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신비로운 느와르로 압축된 우등생의 성장기
프랑스 교도소에 수감된 아랍인 말리크. 부모님 얼굴은 본 적도 없고, 어디 하나 뒤 봐 줄 연고도 없다. 아랍계임에도 종교는 물론, 가리는 음식도 없다. 소년 시절과 함께 소년원도 이제 안녕. 19살이 되며 어른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교도소로 오게 된 말리크는 모든 게 낯설고 어리둥절하다.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당하기만 하던 아랍 청년에게 코르시카계 조직이 접근하고, 그에게 같은 아랍계인 레예브의 목을 그으라는 명령을 한다. 순박한 말리크는 자신에게 지어진 짐을 내려놓으려 하지만 이미 교도관들 역시 스무 명 넘는 조직에 접수된 하수인들일 뿐. 독방에 가보려 발버둥치지만 조직 보스인 세자르로부터 매를 벌 뿐이다. 발 빼기에 글러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말리크는 피와 눈물을 머금고 어설프게나마 임무를 완수하고 세자르의 신임을 얻는다.
대놓고 아랍인을 욕하는 코르시카 조직원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도 군소리 없이 소임을 다하는 말리크. 변화된 그의 수감 생활에는 유독 남다른 점이 있다. 임무 완수 후부터 자신이 죽인 레예브의 환영이 보이는 것. 죄책감이 부른 짐이라기엔 너무 친근한 레예브는, 코르시카 사람들 속에서 설 곳 없는 아랍인 말리크에게 동족이자 괜찮은 말동무가 되어준다. 레예브가 죽기 전 말리크에게 권했던 교도소 내 학교와 책들은, 말리크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학교에서 만난 또 다른 아랍계 리야드는 출소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말리크에게 조언한다. 코르시카인들로부터 물적인 도움을, 동족인 아랍인들로부터는 영적인 도움을 받으며 그의 성장은 눈에 띄게 빨라진다.
종교와 계급의 갈등 속에서 철저하게 비주류이던 말리크지만 자존심을 굽히진 않는다. 태도를 신중히 해야할 땐 철저히 신중하지만, 누구 앞에게도 어느 밑에서 일하지 않고 혼자 일하는 것 뿐이라고 말할 만큼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 레예브의 환영과 말리크의 꿈이 그의 생명을 구하게 된 이후, 말리크는 조금 더 과감히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간다. 명확히 그의 꿈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르세유의 해변과 모래를 바라보던 그의 간절한 눈과 리야드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짐작되기는 한다. 경제학을 배우고 권력을 쟁취하는 모습이 어둠의 세계에서 거물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이기도 하지만, 말리크가 삶을 배운 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그만한 방법이 없을 테니 그를 비난하기도 곤란하다.
시종 영화는 빛과 어둠을 함께 보여준다. 어두운 독방을 비추는 빛줄기, 환한 파리나 마르세유과 대조되는 어두운 교도소 내부 등. 캄캄해져가는 리야드의 시선도 빛을 따르고 있었다. 가장 압권인 것은 말리크와 레예브의 장면들이다. 말리크가 죽인 동족이지만 죽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후에도 그에게 조언을 하는 레예브. 레예브는 말리크가 내적 갈등을 일으킬 때마다 출현하는데, 그는 마치 레예브의 천사 내지 또다른 자아 같다. 빛과 어둠이 마주하는 듯한 말리크와 레예브의 모습은 영화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 영화의 테마를 가늠하게 한다. 2시간 반을 긴장감 있게 연출한 데엔 보기 힘든 탄탄한 각본과 멋진 촬영이 뒷받침 하는 것 같다. 구멍을 통해 보는 듯한 화면들과 타이포가 배치된 몇 장면들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종교적 색채와 몽환적인 영상이 신비로운 느와르를 완성했고, 그 안에서 성장한 청년의 삶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비행기에서 천진한 표정을 짓던 말리크가 결국은 어떤 삶을 살게 됐을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