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1때 같은 친구 녀석이 넋이 나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것은 참 구체적으로 기억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왕조현에게 빠져 있다고 고백한다. 난 웃기는 녀석이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당시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실시간으로 상영하지 않던 시절이라 유명한 영화는 시네마데크같은 곳을 전전하거나 만화방에서 봤다. 친구가 동네 근처에 있는 만화방에 만화를 보러갔다가 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한 테이프를 미리 들여와 틀어줬다. 만화도 볼겸 그 곳을 갔다. 만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TV 가까운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로 <천녀유혼>이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몰려들었다. 나도 그걸 알고 잽싸게 만화책을 덮고 - 당시에는 하루종일 얼마 식으로 계산 - 보게 되었다. 작디 작은 TV로 봤지만 - 당시에는 12인치 정도가 고작이었다 - 영화가 끝나고 나도 넋이 나갔다.

집에 와 누워 눈을 감으니 이럴수가! 왕조현이 날라다닌다. 내가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잠을 자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눈을 감았을 뿐인데 내 눈 앞에서 왕조현이 날라다녔다. 흡사 죽어라고 테트리스를 했더니 눈만 감으면 막대기들이 떨어져서 맞춰야 하는 느낌보다 더했다. 그렇게 당시 홍콩영화 열풍은 불었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천녀유혼>등의 홍콩영화가 한국을 휩쓸었다.

이미 다들 비디오테이프로 봤지만 극장에서 상영하니 안 본것처럼 다시 관람했다. 당시에는 재미있게도 극장에서 장국영이나 주윤발 등이 나오면 소리지르고 사진찍고 그랬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촌스러운 행동이지만. 지금 사춘기 엄마, 아빠들이 했던 행동이다. 그렇게 왕조현과 사랑에 빠졌다. 왕조현은 농구선수 출신이라고 하고 너무 예쁘고 홍콩 영화 배우들은 미스 홍콩출신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홍콩은 다들 예쁘다는 소리도 나왔다.

심지어 홍콩 배우들인 주윤발등이 키가 크니 홍콩은 키가 180은 된다는 소리마저 있었다. 거기에 <첩혈쌍웅>이나 <영웅본색>뿐만 아니라 <천녀유혼> 2편이 나왔다며 친구들끼리 모여 비디오가게에서 녹화 뜬 그 테이프를 갖고 설레는 마음으로 틀었더니 전혀 상관없는 영화일 때도 있었다. 그저 주윤발, 장국영, 왕조현이 출연한 영화를 그렇게 속인건지 속은건지 봤다. 그래도 그들이 나온다는 점 때문에 딱히 불만없었다. 또한,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적 요소는 다 갖추고 있어서.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갖게 된 왕조현의 실제 모습은 전혀 모른다. 오로지 왕조현은 영화속 이미지와 화보속 모습이외는 알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왕조현에 대한 소문은 뜨문뜨문 알려진다. 살이 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뺐다는 이야기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며 많은 스타들이 캐나다 등으로 이민을 갔다. 그런 배경속에 홍콩 영화는 늘 암울하고 미래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천녀유혼>으로 서극감독도 유명해졌다. 영화속에 나오는 '반야바라밀'을 당시에는 잘 몰라 '뽀요뽀로미'식으로 외워 서로 친구들끼리 장풍을 쏘기도 했다. 또한 음악으로 '아~~~~아~~아~~ 나오면 왕조현이 나오는 씬이라 거의 음악과 동시에 조건반사로 음악만 나오도 왕조현이 떠올랐다. 그뿐 아니라 영화의 OST인 장국영의 노래와 메인 테마 음악은 저절로 이 영화에 대해 각인효과로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다시 보게 되니 당연히 촌스럽고 눈에 띄는 어색한 장면도 많다. 왕조현도 연기라기보다는 예쁘게 보이려고만 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점이 바로 왕조현의 매력을 더욱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역할 자체가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당시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 중에 왕조현을 잘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학창시절을 다닌 것이다. 공부만 해도 책받침으로 학교 앞 문방구에 도배된 사진을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당시는 홍콩배우들의 사진이 도배되었던 시절이다.

그동안 케이블에서 자주 틀어줘서 그때마다 보고는 했다. 완전히 전부 시청한 경우는 드물고 거의 대부분 3분의 2정도를 시청했는데 이번에 전부 시청할 기회가 있어 리뷰를 남기게 된다. 쓰려니 <천녀유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왕조현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고 자연스럽게 당시 홍콩 영화에 대해서도 빼 놓을 수 없게 된다. 그 당시는 거의 홍콩영화만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상상할수도 없지만.

이렇게 젊은(??) 시절에 빠져 있던 영화나 드라마나 음악이 있었던 것은 시간이 지나보면 행복한 경험으로 남는다. 지금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자라면 똑같은 추억으로 행복할 것이다. 왕조현의 현재 모습을 알지 못한다. 나에게는 저 당시의 왕조현만 남아 있다. 실제로 왕조현은 많은 영화를 찍지도 않았다. 그래도 <천녀유혼> 하나만으로 왕조현은 그 자체다. 소천!! 소천!! 소천!! 영화 속 이름도 마저도 외우고 다녔을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