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영화는 대사도 자막도 없다.

영화의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은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대사'와 '음악'은 결코 영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대사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수단이고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수단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 두가지 중요한 부분을 모두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연출된 독특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 <트라이브>가 그것으로 이 작품에는 그 어떤 대사도, 음악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는 모두 보여지는 '영상'만으로만 표현되고 전달되는데, 때문에 이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영화일 수 밖에 없을듯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농아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

자연스럽게 대사를 배제할 수 있었고 모든 대사들은 '수화'로만 표현 됩니다

하지만 이 '수화'는 자막으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보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야기

< ▲ 농아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는 이 소년 '세르게이'의 이야기 >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주로 만들어졌던 작품 '무성영화'는 처음엔 그저 현실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는 정도에 머물렀던 실사 단편이나 짤막한 뉴스와 같은 영상으로 시작되어 점차 인간을 주체로 하는 극형식의 영화로 발전되었는데 이 작품 <트라이브>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원제인 러시아어 'Plemya', 그리고 영어 제목인 'The Tribe'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우크라이나의 한 '농아 기숙학교'라는 한정된 장소를 배경으로 하면서 제목 그대로 그 학교를 휘어잡고 있었던 '종족', '조직', '집단'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인 것이죠. 따라서 <트라이브>는 자연스럽게 대사를 배제할 수 있었고 모든 대사들은 '수화'로만 표현이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이 수화를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 표현되는 감정 등의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유추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다양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무척이나 강렬하면서도 지독했던 사랑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작품 <트라이브>

하지만 참 다양한 이야기로 해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작품입니다

< ▲ 하지만 이 학교는 결코 평범하고 정상적인 모습의 학교는 아니었습니다 >

첫째로 이 이야기는 그저 그들만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에서 낙오된 인물의 소리없는 아우성과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정도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학교를 휘어잡고 있던 조직에 녹아들어보려고 했지만 그 조직의 보스격이라고 할 수 있었던 남자의 여자 '안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결국은 조직에서 배제당하게 되고 파국으로 치닫게 됐던 소년 '세르게이'의 이야기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특히나 한번 낙오된 뒤로는 회복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결국은 최후의 발버둥과도 같았던 끔찍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세르게이'의 행동이 대단히 충격적이었고 그 표현 역시 상당히 파격적이기도 했었는데 때문에 <트라이브>는 무척이나 강렬하면서도 지독한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왕적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남자들, 그 아래 피라미드처럼 내려오는 계급구조

그를 통해 행해지는 착취와 폭력, 그리고 자본주의 유혹에 빠져 성폭력에 길들여진 여자들

어쩌면 자본주의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현주소일 수도 있을듯 합니다

< ▲ 돈과 자본주의의 유혹에 빠져 성폭력에 길들여지고

성매매와 같은 행위에 무감각해져버린 그녀들 >

그런데 이 외에도 <트라이브>의 이야기는 참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되기도 합니다.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요. 먼저 이 작품은 공산주의를 탈피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하면서 새롭게 거듭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산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 우크라이나, 그리고 극심한 빈부의 격차를 보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농아학교'라는 한정된 장소를 배경으로 담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던 농아학교에서 마치 제왕적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남자를 필두로 그 아래 피라미드처럼 내려오는 계급 구조와 그를 통해 행해지는 착취와 폭력 등은 어쩌면 현재 과도기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으로 생각되기도 하니까요. 특히 돈과 자본주의의 유혹에 빠져 성폭력에 길들여지고 비인간적으로 무감각해져버린, 서구 자본주의의 성노예가 되어버린 여자들과도 같았던 극중 그녀들의 모습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이 처한 비극적인 현실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와 EU,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국제 정세와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을듯

< ▲ 그리고 그 조직에서 결국은 배제당하고 말았던 세르게이, 그가 보여주는 파국

참고로 사진속 귀를 잡힌 꼬맹이는 '세르게이'가 아닙니다.

피라미드 가장 하층부에 위치하고 있던 어린 아이들, 착취 당하는 아이들 중 한명입니다 >

또한 <트라이브>는 미국과 EU라는 서구 열강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지는 알력 게임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 그들의 수업시간에 'EU'와 '러시아'의 국기를 살짝 보여줬던 것 역시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는데, 비정상적인 학교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개입을 하지 않는, 아니 아예 모습조차 보이지 않던 선생님들의 모습은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병함한 사건에 대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제를 제외하곤 크게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으니까요. 다만 이런 국제정세와 관련해선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좀 더 깊이있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부분이 아쉽기도 했습니다.

"각자가 자기 영화를 하나씩 갖고 나갈 것이다"라고 했던 진중권 교수의 말에 공감합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밖에 없고 정답이 있는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 <트라이브>

< ▲ 상당히 파격적이었고 무척이나 강렬하기도 했던 작품 '트라이브'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화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작품 >

이처럼 <트라이브>는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화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영화이고 정답이 있는 영화라고는 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물론 어떤 영화든 '정답'이란 존재하진 않지만 이 영화는 특히나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던 작품이었던 것인데 때문에 진중권 교수가 이 영화와 관련해서 남긴 말인 "<트라이브>는 보고 난 관객들은 각자 자기 영화를 하나씩 갖고 나갈 것이다"에 적극 동감을 표합니다. 궁금하시다면 직접 보시고 '자신만의 영화'를 한편 가져 보시기를 ! 2시간 1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영화이고 '배경의 소음'은 존재하고 있지만 그 어떤 음악이나 대사는 담겨 있지 않은 영화 <트라이브>. 하지만 그 몇몇 장면의 '소리'들이 무척이나 강렬하게 와닿았던 작품이었고 그 긴 러닝타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았던 몰입감 강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