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칼의 기억]; : 한국영화가 무협을 품었다
<협녀, 칼의 기억>
한국영화가 '무협'을 품었다
★★★★
8월13일에 개봉한 따끈따근한 신작 <협녀, 칼의 기억>을 감상하였습니다. 국내 영화계에서는 조금 낯선 '무협'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작품으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등의 박흥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배우들중 연기라면 절대 빼놓을수 없는 남녀배우 이병헌과 전도연이 출연한데 이어 데뷔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김고은의 합류까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며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히기도 했죠. 하지만 주연을 맡은 이병헌이 불의의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개봉은 무기한 연기되어 우여곡절끝에 지금에서야 개봉하게 되었네요.
한국영화도 무협을 품을 수 있다
영화는 익숙한듯 익숙치 않은 무협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중화권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협영화로 인해 굉장히 많이 접해온 장르이지만, 국내영화계에서는 이상하리 만치 흥행성공여부를 떠나 제작하려는 시도조차 뜸했던 장르이죠. 당장 생각나는 작품으로 발해의 마지막 왕자의 이야기를 다룬 <무영검>을 제외하면 딱히 떠오르는 작품도 없습니다.
영화는 제법 무협의 요소들을 잘 담아내었습니다. 가장 먼저 난세였던 고려 말을 역사적 배경으로 두고도, 그 포커스는 큼지막한 역사적 사건보다 세명의 개인에게 집중되어있죠. 의형제를 배신하고 권력에 눈이 먼 '유백'과 또다른 배신자이지만 그 죄를 씻고자 하는 '월소' 그리고 피 비린내 나는 복수의 주체가 될 '홍이'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특이한 것은 월소의 손에 자란 홍이가, 유백과 월소가 배신한 '풍천의 딸'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복수의 운명을 타고난 홍이가 그 기른 정마저 끊어야 하는 안타까운 운명에 처해있음을 암시하고 있었죠.
장면 하나하나는 정말 버릴것없이 화려해보였습니다. 마치 그림이라고나 할까요. 무협영화의 단골무대인 대나무숲과 화려한 미(美)가 돋보였던 고려의 고궁을 배경으로 트레이드 마크인 와이어액션이 펼쳐지는데 그 영상미가 단연 압권이었죠. 백문이 불여일견이지만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영화 중간에 나오는 '유백의 초호화 궁궐', 그리고 세 인물의 가슴아픈 운명과 하얀눈발이 이색적인 카메라 워크와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는 '라스트 씬'은 이 영화에서 절대 뺴놓을수 없는 비주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협녀, 칼의 기억>은 이렇게 무협이라는 장르의 노선을 철저히 따르고 있기에, 작품이 갖고 있는 완성도 보다 장르 자체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무협이라는 장르 특히 '와이어액션'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신 분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값진 121분이 되겠죠.
안타까운 사랑과 복수, 비극적 운명의 세 인물
앞전에 말씀드렸지만, 세 인물에 대한 복잡한 인물관계는 <협녀, 칼의 기억>만의 또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누구보다 야망에 눈이 먼 유백과 그 누구보다 복수에 눈이 먼 월소의 서로 다른 운명은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안타깝게 비춰지고, 그 운명을 관통하는 이들의 그리움이 참 안타깝게 다가왔죠. 이러한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복수의 운명을 타고난 홍이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결국 끝내 이루지 못한 비극적인 사랑으로 마침표를 찍고맙니다.
영화에는 소소한 반전도 있었습니다. 아주 흥미롭지는 않으나 반전에 주목할 만한 영화도 아니고 반전을 위해 이전의 영화의 설정들을 붕괴시키지는 않는데서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배우들의 힘, 주옥같은 대사
이부분에서는 의견이 갈릴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배우의 힘이 그 무엇보다 컸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강인함과 냉정함을 비집고 아주 뭉클한 그리움의 감정을 너무나 잘 전달해준 유백의 이병헌 님이 있었고, 눈먼 장님이라는 쉽지 않은 인물을 맡아 역시 증오와 그리움의 공존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가능케 했던 월소의 전도연 님이 있었죠. 이 위대한 배우들이 주옥같은 대사들을 읊어 낼때마다, 영화가 어쩜 그렇게 아름답고 뭉클하게 다가오는지. 클라이 맥스에 와서 정점을 찍는 이들의 비극엔 그 여운이 가시질 않은채 극장을 나와야 했죠.
홍이를 맡아 액션연기와 전후반부의 상반된 분위기를 연출해준 김고은 님의 연기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율역을 맡았던 김준호 님은 연기력의 문제는 아니나 쓰임에 있어서 조금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딱히 어떤 역할인지 핀트가 안맞는 상황에서 그다지 불필요한 장면을 양산해내는게 굳이 필요한 캐릭터였나 생각이 들정도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