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이란 분명히 믿을 것이 못 되지만 특정 영역에 오랜 시간동안 경험을 쌓았을 때 생기는 직관은 무조건 무시할 수도 없다. 벌써 영화를 보기 시작한지 20년도 훨씬 넘었다. 평균으로 볼 때 1년에 50편은 최소한 넘는다. 하루에 극장 4군데를 돌아다니며 본 적도 있고, 주말이면 무조건 2~3편의 비디오를 빌려 보기도 했다. 1년에 100편을 넘게 매해마다 본 적도 있으니 저절로 재미있겠다는 영화가 있다. 실제로 남들에게 영화 추천할 때 거의 상대방이 좋아했다.

꽤 흥미가 가는 소재였다. 100년 동안 29살에서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 어느 여인의 이야기다. 최근 흥미있고 재미있는 문화 소재는 대부분 판타지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 실사영화다. 현실에는 불가능하지만 그럴싸한 느낌과 더불어 영화처럼 현실에서 된다면 어떤 느낌과 생각으로  살아가게 될련지에 대해 따져본다.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아델라인은 29살에 교통사고와 함께 물 속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번개를 맞으며 살아난다. 그 이후 그녀는 노화가 멈췄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아델라인은 여전히 모든 모습이 그대로다. 딸과 함께 걸어도 언니, 동생으로 여겨질 정도다. 주민증과 다른 그녀의 모습에 체포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그녀는 10년 주기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새롭게 삶을 시작한다. 그렇게 10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낸다. 중간 중간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어 끝내 포기한다. 이런 경험으로 모든 사람에게 일정 이상의 감정을 털어놓지 않고 더 가깝게 다가가지도 않는다.

집에는 유일하게 강아지만 함께 살아간다. 아델라인은 외롭다. 오랜 시간 살아왔지만 자신을 삶을 함께 나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딸이 있지만 딸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함께 살아갈 수 없지만 연락을 꾸준히 하며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만 누가 봐도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처럼 보일 뿐이다. 정작 그들의 대화는 할머니에게 시시콜콜 혼내는 엄마와의 대화다. 이제 할머니로 더이상 혼날 일도 없는 할머니가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이런 표현은 어떨지 몰라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 사람이 그립지만 오히려 사람을 만나기란 어렵기만 하다. 젊을 때는 여러 사람을 부담없이 많이 만날 수 있지만 이럴 때는 오히려 혼자 있게 마련이다. 참 아이러니한 인생 싸이클이다. 아델라인은 나이를 먹어도 모습은 변하지 않지만 그녀의 생각과 경험은 범접할 수 없을 듯 하다.

영화 속 아델라인은 꽤 많은 독서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도서관에서 근무할 정도였다. 좋은 기업을 보는 눈도 갖고 있어 제록스에 투자해서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없을 정도가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델라인은 남들과 다른 시간 개념을 갖고 있다. 남들이 제록스를 뭐하고 이렇게 오래 갖고 있냐고 말해도 아델라인은 인내가 제일 쉽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팔지 않고 계속 갖고 있었기에 큰 투자 성공을 거둔다. 

물론, 인내를 오래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도 그것은 또 다른 문제였을 듯 한데 아델랄인은 인내를 택한다. 자신은 변하지 않지만 세상은 계속 변한다. 100년을 살아보면 인생이 보이고 세상이 보일까. 특히나 내 신체리듬과 나이는 그대로이니 말이다.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어느 덧 40년을 넘게 살았지만 나이라는 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신체 나이라는 것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20년 전에 비하면 분명히 꽤 많은 모습이 변했겠지만 큰 변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볼 때 20년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내 모습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살아 왔을까. 향후 20년 후에도 내 모습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할 때 아델라인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사실 갑작스러운 사고사만 없다면 죽을 일은 크지 않겠다고 할 때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고 어떤 느낌일까. 분명히 모습은 변했을텐데 지금의 모습과 하나도 변함이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

모든 사람이 세월이 흘러 변해가는데 나만 그대로라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늙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기도 한다. 흉한 모습을 뭐하라 사진 찍냐고 하는 어른들도 있다.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이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할 때 나는 그와 다른 모습이라면 뿌듯하고 좋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듯 하다. 늙는다는 것이 축복은 아니겠지만 어차피 함께 시간과 함께 세월이 가며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라는 점이 좋지 않을까.

지금이 그래서 역설적으로 볼 때 중요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그렇다고 촌음을 아껴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나. 그럴 순 없다. 그래도 현재를 살아가며 소중한 사람과 시간과 경험을 버리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너무 아둥바둥도 그렇고 너무 쾌세라..도 그렇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짧은 인연이지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참 중요하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경험이 쌓여 추억이 된다.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은 참 좋은 영화다. 영화는 결코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영화가 참 좋다. 최근에 들어 과거와 달리 예전 영화를 보여주면 보게 된다. 책도 그렇고 영화도 한 번 본 걸 다시 보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조만간 조금씩 변화할 듯 하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까. 내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그렇게 변한다. 사람이 어떻게 변하냐고 하지만 사람은 변한다. 10년 전 나와 20년 전 나는 다르다. 겉 모습도 다르고 내면의 모습도 다르다.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한 배우인데 묘한 매력이 있다. 영화 자체가 갖는 매력이 묘해서 더욱 그런 듯 한데 갑자기 <가십걸>이 궁금해지며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디서 봐야할지는 모르겠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뉴페이스 여배우를 만나면 좋다. 눈을 감아도 왕조현이 나올 때처럼은 아니어도. 무엇인가 도도하면서도 우아하지만 지적이고 누나같은 이미지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웃으면서 편하게 받아주며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통하고 즐겁게 담소를 즐길 수 있는. 아마도 영화를 보면 그런 느낌을 다들 느끼게 될 듯 하다. 

문득 이런 영화나 소설 하나 쓰면 더이상 소원이 없을 듯 하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능력 부족으로 꿈도 꾸지 못하지만. 어떤 영화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생각이 확장된다. 영화 후반부는 조마조마하면서 감정이입이 되며 짜증도 나는데 마지막이 미소를 지으며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역시나 인간은 장생불사를 꿈꿀지 몰라도 꼭 축복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살아갈 때 나이를 먹더라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