하자 미라 언니이자 친구인 미란(천우희)은 자신의 여동생을 보살피려 한다. 자기도 모르게 모진 말도 한다. 서로 상처주는 말로 상대방을 핥퀸다. 누가 잘못인지 따져서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된 상황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너는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심어주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일까. 아무리 친구가 나이를 먹으면 중요하지 않는 순간이 올지라도 사춘기에 친구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우아한 거짓말>을 보더라도 딱 한 명의 친구만 옆에 있었어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은 집에 친구들도 놀러오고 놀라가는 걸 보면 그 속사정까지는 몰라도 다행이라며 영화를 봤다.
만약 내 아이가 저런 사정이었다면 나는 미리 알았을까. 영화에 나오는 부모처럼 왜 그러냐며 학교를 가라고 등 떠밀었을 것이 분명하다. 주변 사람에게 보내는 시그널을 받아들이지 못했겠지. 나 살기도 바뻐 무시할 수 있다. 유일한 버티목인 가족이 알아주지 못했으니. 가끔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내가 그런 당사자가 될 때가 있다. 어차피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이고 내 사정이 누군가에게 퍼질 염려가 없으니 마음것 이야기하라고 한다.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가장 돌아가지 않을 나이와 시기를 꼽으라면 무조건 중,고등학생 시절이다. 특히나 고등학생이다.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무료하게 시간만 보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달라질 지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만나고 싶은 선생도 없을 정도로. 다행히 최근에는 왕따문제가 대두되지 않고 있다. 뭐 좋은 것이라고 이런 것이 유행했는지..원. 여전히 왕따문제가 있겠지만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