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싱어의 집도가 끝났다. 그가 이룩한 엑스맨의 성공적인 영화화는 오래 가지 않았었다. 정리되기 힘들어 보일 때쯤 싱어 시절을 그리워하듯 처음으로 되돌아 갔지만, 처참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시 옛이야기를 맡은 싱어는 엑스맨 영화 시리즈를 심폐소생 해냈다. 그의 화려한 복귀전이 커튼콜을 마치자마자, 그에겐 다시 무거운 짐이 올려졌다. 엑스맨 프리퀄의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 프리퀄의 마지막은 늘 특별하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그 어느 때보다 매끄러워야 하며, 단순한 연결 이상의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게 해야 하니까. 화려한 무대 같았던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달리, 이번 영화가 봉합 기술이 필요한 수술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성공했을까. 아직까지의 해외 평가는 의외로 좋지 않다. 엑스맨은 곧 브라이언 싱어의 것이라고 믿는 팬들의 호평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그만큼의 혹평도 흔하다. 개인적으로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애정은 다른 히어로물들에 비해 낮은 편.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 캐릭터들임에도 개개인의 개성을 비주얼 이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데 아쉬움이 많다. 두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그리고 그 사이의 미스틱과 울버린 정도는 여느 다른 영화 속 히어로보다 진지하게 그려지지만 그 밖의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은 너무 낮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얕다. 몇 장면이라도 깊이 있게 다뤄준다면 충분히 공감할 구석이 많은 사연 있는 캐릭터들인데, 멋진 능력에 반할 뿐 그들에 공감하는 경험을 하긴 어렵다. 이번 영화는 화려하고 규모감 있는 액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SF 액션물이라는 기대에 부합한다. 하지만 "너의 내면엔 선한 면이 있어", "난 혼자가 아니야", "넌 세상을 바꿀 힘이 있어" 등의 대사를 심각하게 말하는 주인공들을 볼 때면, 그들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 관객으로선 괜히 부끄러워진다.

강력한 캐릭터가 여럿 등장한다는 건 최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애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나 쉴 틈 없이 액션과 스토리의 합이 맞아 들었던 '시빌 워'에 비해 '아포칼립스'는 부족한 느낌이다. 슬픔과 분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뮤턴트들은 다른 어떤 히어로보다 더 인간적이다. 하지만 너무 잦은 변덕을 부리는 주인공들의 마음은, 너무도 인간적이기에 자신의 치부 같아 불편하다. 캐릭터들이 바통을 넘겨 가며 변심을 거듭하는 덕에, 영화의 드라마는 다소 끼워 맞춰지는 인상마저 남긴다. 6편의 엑스맨 시리즈의 한결같은 주제의식 속에서도 말이다. 이렇게 6편을 보고 나니, 싸울 때에도 화해할 때에도 언제나 편들어 줘야 하는 친구 커플을 보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너네 이제 아무리 싸워도 난 몰라.

다음 다툼의 사연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세세한 흥미로움이 곳곳에 자리하니까. 베토벤과 퀵실버는 그런 존재다.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의 등장은 여러 영화에 자꾸 쓰이지만 언제나 심장을 뛰게 한다. 베토벤과 거의 동급의 애정을 품게 한 퀵실버는 이전 편에도 짧은 등장으로도 가장 유쾌하고 감각적인 씬을 남겼었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애런 존슨이 맡은 퀵실버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며 더욱 비교됐던 그는, 애런 존슨의 퀵실버도 죽었겠다 매력 발산에 더 열심인 것 같다. 비슷한 방식의 등장이지만 훨씬 여유롭고 더 큰 일을 해내는 퀵실버. 이번에야말로 존재감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심지어 그의 친부 찾기는 직접적으로 눈물 뽑는 모이라와 찰스의 이야기보다 더 아련하다. 물론,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건 찰스의 탈모겠지만.

한편, 본래 최강의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진 그레이의 능력 발현은 관객을 향한 이렇다 할 설명이 부족하긴 하고, 산사 그레이로 보이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비주얼과 연출에서 강제 이해되는 클래스. 워낙 캐릭터가 지닌 매력이 막강하고, 로건과 대면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만큼 주요 캐릭터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해낸다. 정말 잠깐 스쳐가는 울버린, 로건 또한 시선과 심장을 동시에 앗아가는 강렬함을 선사한다. 뮤턴트들의 아버지이자 세상의 신을 자처하는 아포칼립스도 진정성 있는 투지로는 로건에 절대 못 당할 느낌. 사실 영화 속 아포칼립스는 빌런의 공포보다는 중2병의 허세에 가깝다.

브라이언 싱어는 성공적인 수술을 마쳤을까. 이 정도면 이야기의 연결에선 꽤 매끄럽고, 다음 이야기가 아직 궁금하다. 하지만 과연 좋은 서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반복되는 주제는 이로서 끝이었으면. 같은 주제를 뚝심 있게 말하는 것도 처음엔 곧아 보였지만 이제는 갑갑하다. 뮤턴트들의 너나 할 것 없는 고민도 더 심도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면 지치기는 마찬가지일 듯. 듣기 좋은 이야기도 한계가 있는 법이지 않나. 이 개인적인 의견들 중 가장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자꾸 가벼워지는 분위기에 무게를 조금 더 실어줬으면 하는 것. 유치함과 동심 자극은 한 끗 차이다. 이번 엑스맨은 스스로 설득되지 않는 것들을 설득하기 바빴다. 그만큼 집중할 수 없었던 나의 두 시간. 이제 예쁜 찰스의 머리발도 끝났으니 꽃길은 치우고, 더 열심히 거친 길을 심도 있게 달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