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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고 디지털화된 제품들을 많이 사용하는 이 시대에 종이사전을 만드는 이야기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 '행복한 사전'이 그 영환데요. 이 영화는 요즘 개봉한 '이별까지 7일'이라는 영화의 이시이 유야 감독의 전작으로 미우라 시온 작가의 '배를 엮다'라는 소설을 영화화하여 작년에 열린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다시피 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연은 '고하토', '연애사진' 등에 출연했던 마츠다 류헤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늑대아이'의 미야자키 아오이, 이름만 대면 많은 분들이 아시는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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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출판사의 사전 편집부에서 일하던 아라키가 사정 상 빠져 공석이 생겨 사전 편집부의 니시오카는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공부한 마지메를 발견하고 사전 편집부의 공석을 메꾸기 위해 그를 스카우트합니다. 그렇게 그가 사전 편집부에 들어오고 난 후, '대도해'라는 새로운 사전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그는 그가 살고 있는 하숙집의 주인인 타케 할머니의 손녀인 카구야와 만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전 만들기 프로젝트와 마지메의 사랑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되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 마지메(마츠다 류헤이)가 새롭게 들어간 사전편집부

글의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고 빠르게 변하는 지금 이 시기에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은 소재를 가진 영화입니다. 요즘에는 많은 제품들이 디지털화가 되었고 사전도 전자사전을 사용하거나 핸드폰에 사전 어플로 단어를 검색해서 찾아보는 시댑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에서 이 영화는 종이사전을 만드는 일을 영화의 이야기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종이사전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느리고 신중한 작업입니다. 영화 초반에는 어떤 사전은 만드는데 28년이 걸렸다고도 하죠. 그렇게 느린 작업을 영화의 이야기로 사용한 이시이 유야 감독은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는 이시이 유야 감독이 이 사전 만들기라는 일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면서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가끔은 느린, 또는 신중한 태도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 타이트한 클로즈업을 별로 사용하지 않고 촬영하여 약간은 화면이 적당하거나 약간은 느슨한 느낌이 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느림의 미학은 영화의 전반부를 관통하는데 이 영화는 또 그런 느림의 미학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메는 워낙 책을 좋아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직장에서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전 편집부에 오고 난 후, 점차 시간이 흐르고 사전 편집부 사람들과 함께 사전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마지메는 그들과 친해지고 특히 니시오카는 그의 연인인 레미와 함께 자신이 머무는 하숙집에 초대를 해서 술도 먹는 친분을 쌓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가다 보면 직장 동료로서,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란 메세지도 전해줍니다.

▲ 마지메(마츠다 료헤이)의 좋은 친구가 된 니시오카(오다기리 조)와 그의 연인 레미(이케와키 치즈루)

그런 내성적인 마지메에게도 좋아하는 여자가 생깁니다. 그녀는 그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 주인인 다케 할머니의 손녀 카구야인데요. 그것을 안 사전 편집부 사람들은 지금 사랑을 생생하게 풀어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지메에게 사전의 '사랑'이라는 단어의 풀이를 맡깁니다.

짝사랑하는 카구야와 말도 많이 나누고 일식집 요리사인 그녀의 음식도 먹어보고 그녀와 유원지도 같이 다니며 마지메는 그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 둘이 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런 사랑의 관계 역시 위에서 말했던 느림의 미학을 두 사람 간의 관계에 대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마지메는 사랑을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자나 깨나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며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 이루어지면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입에 담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꼭 '사랑'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가 말을 하기 위해서 언급하는 단어들, 그 단어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마지메(마츠다 류헤이)가 내린 '사랑'의 풀이

어떻게 보면 영화는 어떤 것에 대한 열정을 다루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같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직업의 안정성만 추구하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열정을 다해서 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사전 편집부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전망이 없는 종이사전을 만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자신이 만들고 '대도해'라는 배를 엮어가는 것에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영화가 요즘 시대에 우리가 잊고 있는 열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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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사를 빌려 단어의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인 '대도해 사전'을 엮는다는 의미의 '배를 엮다'라는 원작의 제목을 '행복한 사전'이라고 국내 제목을 바꾼 것은 꽤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 '대도해 사전'은 어떤 이에 대한 사랑, 어떤 일에 대한 열정,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보여주는 느림의 미학 같은 좋은 것들이 담겨 있는, 그야말로 행복을 담은 사전이니까 말이죠.

▲ '대도해 사전'을 위해서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마지메(마츠다 류헤이)

영화에서 마지메의 역할을 맡은 마츠다 류헤이의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마츠다 류헤이는 구부정한 자세와 위축된 어깨, 고개와 함께 떨군 시선처리, 작고 담담한 목소리와 소심한 행동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마지메라는 캐릭터를 조형함에 있어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런 그의 연기 덕에 그는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죠. 그 이외에도 이 영화에 출연한 많은 배우들이 과장되지 않고 담백한 연기로 영화에 굉장히 잘 녹아들어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급하게 살아가는 시대에 굉장히 느리고 담담한 호흡으로 관객에게 여유를 갖게 해주는 좋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 바쁜 삶에 치여 살아 힐링을 원하시는 분에게 이 영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