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일상의 것들이 커다란 기적이 되는 증폭의 화법
가족을 영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하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봤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봤을 때 절제되고 잔잔한 화법으로 감정적 파장을 크게 일게 하는 것에 인상깊었는데 그 전작인 이 영화에서도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줄거리 - 네이버 영화)
기차가 서로 스쳐 지나갈 때 ‘기적’이 일어난대~ 그래서 소년이 바라는 건.. 화.산.폭.발?!!
나는 엄마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삽니다. 동생 류랑 아빠는 저기 멀리서 따로 삽니다. 엄마랑 아빠랑 맨날 싸우더니,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습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 가족들이 다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저기 저 위에 있는 화산이 폭발해서 아빠랑 류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됩니다. 형은 화산이 꼭 폭발하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하는데 철부지 내 동생은 가면 라이더가 되고 싶다고나 하고, 정말 어린이 같은 소원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말이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가 반대편에서 서로 달려오다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앗싸~ 그럼 거길 가서 소원을 빌면 되겠네! 그래서 좋아하는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은 친구랑,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친구랑 거길 가려고요. 동생도 오라고 해서 나랑 같은 소원을 빌라고 해야겠어요. 난, 우리 가족이 꼭 같이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왼쪽부터 영화의 주인공, 동생 류노스케(마에다 오시로)와 형 코이치(마에다 코키)>
사실 이 영화에 큰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사건이 그냥 기차가 지나갈 때 각자 염원했던 소원을 비는 것이 다니까요.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인만큼 감정적인 파장은 엄청난 영화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큰 사건이 없이 흘러가는 이 영화는 우리 주변의 것들, 일상의 것들에 주목합니다. 결국 아픈 척해서 학교를 빠져나가려고 겨드랑이에 막 비빈 체온계, 바닥에서 주운 동전,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가루칸 떡 등 코이치가 류노스케,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기까지 마주쳤던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삶의 작은 기적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마지막에 두 대의 기차가 지나가려고 하는 순간 코이치가 지나쳐온 소소한 일상의 것들을 떠올리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이 일상의 것들을 가지고 최대한의 감정적 파장을 일으키는 굉장히 좋은 장면이죠.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의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두 대의 기차가 오는지 확인하는 아이들>
또한 영화 속에서 가루칸 떡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사용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코이치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가루칸 떡을 처음 먹었을 때는 맛이 밍밍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에는 그 떡에서 은은한 단맛이 난다고 말하죠.
(어찌 보면 스포일러가 포함된 내용입니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그만큼 좋은 영화니까요.)
코이치가 느끼는 이 맛의 변화가 바로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위에서 언급했던 말과 연장선상에 놓인 말이기도 합니다. 코이치는 원래 가족이 재결합되기를 바라면서 화산이 폭발하기를 바랍니다. 화산이 폭발하면 가족이 다시 모일 테니까요. 그런데 정작 소원을 빌 때는 소원을 빌지 않고 류노스케에게 그저 아빠를 부탁한다고 말합니다.
코이치는 성장한 것입니다. 가루칸 떡의 밍밍함에서 은은한 단맛을 찾아낸 것처럼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에서, 그 작은 것들에서 가치를 찾은 것입니다. 삶 그 자체가 기적이 된 순간이겠죠. 동시에 가족이라는 끈끈한 관계는 거리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되게 좋아하는 스틸컷입니다. 뭔가 찡한 느낌이 있어서요.>
이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보였던 작은 것들이 모이고 뭉쳐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영화의 화법을 증폭의 화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작은 것들이 그 자체로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내니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이 굉장히 훌륭한 연출력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런 뛰어난 연출력에 호응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상당히 좋습니다. 역시 가장 눈길이 가는 배우는 영화의 중점, 코이치와 류노스케를 연기한 마에다 코키와 마에다 오시로입니다.
일상 연기라고 하죠. 강하고 센 연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일상에 녹아든 듯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굉장히 잘 소화해냅니다. 요구르트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고 나서 빨대를 그 요구르트 병 안으로 쏙 밀어내서 버린다던지 여행을 갈 돈을 모으기 위해서 동전을 주우러 다니는 마에다 코키의 연기를 보면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 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에다 오시로는 동생 역의 연기를 딱 맞게 해냅니다. 특히 시종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 때가 맞는데 천방지축 동생의 분위기를 자연스러우면서 잘 표현해냈죠.
이 둘이 만났을 때는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도 영화 속 연기의 백미라면 백미겠죠.
그 두 아이의 아빠 역의 오다기리 조도 자기 몫을 제대로 합니다. 여유롭고 철부지 아빠의 느낌을 잘 살려서 영화의 결을 더 부드럽게 만들어줬죠.
<아빠(오다기리 조)와 사는 류노스케가 늦잠을 자고 있는 아빠를 깨우는 장면>
굉장히 좋은 영화입니다. 선선하니 날씨가 좋고 나른한 날씨에 보면 딱 제격인 영화이기도 하고 괜스레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주변의 것들이 소중하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늘어지고 나른한 날에 이 영화 보시는 걸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