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를 안다고 생각했다. 생존자와 가담했던 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의 증언과 묘사와 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가공된 이야기들. 도서와 영화의 형태로 적잖은 기록을 접했기에 아우슈비츠는 인류의 역사 중 가장 끔찍한 것 중 하나였음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영화 <사울의 아들>은 이제껏 안다고 생각했던 아우슈비츠를 얼마나 감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깨닫게 한다.

나치는 학살 시설인 가스 샤워실로 유대인들을 안심시키며 이동시키고, 시신 처리의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이용했다. 매일 수 천명의 동족을 학살하는 시스템에 가담하고 그들의 시신을 '토막'이라 부르며 운반부터 처리까지 담당해야 했던 이들은 '존더코만도'라 불렸다. 이들의 등에는 표적 표시의 'X'자가 그려졌고, 폭로의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 4개월마다 이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학살했다. <사울의 아들>은 헝가리의 존더코만도인 '사울'이 사내아이의 시신을 온전히 묻어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아이를 자신의 아들이라 말하며 끝까지 죽은 아이의 존엄을 지키려 사력을 다한다.

상황은 좋지 않다. 존더코만도들이 나치에 대항한 반란을 준비하며 최고치의 긴장감이 감도는 시기이기 때문. 동료를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사울은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며 '아들'의 시신을 은닉하고, 장례를 치러 줄 랍비를 찾아다닌다. 그의 위험천만한 행동은 그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목숨도 위태롭게 만든다. 동료는 말한다.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까지 희생시키다니." 실제 자신의 아들도 아니며, 이미 죽은 후에 사력을 다하는 사울의 행동은 평범한 상황에서라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지옥의 광경이라 하면 과연 그렇구나 인정해버릴 것만 같은 곳에서, 사울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발만 바삐 움직인다. 시신의 고이 묻어주겠다는 인간적인 목표를 세운 후에야 공포와 불안의 표정이 종종 스칠 뿐, 그의 경직된 얼굴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를 때까지 미소는 물론 눈물조차 낄 곳이 없다. 감정이 배제된 아우슈비츠에서 고통스러운 노동으로 죽음을 연기한 존더코만도의 삶. 그에게 던져진 동료의 질타에 사울은 덤덤히 말한다. "우린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어." 인간성을 도륙당한 존더코만도가 극히 최소한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켜내려 애쓰는 모습은 광인의 행태라 치부하기엔 너무 숭고하고 애처롭다.

<사울의 아들>은 두 시간 동안 아우슈비츠를 겪게 한다. 희생자 가족인 감독은 라즐로 네메스 감독은 깊이 있는 고증을 통해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했고, 주변의 만류에도 이 영화를 보았다는 실제 존더코만도의 마지막 생존자도 현실성을 인정했다고 한다. <사울의 아들>은 실제로 한 사람이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시야 범위만을 보여준다. 4:3 비율의 화면에 잔혹한 배경은 아웃포커싱 되어 흐릿하다. 카메라를 따라 사울을 뒤쫓는 관객이 초점을 맞춰 볼 수 있는 시신은 그가 지키고 싶어 한 아이의 것이 거의 유일하다. 격렬한 도주에서도 흠뻑 땀에 젖은 사울만큼 정신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를 눈 삼아 달리게 된다. 적막 속에 들리는 끔찍한 비명과 작업자들의 숨소리, 한 곳에 실재했을 여러 언어는 현장의 소리를 생생히 느끼게 한다.

두 번 볼 자신이 들지 않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영화지만 그만큼 존재의 가치가 있는 영화다. 극도로 현실성을 살린 이 영화는 비인간성과 그럼에도 잃지 않은 인간성을 기억하게 한다. 나치의 학살은 인류가 반복해선 안 될 최악의 악행 중 하나지만, 인간은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최악을 겪었다고 생각해도 또 다른 최악이 일어나곤 하는 걸 우린 보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인간의 가치라 믿고 싶은 면들 역시 보아왔다. 현실적인, 그래서 경험하지 못한 사실을 경험한 듯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얼마나 잘못했는지보단, 얼마나 살아가야 할 가치가 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사울의 마지막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인간이 죽음에 이르더라도 지켜야 할 아름다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