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모집니다. 막이 할머니는 태풍과 홍역으로 두 아들을 잃은 것도 모자라, 아들을 낳기 위해 후처를 들이게 되는데요. 드물지만 불과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를 잇겠다는 목적으로 엄연히 행해지던 일입니다. 후처, 그러니까 일명 씨받이라 불리던 여인들은 소모품과 다름 없는 존재였으므로, 아이를 낳고난 뒤에는 원래 집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전처나 후처나, 여인들에게 잔인했던 시절이었죠. 전처는 아들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후처라는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었을 것이고, 집으로 돌아간 후처의 여생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임이 분명한데요. 서로를 원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약자이기도 합니다. 막이 할머니는 그때에도 여기까지 아니, 그 이상을 짐작하고 계셨던 덜까요? 그토록 첫 아들을 얻고도 차마 춘희 할머니를 돌려보내지 못합니다. 자신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춘희 할머니를 받아들였노라 말하지만, 막이 할머니는 알고 계셨을 겁니다. 모른 척 춘희 할머니의 존재를 잊고 살더라도 또 다른 가련한 인생을 잊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요. 그렇게 전처와 후처로서 한 지붕 아래서 산 지 46년. 이 두 여인의 기구한 인연이 어떤 식으로 여물었을지 영화 '춘희 막이'의 시선으로 들여다 봅니다.

  자매? 친구? 모녀?
  

  영화 '춘희 막이'는 처음부터 춘희 할머니와 막이 할머니의 인연이 전처와 후처의 관계로 시작되었음을 확실히 합니다. 자식들에게도 자신들을 키워준 '엄마'와 낳아준 친모의 의미인 '오마이'로 구별되어 불리는 걸 보면, 지금도 가족 내에서의 위치는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두 할머니의 일상을 들여다 보노라면, 한눈에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가깝고 때론 애틋하게도 보이는데요. 툭툭 내던지듯 표현을 서툴지만 늘 춘희 할머니를 먼저 챙기는 막이 할머니,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시야에서 막이 할머니를 찾는 춘희 할머니.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할 유일한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요. 이웃마저 춘희 할머니가 후처임을 언급하며 천떡꾸러기 취급을 해도 막이 할머니가 단 한 번도 옳다고 대꾸하지 않는 걸 보면,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의미로 발전되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요.

   의외의 반전

   영화라니 거창해 보여도, 하루 세 끼 밥해 먹고 밭일 하고 가끔은 시내에 나가 장보고 하는 게 전부인 할머니들의 일상에 뭐 그리 대단한 사건 사고가 있겠습니까? 밋밋하고 지루하고 그렇지요. 그래도 아웅다웅 투닥거리는 것 같고 일방적으로 막이 할머니가 구박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내는 서로 챙겨주고 보듬어 주는 마음뿐인 할머니들을 지켜보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평화로운 삶이 계속되지는 않겠죠. 이웃사촌의 장례 행렬을 목격한 날을 계기로, 막이 할머니는 새로운 결심을 한 듯한데요. 늘 자신을 엄마처럼 언니처럼 따랐던 춘희 할머니를 위해 준비해 둔 것들, 막이 할머니에게 숨겨왔던 춘희 할머니의 나름 충격(?)적인 반전을 접하며 울컥해지는 건 저뿐만은 아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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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인연도 있군요. 평생 서로를 미워할 수도 있을 이들이 누구보다 특별한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갑니다. 머리로 이해하면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을 지우고 인간을 들여다 보면, 아마 우리도 누구보다 귀한 인연이 곁에 있음을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미움보다 사랑이 좋은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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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영화 '춘희 막이'는 제게 조금은 다른 의미로 잊을 수 없는 영화로 남을 것 같아요. 객석에 관객은 오직 저 혼자. 영화관 하나를 전세낸 듯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영화를 봤거든요. 덕분에 영화의 마지막에 '같이 가자'는 막이 할머니의 말에 눈물 찔끔 흘려도 창피하지 않았어요. 영화도 영화관에 혼자 앉아 있었던 일도 색다르게 신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