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하면 떠오르는 건 바로 이 이미지입니다.

어린시절 다른 기억들은 가물가물한데 유독 이 빨강 머리 앤 만화는 생생하게 기억나요.

특히나 그 낭랑한 목소리의 앤 셜리. 자상한 아저씨 메슈, 아줌마 마릴라.

이들의 목소리는 정말 생생합니다. 그래서 얼마전 영화로 개봉된 극장판은 어릴 적 기억 속 목소리가 아니라서 눈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그만큼 어릴 적 접한 빨강 머리 앤은 아주 강렬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죽을때까지 빨강 머리 앤은 다른 목소리와 캐릭터가 아닌 이 목소리와 이 캐릭터만 가능하단 생각이 들어요.

이미 정해진 빨강 머리 앤의 이미지가 머리에 박혀있다면 글밥만 담겨진 원작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그동안 보아오던 책들과 비슷하겠지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보던 만화가 눈앞에 턱턱 떠올랐습니다.

원작에 충실한 소설이라고 하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한동안 빨강 머리 앤을 다시 DVD를 구입해서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으로 충분히 그 마음을 달랬습니다.

어린 시절 접했던 빨강 머리 앤은 앤에게 감정이입해서 읽어갔다면 아이 둘이 생긴 이후 접한 빨강 머리 앤은

메슈와 마릴라에게 공감하며 읽어가게 합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이를 통해 내 삶이 충만해지고 달라진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있기에

사랑스럽게만 보이던 앤의 과거를 떠올리게됩니다.

초록색지붕으로 보내지기 전 앤의 모습에 이 아이가 그동안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음을 알고

마릴라가 키우려고 결심했던 장면을 보며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보게됩니다.

어린 시절 초록색 지붕집에서 활기참을 불어넣던 앤이 새로운 삶을 위해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울컥합니다.

더이상 앤이 자라지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점점 커가니 문득문득 저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앤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더했습니다.

이 책은 어린 시절 빨강 머리 앤을 본적이 있다면 더욱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책 속 대사들에서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느껴집니다. 만화를 1편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본 느낌이에요.

어린 시절 기억 속 빨강 머리 앤은 왠지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야기로 기억되는데

지금 책을 덮고 나니 사랑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사랑해주고 진정으로 보살펴주는 따뜻함에 훈훈해집니다.

이런게 정말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동안 빨강 머리 앤의 추억에 빠져있게 될 것 같아요.

빨강 머리 앤 마지막이 이렇게 슬프게 남을 줄이야! 어린 시절엔 왜 몰랐을까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서 그냥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푹 빠져가며 눈물도 흘리며 봤어요.

어릴 때 접하는 빨강 머리 앤과 어른이 된 후의 빨강 머리 앤은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옮긴이의 말에서 "그러니 그 아이를 사랑할밖에, 앤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밖에."라는 문구에 끄덕이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