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런 것도 보느냐는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이런 것도 보는 사람이다.

솔직히, 별 것 다 보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런 것도 되게 좋아한다.

안 될 것이 어디 있겠나?

변덕과 변덕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나도 나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2000년대 초부터 슈퍼 히어로 작품들이 본격적으로-꾸준히 발표되기 시작했고, 큰 인기를 얻으면서 단지 미국의 대중문화 중 하나로 분류하기 보다는 이제는 세계적인 규모로 그 인기가 확대-확장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인기가 커져나가는 과정 속에서 그저 즐기는 것을 넘어서 더욱 큰 관심이 생겨난 사람들은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여러 슈퍼 히어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 그리고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런 궁금증을 채워줄 여러 방식의 제작물 중에서 ‘필요악 - DC 코믹스의 수퍼빌런들’은 조금은 다른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슈퍼 히어로에 대한 여러 정보들과 역사 그리고 다른 뒷얘기들을 다루는 작품들에 먼저 관심을 갖게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면서도 슈퍼 히어로들과 적대관계를 갖고 있는 여러 악당들(슈퍼 히어로 작품들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들을 ‘빌런’이라고 언급한다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을 것이다)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필요악...’은 바로 영웅들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그리고 악으로 규정되는 빌런들에 관해서 상세하게 탐구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DC 코믹스에서 스스로의 업적에 대한 일종의 기념으로 제작하게 된(그렇기 때문에 아쉽게도 마블에서 등장하는 빌런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마블 팬이라면 마블에서도 이런 작품을 만들어주길 바랄 수밖에...) ‘필요악...’은 지금까지 영웅들과 적대적인 관계로서만 다뤄지고 있었던 빌런들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으며, 빌런이 그저 순순한 악이 아닌(물론, 그런 존재들도 있기는 하지만) 좀 더 다른 방식으로 탐구하고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다뤄내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물론, 진지하게 다뤄내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학문적이고 학구적이라고 말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필요악...’은 그런 수준까지 올라서기 보다는 좀 더 대중들에게 빌런이 단순히 악역에서 머물고 있을 뿐이 아닌 다채로운 매력과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여러 방식으로 DC 코믹스의 작품을 혹은 빌런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진지하게 다뤄질 정도인가? 라는 말도 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슈퍼 히어로 작품들에 흠뻑 빠져든 사람들이라면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감탄과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이런 것도 되게 좋아하기 때문에 무척 즐겁게 논의를 즐길 수 있었다.

빌런

슈퍼 빌런

그들은 악을 상징하고 위협을 상징한다.

부도덕과 무절제 무정부를 상징하고

안전과 안정과는 반대되는 혼돈과 혼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고

일탈과 공포를 상징한다.

불길함과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어쨌든 그들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존재하고 다뤄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 구조와 구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슈퍼 히어로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들과 항상 함께 다뤄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듯이 슈퍼 히어로의 왜곡된 모습으로 그들은 비춰지게 된다. 

빌런과 슈퍼 히어로는 서로를 이겨내고 싶고 지워내고 싶지만 결국에는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서 빌런들의 존재를 다뤄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필요악이 된다. ‘필요악...’은 그들의 필요성을 그리고 빌런들의 능동성과는 반대되는, 수동적으로 위협에 대응하고 안정과 안전을 위해서 행동하는 (빌런이 만들어내는 혼란을 수습하는) 슈퍼 히어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빌런들이 보여주는 여러 특징과 개성을 여러 방식으로 논의하고 있다.

단순히 악당이고 악역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 어떤 상징과 운명을 그리고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그들의 시작-기원은 어떤 것인지를 여러 방식으로 검토하고 탐구하고 있는데, 결국에는 그리스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들의 운명과 존재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고 있기도 하고 그들의 존재 없이는 생각하기 힘든 이야기의 완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떤 식으로 빌런들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논의하고 있다.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빌런들을 언급하고 있고, 그들이 이야기 구성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어떤 식으로 주인공의 모습을 왜곡시켜서 만들어내고 있는지 뒤틀고 변형된 그들이 모습이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이었는지를 밝혀주고 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빌런들의 특색과 특징들을, 어떤 개성을 갖고 있고, 어떤 기괴한 정서와 정신구조를 갖고 있는지를, 빌런들의 특이한 논리구조와 해괴한 윤리를, 흐리멍덩하고 뚜렷함을 찾을 수 없는 즉흥적이기만 한 것 같고 선뜻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나름의 이유와 원칙을 갖고 있는 모습을, 빌런들이 어떤 과정 속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정당화와 어쩔 수 없음을, 일종의 비극의 주인공으로 혹은 신화의 음울한 전복으로 그들을 이해하려는 의도 속에서 빌런들의 존재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되어서 어떤 대가를 얻게 되는지를, 어떤 식으로 그들이 독창적으로 되는지, 어떤 식으로 그들만의 개성과 존재감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다뤄내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 인해서 좀 더 매력적인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는 슈퍼 히어로 작품들에 대해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내놓고 있다.

슈퍼 히어로 작품들에 관해서 약간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작품에 대해서 재미나다는 평가가 우선되겠지만, 이런 것에 관심을 기울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함께하게 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만 재미나면 된다는 생각도 들게 되지만, 어쩐지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언젠가는 함께 즐길 사람들도 생기겠지.

그전에는 우선 혼자서라도 즐겨야 할 것 같다.

참고 : 전체적인 해설은 크리스토퍼 리가 진행하고 있다. 선생님이나 옹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싶기는 하지만... 그건 좀 그렇고. 그분의 멋진 목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