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콜린스 - 남용되는 와중에도 빛나는 존 레논의 흔적과 알 파치노의 연기
존 레논의 음악이 영화의 ost로 나오고 알 파치노가 주연을 맡아 관심을 끈 영화인 '대니 콜린스'를 보고 왔습니다. '대니 콜린스'는 1971년에 신인가수로 주목받기 시작한 스티브 틸스턴이 음악 잡지에서 인터뷰한 것을 보고 존 레논이 직접 편지를 써서 잡지사로 보냈다가 34년 후에 그 편지를 받은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입니다. '라푼젤'과 '라스트 베가스'의 각본을 썼던 댄 포겔맨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40살 연하의 여자친구에 요일별 슈퍼카까지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아가던 슈퍼스타 ‘대니 콜린스’.
우연히 40년 전 ‘존 레논’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월드투어를 취소하고 매니저에게 더 이상 지금까지 해온 노래는 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 후,
홀연히 뉴저지의 한적한 호텔에 투숙해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가게 되는데…
<그간의 히트곡으로 갑부 가수가 된 대니 콜린스(알 파치노)>
존 레논의 친필 편지를 그가 죽은 뒤 한참이 지나서야 받았다는 흥미로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음악 영화라기보다는 가족 영화로써 재치 있고 발랄하며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로,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무난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무난한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존 레논의 음악과 알 파치노의 연기이겠죠.
알 파치노의 연기는 대니 콜린스라는 캐릭터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이 영화 속 그의 연기에는 관록이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가벼운 농담으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능글맞은 모습, 사람들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신곡을 부르려고 하는 진지한 모습, 아들을 다독여주는 아버지로서의 모습까지 그 순간순간에 어울리는 연기를 하는 그를 보면 '역시 알 파치노'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대부', '히트'에서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카리스마로 무장해 연기를 했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을 지운 채 귀엽고 친근한 할아버지처럼 연기했디는 것이 참 능숙한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도 아베트 베닝, 제니퍼 가너 등의 배우들이 안정적인 연기로 알 파치노를 제대로 서포트 해준 것 같습니다.
명불허전 존 레논의 음악도 굉장히 좋습니다. 'Working Class hero'부터 가장 익숙한 존 레논의 'Imagine'과 'Love'까지 총 10곡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영화 속에 흘러나올 때는 귀 호강을 아주 제대로 하게 됩니다. 언제 들어도 참 좋은 노래들이죠.
<알 파치노의 관록이 돋보였던 영화>
이렇게 존 레논의 음악과 알 파치노의 연기로 귀 호강, 눈 호강 하긴 했지만 영화 자체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라스트 베가스'의 각본도 그렇지만 이 영화 역시 갈등 관계가 너무 성급하게, 혹은 안일하게 풀어간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대니 콜린스라는 인물이 존 레논의 편지를 받고 더 이상 '히트곡'이 아니라 '자신의 노래', '나'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니 콜린스는 자신의 아들과 그가 묵고 있는 호텔의 매니저인 메리와 갈등 관계에 놓입니다. (메리와의 갈등은 모호하긴 하지만요.) 그런데 그런 갈등들이 십몇 분만에 해결되버립니다. 영화가 조금 더 그 관계를 해소하는 것에 정성을 들여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대니 콜린스의 행동 변화의 동인이 약하게 와 닿고 급하게 느껴진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존 레논의 편지를 받은 다음에 '나'를 찾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후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아들 앞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신곡 발표를 위한 미니 무대에서 도망치고 망가진 다음에 다시 정신 차리기까지 너무 즉흥적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런 면에서도 각본이 좀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 전개도 진부하다는 면도 아쉬웠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 영화의 각본은 지난번 '라스트 베가스'에 이어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푼젤'의 각본은 정말 잘 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다시 자신의 음악을 시작하고 아들을 만나보기 위해 뉴저지로 간 대니 콜린스>
게다가 이 영화는 존 레논의 편지를 받아 이제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 즉 그 존 레논의 편지에 관한 실화가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의의일 텐데 그것을 그냥 단순한 소재로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의 내용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따져가다 보면 존 레논의 편지가 없어도 충분히 전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는 초반에 존 레논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일 것 같이 나오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존 레논은 뒷전에 두고 꺼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존 레논의 편지에 관한 실화를 대체 왜 이 영화의 모티브로 사용한 건지 관객에게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존 레논의 노래를 듣는 것이 좋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존 레논의 음악이 나올 때마다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다고 봅니다. 존 레논의 음악이 영화상에 흐를 때마다 자막으로 어떤 곡인지 알려주어 존 레논의 음악임을 재차 각인시키는 것 역시 이 영화가 하는 말과는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거슬렸습니다.
<대니 콜린스에게 보낸 존 레논의 편지>
이런 허술한 면들 때문에 괜스레 존 레논의 음악과 알 파치노의 연기가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가장 1순위로 피해야 했던 게 바로 그것이었을 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