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갖는 음울한 세계와 구원의 갈망은 늘 어렵게 느껴진다. 지독해서 피하고 싶은 어려움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까지 감내하고 그 안에서 깨우쳐야 하는 종교적 색채의 어려움 내지 고통 같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면 늘 잿빛과 절망 같은 이미지가 마음과 머리에 채워진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즐겨 찾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경외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작가, 더 낮고도 깊은 세계를 살았던 작가로 여기게 되는 사람이 도스토예프스키다. 유대계 러시아인이었던 레오니드 치프킨에게, 반유대주의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아이러니하게도 열광의 대상이었는데,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문학이 어느 경지에 올라 있는지 가늠하게 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책에서 비춰진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은 역시 어둡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안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적이고 안쓰러움마저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치프킨의 비평처럼, ‘인간의 고통에 대해 그토록 예민한 사람, 학대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던 사람’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대인을 혐오했다는 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치프킨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사랑은 치프킨과 서문을 쓴 수전 손택이 말하듯,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밖에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에게까지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증명한 문학성은 한 시대를 절망으로 점철시킨 미움을 사랑으로 감쌀 수 있는 정도인 셈이다. 

따뜻한 애정을 갖고 치프킨이 재구성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은 여러 인물의 내면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소설의 권한 때문인지, 다른 책들에서 접한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친근하다. 두 번째 아내 안나와 빚쟁이들을 피해 서유럽으로 달아나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신혼생활을, 치프킨은 안나의 회고록을 읽으며 부부의 행적을 좇아가는 형태로 담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상당하지만, 성인처럼 느껴졌던 안나가 불평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치프킨이 허구로 써내려간 것이며, 치프킨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사실이지만 가상에 새로 탄생시킨 것이다.

독특한 방식과 소재만으로도 치프킨의 소설은 문학사적 의의가 상당할 텐데, 그는 정작 자신의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애초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수전 손택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KGB를 두려워했고 실제로 아들의 망명을 돕는 과정에서 그와 아내는 죽을 때까지 외국으로 나가지 못했다. 심지어 20년 간 달성한 업무 실적과 경력을 잃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소설 쓰기를 위해 소설을 쓴 것인데, 그의 이런 창작활동은 그가 쓴 소설만큼이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다. 무언가를 자신의 유명세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니 말이다. 그가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원동력, 한 작가이자 다른 인간에 대한 애정이 지닌 힘 역시 감동을 준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26쪽, 수전 손택) 

그는 그녀를 껴안고 가슴에 키스를 하고는 이제 '항해'를 시작한다. 그들은 물에서 동시에 손을 쭉 내어 뻗고, 또 동시에 숨을 폐에 모으면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해변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저 푸른 바다를 향해 나아가지만, 거의 매번 그는 자신을 옆으로 밀어내거나 심지어 뒤로 가게 만드는 맞파도에 부딪혔다. 그는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리드미컬하게 팔을 저으면서 어느 먼 곳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미 수영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겨우 물속에서 발을 바닥에 대보려고 버둥거릴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45쪽)

머무를 때는 아주 불쾌했던 곳이라도 떠날 때는 언제나 우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아마도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