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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하여 미국 서부를 종단하여 캐나다 국경까지 이르는 총 길이 4,285km의 어마어마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이 길을 '걸어서' 종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힘든 여정을 선택하기 까지는 제각각의 사연이 있을테지만 어쨌든 인간의 한계에 직면하기 마련일 PCT 종주는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자의 몸으로 이 엄청난 여정을 성공해냈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 이가 있으니 그녀의 이름은 '셰릴 스트레이드'입니다.

'셰릴 스트레이드'가 쓴 책을 원작으로 하는 실화 바탕의 작품 <와일드>

감독의 전작 <달라스 바이어크 클럽>과도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 ▲ '셰릴'(리즈 위더스푼)의 인생에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어머니'(로라 던) >

<와일드>는 바로 '셰릴 스트레이드'가 쓴 책 '와일드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매튜 맥커너히'에게 남우주연상을 선사했던 장 마크 발레 감독이 다시 한번 선택한 '실화' 바탕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두 실화 바탕의 작품은 분명 닮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라는 그 유명한 말이 절로 떠올랐던 작품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처럼 이 작품 <와일드> 역시 '헛되이 보낸 인생, 때문에 그 실수를 되돌리고 싶어했던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라는 극중 '셰릴'(리즈 위더스푼)의 대사에 함축되어 있듯이.

언제나 큰 힘이 되줬던 존재였고 그래서 항상 곁에 있을 것으로 여긴 어머니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죽음은 '셰릴'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버립니다

< ▲ 하지만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셰릴'의 인생은 망가져 갑니다.

아니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려고 합니다. 그 충격이 그토록 큰 것이었던듯.. >

그런데 '셰릴'은 처음부터 인생을 그렇게 함부로 살았던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녀 역시 강하고 책임감 있으며 꿈도 있었던 여자였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중심이자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죽음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도 큰 힘이 되줬던 존재였고 그래서 언제나 옆에서 위로가 되줄 것으로만 생각했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을때, 그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 혹은 죄책감일 수도 있고 세상에 홀로 던져졌다는 두려움 혹은 외로움이 그녀를 그렇게 망가뜨려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그렇게 무너져 내린 셰릴은 약에 취해 이 남자 저 남자 쉽게 만나면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결혼한 뒤에도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망가져버렸던 '셰릴'의 인생, 하지만 그녀는 그저 주저 앉아 있진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 멀고도 힘들며 거친 길을 선택하는 그녀

< ▲ 그러나 그 절망의 늪에서 끝까지 허우적거리진 않았죠.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총 길이 4300km에 육박하는 'PCT' 하이킹 >

그렇게 망가져버린 셰릴의 인생,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가장 밑바닥에서 주저 앉아 있진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인해 잠시 '정상궤도'에서 튕겨 나가버린 셰릴이었지만, 다시 그 정상궤도로 돌아오기 위해 멀고도 힘들며 거친 길을 선택한 것이었죠. 그녀에게 그 길은 엄마가 자랑스러워 하는 딸이 되기 위한 길, 그리고 엄마 없이 '숲'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성장의 길, 그리고 '스트레이드'(Strayed)라는 그녀의 이름처럼 '옆길로 새어버렸고 제 위치를 벗어난' 자신의 인생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와일드>는 '셰릴 스트레이드'가 걷는 'PCT 여정'이 주가 되는 작품으로 이 길은 그녀가 그동안 걸어왔던 길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이기도 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었던 힘든 여정에 투영되고 있었던 그녀의 인생

< ▲ 그녀가 가는 길이 결코 순탄할리만은 없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불쑥불쑥 위험요소들이 나타나곤 하죠

이처럼 그녀가 걷는 그 길은 그녀의, 아니 우리 모두의 인생과 닮아 있기도 했습니다 >

그리고 바로 이 '길'이란 공간은 우리의 인생을 은유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도 한데, 극중 그녀가 걷는 여정에도 그녀의 인생은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시작되는 여정은 셰릴의 어깨를 축 늘어뜨리게 하고 있었던 인생의 무게만큼이나 힘들었던 것으로 금방 쓰러질 것처럼 불안불안했고 시작하자마자 '포기하고 그냥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포기해버리고 그 무거운 짐에 굴복했다면, 그녀의 인생은 결코 나락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테지만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시작했던 '셰릴', 하지만 어깨 위의 짐은 조금씩 줄어들어갑니다

그 여정의 끝에 스스로 위로를 찾은 셰릴의 성장 영화이자 그녀 스스로의 힐링, <와일드>

< ▲ 그리고 버리지 못하고 모두 갖고 있으면서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던 무거운 짐들

마치 그녀 인생의 무게와도 같았던 그 짐은 조금씩 가벼워져 갑니다 >

그러나 그렇게 시작되는 여정은 언제나 평탄할리가 없고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고 했음에도 그 계획엔 차질이 생기기도 하며 위험한 상황들은 예고없이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그리고 가끔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렇게 우리네 인생을 닮아 있었던 그녀의 여정이 이어져 갈수록 그녀의 어깨 위의 짐은 조금씩 줄어 들어갑니다. 마치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낭비해버린 시간'에 대한 과오를 조금씩 지워가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그리고 '불필요한 것'들까지 모두 짊어지고 있었던 그녀는 비움, 버림, 나눔의 의미를 알게 되고 최종 목적지가 가까워져 갈수록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된 인생을 끌어안을 준비를 해가게 됩니다. 이처럼 <와일드>는 그 여정의 끝에 스스로의 위로를 찾은 '셰릴'의 성장 영화이자, 그녀 스스로의 힐링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양한 감정을 오갔던 '셰릴'을 연기한 '리즈 위더스푼'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금발이 너무해>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역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 다웠던 !

< ▲ 홀로 영화를 이끌어가다시피했던 '리즈 위더스푼'의 연기, 인상적이더군요 >

그런데 <와일드>는 이렇게 오롯이 셰릴의 'PCT 여정'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녀의 PCT 여정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은 두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엄마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들이라면 다른 하나는 엄마를 잃고 난 뒤에 방황했던 그녀의 삶입니다. 떠올리고 싶은 좋은 기억만 떠오르면 좋겠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추한 기억들도 계속해서 떠오르면서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었죠. 이 모든 아프고 슬픈 기억으로부터의 해방구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던 그녀의 'PCT 여정', 때문에 이 작품에서 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다시피했던 '리즈 위더스푼'은 수많은 감정 변화를 겪고 그 크나큰 고통들을 홀로 감내해야했던 캐릭터이자 근래에 그녀가 보여준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셰릴 스트레이드'를 훌륭하게 연기해냈는데 역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경력이 있는 배우가 맞네요. 그녀의 낯선(?) 모습,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