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여러 분야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뿐, 깊이 있는 지식이라곤 없는 내게도 '힉스 보손'은 비교적 익숙하다. '신의 입자'라고 불리며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2012년에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처음 발견되고, 2013년에 공식적으로 존재가 밝혀진 힉스 보손 입자는 피터 힉스에 의해 약 50년 전부터 가정되어 온 것이다. 이 유명한 입자는 힉스 장을 자극해 쿼크나 전자 같은 기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에 관여한다. 물리학에서의 대칭성은 아주 중요한 성질이며, 이 대칭성을 자발적으로 깨뜨리는 것이 '힉스 메커니즘'이다. 아직 힉스 보손의 정확한 역할이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 막 발견된 입자인 만큼 추가적인 연구가 무궁히 필요할 것이다. 다만 이 발견 자체가 인류의 과학 역사에 중요한 부분임은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힉스 보손이 발견된 데에는 유럽 각지에서 모인 물리학자들이 우리 돈으로 10조가 넘는 비용을 들여 공동으로 건설한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가 있었다. 이 이름만 들어도 대단해 보이는 기계가 똑똑한 학자들의 이론에 따라 계속 가동되고 있다니, 더 많은 입자와 더 주요한 상호작용을 발견하는 것도 머지 않아 이루어지지 않을까. 스티븐 호킹은 힉스 보손이 발견되지 못할 것에 내기를 걸기도 했다고 하니, 현대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이 최근의 발견에 감격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무지한 덕에 적절한 비유를 할 수는 없지만, 최근 명왕성에 인류가 도달하는 희열을 보았을 때와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따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적절치 않지만,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고 더 깊이, 멀리 다가갈 수 있게 된 노력의 산물을 얻은 사건들이라는 점에서는 닮은 듯도 하다.

주목 받는 이론 물리학자인 리사 랜들의 이 책은 비록 2013년의 분명한 발표 이전에 쓰인 것이라 불확실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대신 첫 발견에 대한 환희가 더 깊게 느껴진다. 말했듯 비전공자이자 무지한 수준의 일반인이 읽기엔, 평이하고 친절하게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발표 당시 갈채가 쏟아졌다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발표한 프리젠테이션 문서의 첨부도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암호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끝내 지울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하게 현대 과학의 진보를 체감하는 즐거움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낯선 분야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고 즐겁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또 다른 세상의 면인 만큼, 여행하는 기분이다.

힉스 보손은 실로 매우 특별한 입자이며, 우리는 힉스 보손에 관해 더 많이,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만 한다. (12쪽)

힉스 보손은 우리가 아는 한 실용적인 의미는 전혀 없다. 그러나 전자가 처음 발견 되었을 때에도 전자가 뭐에 좋은지 아무도 몰랐다. 똑같은 일이 양자 역학의 역사에서도 일어났다. 현재 양자 역학은 반도체와 전자 산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서 힉스 보손의 실제적인 응용을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