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그 시간, 그제서야 문을 여는 식당이 있습니다. 가게 안팎 어디든 특별한 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하고 작은 식당인데다 번화가 뒷골목 어딘가에 묻혀, 일부러 찾아가겠다 맘 먹지 않고서야 가게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요. 이래 가지고는 장사가 될까 싶은데, 그게 또 의외로 은근히 손님이 많습니다. 오늘도 식당 안의 모든 자리는 만석. 시끌벅적한 식당 안을 들여다 보면 손님들은 주인장을 마스터라 부르고, 주인장은 손님이 원하는 요리를 만들어 줍니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식당을 찾는 손님들 중에 사연 한두 가지쯤은 지니지 않은 사람들이 없는데요. 밤이 깊어갈수록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르익고, 마스터는 사연 맞춤형 손님 맞춤형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의 기특한 면 못난 이면까지도 따뜻하게 품어 줍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위로로 배도 든든 마음도 든든 채워주는 식당, 사람들은 이곳을 심야식당이라고 부르는데요. 오늘은 어떤 손님이 이곳을 찾을까요?

   할 수 있는 요리라면 뭐든 만들어 주지

   잔잔한 영화라면 손사래를 치는 남편이 웬일로 먼저 보고 싶다고 한 영화인데요. 요즘 회사 일로 한창 스트레스를 받던 터라 '다뜻한 요리 한 접시가 위안이 되는 곳'이라는 포스터 속 글귀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을까 짐작해 봐요.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 맛있는 음식이 위로가 될 때가 있잖아요. 끊어내야 하는데도 잡념과 고민들은 더욱더 사납게 고개를 들고 친한 친구에게조차 전화를 걸기에도 술 한 잔 하자 하기에도 곤란한 새벽 3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절실할 때가 가끔은 생기는데요. 그 바람이 현실이 된다면 심야식당과 비슷한 모습이 될 것 같아요.

   크지도 작지도 않고 여기저기 손때 묻어 정감이 묻어나는 식당과 무뚝뚝해 보이지만 손님이 원하는 요리라면 뭐든 다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사소한 어리광도 선뜻 받아주는 마스터, 그리고 익숙하게 '늘 먹던 걸로'라는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주문하는 단골손님과 첫 방문인데도 금세 경계심이 풀리는 새내기 손님들이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는 밤... 제가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심야식당을 찾는 손님이 치유를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따뜻한 대리 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겼어도 심야식당은 우직하게 한 가지 음식을 주제로 음식과 손님의 사연을 엮어냅니다.

   너무 짧은 120분

   드라마 '심야식당'을 애시청하시는지라 영화화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요.  '나폴리탄' '카레라이스' '마밥' 등 하나의 음식과 하나의 사연을 엮어내는 구성은 익숙해도 반가웠고, 문어발 비엔나 소시지나 도톰하게 구워낸 계란말이 등 심야식당 단골 메뉴를 눈으로 맛보는 즐거움도 색달랐어요.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수록 헛배가 부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요. 짧게 요약하자면 정성 가득한 슬로 푸드가 주특기이던 식당에서 집밥 흉내낸 인스턴트 음식을 먹은 기분이랄까요?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려면 뭉근한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120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에피소드의 맛을 음미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의문의 납골함을 영화 전반에 걸쳐 잊을만 하면 등장시키는데요. 이게 또 개인적으로는 몰입에 방해가 되더라구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데다 납골함에 부여하는 의미도 모호해서, 다른 에피소드에서 받은 감동을 덜어낸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결국 총체적으로 드라마보다는 몰입도가 떨어졌는데요. 그래도 처음 심야식당을 접하는 남편은 괜찮게 봤다고 하니, 첫 손님과 단골 손님의 시각 차이가 영화에 대한 감동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