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 선택
딱히 끌리지 않았다. 최동훈 감독에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조진웅, 이경영, 오달수 등 화려한 연기진까지 합치면 꼭 봐야 할 영화처럼 보이지만 별로 끌리지 않았다. 올 여름 한국 영화중에는 <협녀>가 제일 끌린다. <암살>은 끌리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일제시대가 배경인지도 모르겠다. 어딘지 모르게 철지난 영화처럼 느껴지는. 여전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 참 많은 현대사지만 일제시대라가 배경이라는 사실이 나도 모르게 별로였지 않나싶다.
<암살>은 긴장하면서 볼 만한 장면이나 흡인력있게 볼 만한 장면은 없다. 내용전개도 딱히 흥미진지하게 몰입하며 보게 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무려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라는 러닝타임동안 지루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은 것을 볼 때 내용이 괜찮다. 분명히 두드러지게 인상적이거나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는 전개도 없는데 지루하다는 느낌없이 영화를 봤다.
생각해보면 가장 큰 이유는 전지현이 지속적으로 나와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거의 대부분 장면에서 전지현이 등장하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 남자배우들은 병풍까지는 아니지만 다소 밋밋한 역할에 그쳤다. 무척이나 뻔한 캐릭터에 다소 예측가능한 인물들의 향연이었는데 전지현만큼은 쌍둥이까지 등장하며 극의 활력소였다. 아쉬운 점은 전지현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 예니콜역으로 다시 연기생활에 꽃을 피웠던 것과 같은 캐릭터였으면 좋겠지만 너무 참한 이미지로 돌아갔다.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거의 대부분 조진웅과 오달수가 따 먹는다. 다들 진지하게 역할극에 충실할 때 두 배우만이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고 관객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이토록 긴 영화에서 두 배우마저 없었다면 어쩔뻔 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 외에 황덕삼 역의 최덕문은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점점 비중있는 역할로 나오고 있어 반갑다. 이런 배우들이 좀 더 인기를 끌어 좀 더 확실하고도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줬으면 한다.
영화는 다소 복잡하다. 독립군이 나오고 독립군을 배신하는 인간이 나오며 전형적으로 나쁜 일본군과 착한 일본인이 나오고 돈을 쫓는 킬러가 나온다. 이들이 얽히고 섥히며 엉킨다. 이럴 때 대부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선명하지 못하며 혼돈스러운 상황일 생기기 마련인데 시대상황이 단순하게 보여준다. 나쁜 놈이 아니면 착한 놈이다. 어정쩡하게 어쩔 수 없는 포지션을 갖고 있는 놈이나 고뇌하는 인간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면 시간상 제거되었거나.
최동훈 감독은 늘 여타의 감독들과 달리 과감히 영화내용 전개상 필요하면 반드시 죽인다. 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죽여버린다. 이번 <암살>에서 출연한 배우들이 독립투사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주연배우들이 너무 좀비같다. 다른 배우들은 스쳐도 죽는데 주연들은 정면에서 총을 쏴도 죽지않고 기어이 무엇인가 액션을 취한 후에 죽는다. 좀 과했다. 영화를 볼 때 마지막에 가서 이 타이밍이 딱 좋은 결말이다 싶은데도 더 나올 때 수긍할 때가 많은데 <암살>은 반반이다.
마지막에 안옥윤(전지현)이 한 말에 염석진(이정재)이 이런 말을 한다. "나도 몰랐다. 나도 일본이 망할 줄 알았다면 배신하지 않았다." 이 말이 맞다고 본다. 누구도 인간은 미래를 볼 수 없다. 각자 자신이 상황에 따른 판단으로 내린 결론이 현재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고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있고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은 결론이다. 뒷 부분은 좀 사족처럼 보였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저 안에 함축되지 않았을까 싶다.
최동훈 감독 작품은 약간 퐁당퐁당인 느낌이다. 하나 끌리면 그 다음 작품은 안 끌리고. 다음 작품은 끌릴 가능성이 무척 클 듯 하다. 또한, 내 촉은 참 좋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든다. 괜히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굳이 꼭'은 아니었다. 올 여름 영화에 어느 정도 인기를 끌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배우빨이 있으니 중간정도는 하지 않을까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