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고 예쁜 여주인공과 자신감 넘치는 멋쟁이 남주인공의 등장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식상한 콘셉트지만 빠지면 아쉬운 디즈니스러운 주인공 설정은 최신작인 <주토피아>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작은 토끼와 토끼를 괴롭히는 게 익숙한 여우가 바로 그들이라는 점. 동물로 바뀌었을 뿐 환경을 극복하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변함없이 지켜볼 거라고 믿었고. 그런데 조금 의외다. 문제를 극복하고 평화를 찾는 희망적인 이야기는 맞지만, <주토피아>는 태생이 귀족이거나 귀족이 되어 마무리되는 디즈니의 다른 이야기들과 다르다.

어릴 적부터 경찰관이 되고 싶었던 토끼 주디는 그녀의 꿈을 무시당해왔다. 아무리 진화를 거쳐 평등한 사회를 맞이한 주토피아와 주변 세계라지만, 그들 세계에서 경찰은 포식자로 분류되었던 종들이 적임자로 여겨지기 때문. 토끼 같은 작고 약한 동물은 경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주디는 오롯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경찰학교 수석 졸업을 거쳐 주토피아의 경찰관이 되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를 향한 불신과 무시는 주디를 점점 주눅 들게 한다. 그녀와 얽히고설키게 되는 매력적인 파트너 닉 역시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교활한 야수라는 편견 때문에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는 닉. 그는 자신을 향한 편견과 싸우기를 그만 둔지 오래다.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사업으로 수익을 챙긴다.

평등하고 자유로워보이는 사회에서도 출신과 외모가 주는 편견의 그늘을 피하긴 어렵다. 주디와 닉은 주인공이지만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태생적 문제로 차별받는다. 이들이 분투하여 얻어내는 밝은 결말을 통해서도 이들의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해결되진 않는다. 게다가 무조건 옳고 바른 생각만 갖던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주디는 자신이 당했던 차별을 역으로 행하기도 한다. <주토피아>는 확실히 차별에 대한 냉철한 애니메이션이다. 단순히 문제를 상징화하여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얼마나 편견과 그로 인한 차별이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 관객이 한창 몰입하고 있는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깨닫게 해준다. 차별을 넘어 역차별까지 다루는 <주토피아>는 '나는 그렇지 않아'라며 차별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차별은 곧 눈에 보이는 기준, 알고 있는 정보로만 상황을 이해하려 하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이전에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경험을 먼저 떠올린다. 가장 납득하기 쉬운 가설이니까. 편견은 이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고, 진실은 보통 편견에 빠지지 않을 때 드러나곤 한다. 살아가면서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경험은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접근 통로이고, 편견은 다른 사람들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때때로 실마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주토피아>의 동물들도 그들의 오랜 편견을 뿌리째 뽑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 스스로의 생각을 의식적으로 다루어 나간다면 평화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우화를 통해 배운다면, 우리 인류도 비슷하지 않을까.

너무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는 건, 이 귀여운 애니메이션의 유일한 단점이다. 비판적인 생각이나 삐딱함을 가질 수 없게, 너무 과하게 귀엽고 예쁘다. 익숙하면서도 참신한 캐릭터 설정에 곱디 고운 주토피아 도시는 테마파크를 간절히 바라게 한다. 테마파크, 아니 테마열차만 있어도 다음 휴가 계획을 저 곳으로 세울 텐데. 쉽지는 않을 테니, 꿈에라도 보고 싶다. 차별 없는 버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