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포스터를 봤을 때는 헐리우드의 평범한 첩보영화를 영국식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19금 딱지가 붙으니 궁금증이 생겨서 보러 갔어요. ㅎ 야한장면은 그리 많이 나오는편은 아니었지만 영국신사들이 슈트를 입고 아주 젠틀하고 잔인하게 전투를 하더군요. 거기다 뒤에 깔리는 배경음악은 아주 경쾌합니다. 마치 에어로빅 운동이나 체조를 할 때 음악을 틀어 놓고 운동을 하는 느낌이죠.

하지만 저는 야한장면이나 전투장면 보다는 사상적인 위험이 청소년에게 더 해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론 킹스맨에서는 독특하게도 아래와 같은 점이 매력포인트입니다. 

** 물론 아래 포스팅한 글들은 제가 문득 들었던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이나 제작진의 의견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1. 학교 중퇴에 군대 마저 중도 하차하며 동네에서는 루저로 찍힌 문제아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갑자기 영웅 훈련을 받게 된다는 설정은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준비해야 되는 청소년들에게 우연한 기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줄 위험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국가유공자의 후손이라던가, 업무 중 순직한 직원의 가족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아버지가 남겨준 기회를 붙잡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폐쇄적인 귀족 계급을 없애기 위해 끌어들인 평민 출신 에이그 역시 부모덕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영화에서 에이그는 마음씨 좋은 귀족에게 선택 받은 새로운 형태의 귀족으로 비춰집니다. 중간중간 에이그의 리더쉽과 동료애, 빠른 손재주와 눈치능력으로 포장하긴 했지만 귀족의 선택이 전제에 깔리지 않으면 진행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귀족의 아들이 에이그를 매섭게 비난하긴 했지만 귀족의 아들과 에이그의 특권은 결국 같은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기회와 도움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들의 노력과 능력을 과도하게 벗어난 범위에서 이루어지면 특권이 됩니다. 에이그는 분명 요원으로서의 능력은 충분하였으며, 훈련을 통해 빛이나게 됩니다. 하지만 기회가 생기기 이전의 그는 그 어떤 노력의 흔적도 없습니다. 순직한 자의 아들이라고 해서 누구나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고, 평범한 환경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 이상의 신분상승은 꿈도 못 꿉니다. 그래서 저는 에이그를 태생적인 특권을 지닌 새로운 형태의 귀족이라고 봅니다. 이런 특권은 또다시 대중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지만 흙더미에서 피어난 영웅이라는 이미지로 덧 씌워져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귀족의 폐쇄적인 신분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신사라는 영웅을 강조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킹스맨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며, 통과한 다음에는 영국제품으로 도배된 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귀천을 떠나서 그들만의 유토피아에 선택받은자, 충성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해석으로도 빠질 수가 있어서 살짝 안타까웠습니다. ▶ 같은 특권을 지녔지만 서로 대적하는 등장인물들
   
   
   
2. 죽음의 지나친 희화화, 킹스맨의 명장면이자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장면은 어찌보면 속시원하고 아름답습니다. 물론 저도 서민 입장에서 순간적으로 해방감을 맛 봤다고 생각을 했는데, 곧 이보다 끔찍한 장면이 있을까, 라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머리 폭파 장면은 우리나라 영화 올드보이 장도리 장면의 영향을 받아 촬영했다는 교회 액션씬과 연결이 됩니다. 사랑과 나눔을 외쳐야 될 교회가 오히려 광신도처럼 흑인, 동성애자, 가난한자 등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있고, 그 장소는 곧 싸움 장소로 변하게 됩니다. 4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장면이지만 잔인하고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합니다. 기독교를 극도로 싫어하는 관객들은 이 장면이 굉장히 신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독교를 싫어한다고 해도 사람이 그렇게나 잔인하게 죽어나가는데 동정심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그게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공감력이라는 것이니까요. 
   
   영화는 이런 동정심을 관객들에게 빼기 위해 머리가 폭파하는 장면에서는 만화적인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장면 속에서, 선택 받아 모여 있는 사람들은 자신은 선택받았으니 나머지는 죽어도 좋다고 여기며 쾌감을 맛보고, 서민들은 경쾌한 음악소리와 함께 상류층들이 사라지는 모습에 쾌감을 맛봅니다. 만약 피가 튀고, 잔인하게 사람이 죽어나갔다면 쾌감보다는 꼭 저럴 필요가 있나 하며 동정심이 먼저 생겼을 것인데, 이 동정심을 희화화하여 표현해 버리니까 앉아 있는 관객들의 본심이 나오게 됩니다. 상류층이나 서민이나 숨겨진 잔인함은 똑같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재밌거나 예술적이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은 싸이코 살인자들의 생각입니다. 관객을 싸이코 패스로 만들어 버린거죠.) ▶ 집단의 비인간적 잔혹한 본성이 같다는 것을 교차하며 보여줌. 영화 속 인물 뿐 아니라 영화 밖의 관객들까지 잔혹함에 동참하게 만듬
   
   
• 재미로 하는 사이코패스 테스트  (결과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1) 교회 액션신에서도 머리 폭파 장면에서도 쾌감을 느꼈다. 
  2) 교회 액션신은 쾌감을 느꼈지만 머리 폭파 장면에서는 동정심을 느꼈다. 
  3) 교회 액션신은 동정심이 생겼지만 폭파 장면에서는 쾌감을 느꼈다. 
  4) 교회 액션신에서도 머리 폭파 장면에서도 동정심을 느꼈다.
  
  
  
3. 선과 악의 모호성. 변질된 정의. 우리가 어린이들이나 학생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는 인과응보, 권선징악에 대한 주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동화책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누가 봐도 선과 악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실제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뭐가 나쁜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고, 특별히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킹스맨에서도 악당으로 등장하는 발렌타인은 사실 누구보다도 지구의 생존을 걱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방법이 싸이코틱하게 변질이 되어 버리니 악당이라는 역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실, 소수의 사람을 남겨서 인류의 멸망을 막는다는 생각자체가 악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도 소수의 사람을 살려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목적이 여행 시작의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킹스맨에서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죽이고, 인위적으로 멸망 시나리오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목적이 선하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악하다면 그것은 악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건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생활에서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 도둑질 부터 시작해서 회사의 적자를 막기 위한 세금 탈세, 대의명분을 내세운 전쟁 등은 흔히 접하는 사례입니다. 킹스맨은 차별하는자, 사람의 귀천을 정하는자, 비인간적인고 잔혹한자, 가진자, 못가졌지만 악한자 등을 아주 골고루 비빔밥 비비듯이 잘 비난했지만 결국 스스로 상업용 영화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폭력적인 발렌타인을 막기 위해 폭력적으로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은 영웅 영화의 전형적인 정당화 방법입니다. 다만 우리가 상업 영웅 영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무감각 한 것일 뿐. 무기들도 보면 영국의 자랑스러운 명품브랜드, 상위 1%들이 즐겨사용하던 상표들입니다. 
   
   이걸 보니 쾌도 홍길동에서 강지환이 장근석에게 하던 대사가 생각납니다. 왕이 빠져나간 자리에 너만 채워 넣는 것이다. 

이렇게 킹스맨은 등장인물 부터 시작해서, 사회의 이슈거리, 영화를 보는 관객들 뿐만아니라 영화를 제작한 자신들 까지도 모순 속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단순히 제 확대해석이 아니라 제작진이 의도한거라면 감독은 천재일 수도 있겠네요. ^^

조금 재밌는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

가장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아델, 레이디가가, 데이비드 베컴의 카메오 출현입니다. 영화 소개에는 분명 카메오 출연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데 구글링을 해 봐도 네이버에 물어 봐도 봤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 버락 오바마로 추정되는 인물이 백악관 회의실에서 다른 유명인사들과 운명을 같이 하는 모습은 발견했습니다. 잠깐 나오는 장면인데다가 뒷모습이지만 백악관 영상 다음에 나온 흑인에 까까머리는 누가 봐도 버락오바마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거에 대해서는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해명을 해 놓았습니다. 사실 좀 무섭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서양을 보니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킹스맨에 나오는 양복점은 mrporter라는 곳입니다. 콜린퍼스의 극중 이름이 해리니까 대놓고 해리포터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 중 하나인 해리포터를 이렇게 살짝 끼워 넣고, 미국에는 없는 왕과 귀족의 존재를 킹스맨이라는 조직이름에 녹여 냈으며, 비가 많이 내려 우산이 필수라는 지리적 특성에 맞게 우산을 이용한 액션을 펼쳤습니다. 또한 신사의 나라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경박한 액션이나 화려하기만 한 액션이 아니라 절도 있고 깔끔한 액션을 보여주었으며, 쫄쫄이 슈트라던가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기계 슈트가 아니라 진짜 슈트를 입고 싸워 역시 남자는 슈트빨이라는 공식을 다시한번 되새김질 했습니다. 콜린퍼스가 오만과 편견에서 영국 귀족에 대한 환상을 여성에게 심어준 것처럼 이번에는 영국 신사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킹스맨 내도록 입고 돌아 다닌 것은 아디다스입니다. 나이키가 미국을 대표하는 신발 및 의류 메이커라고 한다면, 아디다스는 독일을 비롯해 유럽을 대표하는 브랜드입니다. 발렌타인 옆에 따라다니는 칼발 여자의 이름이 대놓고 가젤인 것은 대놓고 신발에 주목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위 0.1%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영화였지만 영화 산업 및 문화 쪽으로는 미국보다 약한 유럽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것은 상류층이 사랑하는 각종 명품들이 대표적이기 때문에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물론 브랜드 홍보의 목적도 있었겠지만) 여기 나온 브랜드는 200년의 전통을 담고 있는 턴불앤아서 셔츠, 핸드메이드 런던으로 유명한 드레이크 넥타이, 스웨인 아데니 브릭의 여행 가방, 브레오 시계, 조지 클레버리 구두입니다. 이 영국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명품들은 킹스맨 요원들에게 지급되는 무기라는 설정으로 영화 중에 상세하게 소개 됩니다. 주로 프랑스에게 빼앗긴 명품의 전통도 가져 오고 싶다는 욕심을 부린 듯하네요. 이런걸 보면 빈민가에 희망을 주겠다는 콜린퍼스의 대사가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감독 매튜 본 출연 콜린 퍼스, 태론 에거튼, 사무엘 L. 잭슨, 마이클 케인, 마크 스트롱 개봉 2015 미국, 영국 평점 리뷰보기

이러니 저러니 해도 킹스맨에서 제가 느끼는 것은 딱 3가지 입니다. ㅎ

1. 콜린퍼스는 늙어도 멋있고, 액션 장면도 멋있다. 

2. 역시 남자는 슈트빨. 슈트를 완성시키는 지적인 뿔테안경은 진리. 

3. 매너가 (철컥) 사람을 (철컥) 만든다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