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보니 관람을 못 했는데 볼까 말까라는 그저 한 마디를 썼더니 몇몇 분들이 '리뷰 기다립니다'라고 쓴 걸 '협박합니다'라고 읽고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보게 되었다. 이미 예고편이나 몇몇 프로그램에서 대강 내용이나 출연자들의 평정도는 들었다. 몇몇 분들이 올린 서평이나 기사를 통해 괜찮다는 이야기도 들어 최소한 재미는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봤다.

감독 류승완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때 가장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 그 이후 연출한 작품들은 뛰어넘는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당시 삽입곡을 듣고 있을만큼 노래도 좋았다. 흑백에 완전히 고삐리들의 액션등이 참 맘에 들었다. 약간 치기어런 작품이었을지 몰라도 파닥파닥 뛰는 생생함이 살아있었다. 그 이후로 몇몇 작품을 보기도 했고 별로 끌리지 않아 안 본 작품도 있다. 전작인 <베를린>은 괜찮았지만 다소 평소 작품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 <베테랑>은 원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해야할까. 원래부터 성룡의 액션을 흉내내고 똑같이 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작품은 찍지 않게 되었다.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 쌓아온 액션을 집대성했다는 느낌도 든다. 초반에 화면과 함께 등장하는 블론디의 heart of class는 너무 유쾌했다. 방송에서 오래도록 꼭 쓰고 싶었던 곡인데 저작권료때문에 못 쓰다 이번에 썼다고 하는데 조금 아쉽다. 조금만 더 화면과 함께 썼으면 어떠했을까. 발랄한 노래답게 좀 더 초반 화면이 발랄하게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그 이후 러시아 밀수꾼을 잡는 장면에서 나온 샌드페블즈의 나 어떻해도 아주 좋았다. 이마저도 어딘지 곡이 짧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금방 끝났다. 초반에 이렇게 화면과 음악으로 방방 뛰어놓더니 그 다음부터는 특별히 음악으로 감정이나 화면을 이끌어가지는 않았다. 진지하게 진행되는 장면이라 그럴 수 있었지만 마지막에 서도철(황정민)과 조태오(유아인)이 싸울 때 음악을 다시 넣었으면 좋아겠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가볍게 보일 우려가 있기는 하다. 자막 올라갈 때라도 쓰지.

영화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오랜 시간동안 상업영화 감독으로 경력을 다진 감독답게 관객에게 쾌감을 주고 울분을 토해 내야할 지점이 어디인지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해서 선사한다는 느낌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하며 점점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갈 때 주변 인물들로 인해 함께 공감하고 조태오에 맞서는 서두철에게 환호하게 만들었다. 중간 중간 이런 쾌감을 선사하는 장면과 대사로 현실에서 못하는 대리만족을 해준다.

예전 <부당거래>를 찍으며 더 풀어내고 싶은 내용이 있었는데 계속 간직하다 이번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베테랑>을 찍었다고 하는데 1,000만 관객이 들 정도로 성공했다. 기본적으로 류승완 감독은 연기자를 작품의 꼭두가시로 쓰지 않고 판을 만들어 주고 알아서 놀고 만드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마음것 자신의 에너지를 펼칠 수 있었다. 오히려 평소와 달리 유해진은 최대한 자신의 에너지를 꾹꾹 누르고 연기했다.

반면 오달수는 완전히 경력도 오래되었고 한국에서 최다 관람하게 만든 배우에게 실례지만 이번 작품에서 완전히 포텐이 폭발했다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작품 전체를 완전히 들었다 놨다 했다. 황정민은 예의 연기를 선 보였다.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지만 역시나 액션쪽에서 경찰이나 그 반대인 깡패쪽의 역할이 잘 맞는다. 워낙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 이런 말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정도로. 

이번 작품에서 서두철의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와 "쪽팔리지는 말자!"라는 대사는 두고 두고 남을 말이다. 맞다. 영화에서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너무 가오없고 쪽팔린 짓을 한다. 뻔히 눈 앞에 보이는 부조리에 최소한 대항하지는 못할지라도 포기하거나 반대할 수는 있다. 맞서지는 못해도 거부하거나 신고할 수는 있다고 본다. 현실에서도 영화처럼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맞다. 우리가 살면서 쪽팔리지 않는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끝으로 유아인은 칭친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유아인이 출연한 작품을 볼 때 유아인의 연기를 꼬집을 점은 없었다. 약간은 정형화된 연기를 할 때도 있다는 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아이돌 배우답지 않게 개념도 장착한 친구같고. 이번 <베테랑>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달리 난 조금 아쉬웠다. 안하무인 인물이라는 것은 알지만 재벌이다. 그 이야기는 평소에는 보다 훨씬 더 자신을 감추고 폭발할 때 미쳐야 하는데 두가지 모습을 보여줄 때 훨씬 더 대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컨셉 자체가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 감독이 요구했을수도 - 무엇인가 보다 더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영화 상 아쉬운 점은 둘째 사모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왜 본처가 아니고.

1,000만 관객이 들려면 20~30대가 아닌 50대 이상이 움직여야 하는데 극장에 실제 50대 이상인 분들이 꽤 보였다. 평일 낮이라 관람객은 기껏 많아야 20명이었는데. 실제로 나보다 더 잘 웃고 관람했다. 최근 젊은 층보다 시간이 훨씬 여유있어 더 많이 본다는 느낌도 든다.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고 쾌감도 갖고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하는 묘한 동질감과 공감도 하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액션도 화려하지 않고 그럴법한 액션이라 더욱 현실감이 살았다. 이제부터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특별한 일 없으면 관람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