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유혼>의 폭발적인 흥행(당시기준)에 2편이 나오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다. 워낙 인기가 높아 시대극에 왕조현이 나오면 무조건 천녀유혼이라는 제목으로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던 <천녀유혼2>가 나왔다. 1편에 비해 애절함은 덜할지 몰라도 재미는 있었다. 왕조현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 1편에 청순 자체였던 - 귀신이니 당연하지도 - 왕조현이 이번에는 청풍이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청순은 다소 덜했다.

꽤 고민을 했을 듯 싶다. 이미 소천은 귀신이 아니고 다시 환생을 할텐데 그렇게 되면 영채신(장국영)은 나이가 들어 맞지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조합으로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천녀유혼>은 누구나 다 장국영과 왕조현을 원한다. 다른 주인공을 원하지 않는다. 그건 이미 다른 영화가 되어버린다. 억지를 써서라도 출연시켜야 한다.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없으면 안되니 2편에서 쌍둥이 형제를 끌어들인 것처럼.

방법이 없으니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게 했다. 당시에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저 왕조현만 나오면 무조건 감사할 일이다. 지금 와서 보니 나와 닮은 사람을 SNS로 만나는 프로젝트를 보니 의외로 서로 닮은 사람이 꽤 많다. 고로 왕조현과 닮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더구나 사람 많기로 유명한 중국이니 이런 정도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도 문제없다.

영채신은 소천과 헤어진 후 정처없이 떠돌다가 우연히 청풍 자매를 만난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참한다. 처음에는 청풍이 소천인지 알고 햇빛을 가려주는 노력도 영채신이 한다. 자신에게 일방적인 헌신을 보여주는 영채신에게 청풍은 어릴 때 이미 정해진 약혼자가 있음에도 흔들린다. 채영신도 소천이 환생을 했어도 지금은 어린 아이라는 생각에 그저 닮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천녀유혼>은 내용따위는 상관없다. 왕조현이 얼마나 자주 나오고 내용속에 녹아들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관심포인트다. 그러기 위해 인상적인 장면은 청풍이 괴물을 받아들여 공간에 떠 있을 때 채영신이 달려들어 키스하는 장면, 영채신이 청풍을 살리려 노력하다 홀딱 젖은 몸으로 '소천'을 부를 때 영채신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 청풍이 장작불을 피우고 옷을 벗긴후 자신의 체온을 함께 하는 장면.

당시에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약간 웃긴것이 분명히 청풍은 무공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영화가 중후반이 될 때부터 청풍은 무공을 쓸지 모른다. 분명히 엄청난 체공시간도 갖고 있고 축지법도 쓸 수 있는데 그런 모습 전혀 없이 영채신과 함께 당하기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왕조현이 더욱 가련하게 느껴지고 남성 관객들이 '어떻게 하냐!'라며 애달픔이 극에 달할수록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다. 

왕조현 덕분에 왕조현이 나오는 작품은 거의 다 봤다. 현대극부터 시작해서 고전 사극까지. 대부분 극장이 아닌 비디오테이프로 봤지만. 이 때가 홍콩영화의 절정시기였다. 국내 CF에도 홍콩배우들이 도배했고 홍콩 느와르가 뜨고 도박영화까지 같이 뜨며 대사에 한국말도 들어가고. 덕분에 사극에서 떴던 왕조현은 상대적으로 현대극이 본격적으로 쏟아지며 출연작이 다소 뜸해졌다. 홍콩영화가 퇴색하며 왕조현도 함께 소식이 뜸해졌다.

우연히 <천녀유혼>시리즈가 연속으로 방영해서 보게 되었다. 왕조현이 나오지 않는 <천녀유혼>은 전혀 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도 있고 시리즈물도 있다. 보지 않았다.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게 <천녀유혼>은 왕조현이다. 거기에 장국영까지 포함하면 완성체가 된다. 다시는 둘의 만남을 볼 수 없다. 한 명은 먼저 좋은 곳으로 갔고. 한 명은 이제 배우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 듯 하다.

그렇게 내 사춘기 시절을 다시 떠오르게 해줬다. 왕조현은 영원히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