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 "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고전 전쟁영화부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구하기>, 우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재작년에 개봉했던 <아르마딜로> 등등은 그 배경과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가 모두 같은 작품들은 아니지만 공통 분모로 엮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아비규환의 공포스러운 전쟁터를 생생하게 묘사해내고 있는 이 작품들은 가장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행위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그 '전쟁'이 인간에게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전쟁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변해가게 되는지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인 것인데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이 작품 <퓨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군의 '셔먼 탱크'와 독일군의 '티거 탱크',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전투신이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 ▲ 이들이 바로 '퓨리'의 대원들, '워대디'(브래드 피트)가 이들의 대장입니다 >

<퓨리>는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독일의 베를린을 향해 연합군이 진군하고 있던 시기의 이야기로 나치 독일에는 패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지만 '워대디'(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전차 부대의 상황은 녹록치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전장에는 여전히 독일군이 강하게 저항하고 있음에도 '워대디'의 병력은 충분치 못했으니까요. 이처럼 <퓨리>는 '워대디'의 전차 부대가 중심이 작품이기 때문에 그들이 탑승하고 있던 '탱크' 역시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시 미군의 주력 탱크였던 'M4 셔먼 탱크'가 그것인데 이 탱크는 '기동력'과 '생산성'이 뛰어나긴 하지만 독일의 주력 탱크였던 '티거 탱크'에는 많이 못미치는 것이었고, 때문에 전쟁 당시 다섯대 가량의 셔먼 탱크가 함께 있을때가 아니라면 티거 탱크와의 교전은 피하라는 지시까지 있었다고 하죠. <퓨리>에는 바로 그 부분이 재연되고 있었는데 마치 괴물과도 같았던 '티거 탱크'의 강력한 위력이 생생하게 와닿았던 그 전투,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티거 탱크'와의 전투뿐 아니라 전차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포탄들을 비롯하여 전차와 보병들이 함께 이동할때의 포지션 등등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자세하고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였고 때문에 '밀리터리 영화' 매니아분들이라면 충분히 흥미롭게 느낄만한 요소들이 많은 영화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퓨리'를 중심으로 하는 부대원들의 이야기

잔혹하고 황량한 전쟁터에서 잃어버리는 아니 놓아버리게 되는 '인간성'

< ▲ '퓨리'에 탑승하게 됐던 신참 '노먼', 행정병 출신의 그는 그야말로 햇병아리와 다름 없었습니다 >

그러나 <퓨리>는 단순하게 전쟁의 재연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은 탱크 '퓨리'를 중심으로 대장 '워대디', 그리고 그의 휘하 부하들과 그곳에 새롭게 전입되어 들어오게되는 신병 '노먼'(로건 레먼)의 드라마에도 힘을 싣고 있는 것인데 그들이 머무는 '탱크'는 또 하나의 사회이자 한 가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장의 이름부터 '워대디'이니 뭐 그런 의도가 다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아무튼 노먼을 제외한 이들은 전쟁에 닳고 닳은 이들로 '인간성'을 많이 잃어버린, 아니 놓아버린 이들이었습니다. 진흙탕속에 깔아뭉개져서 그것이 진흙인지 시체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그 잔혹하고 끔찍하며 황량한 전쟁터는 평범했을 많은 이들을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 그렇게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둔 것 같은 '퓨리' 부대원들 사이에 햇병아리나 다름없었던 '노먼'이 들어왔으니 그를 바라보는 다른 부대원들의 시선이 고울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워대디'는 그런 그를 혹독하게 다루면서도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강하게 조련합니다. 마치 '노먼'에게서 자신의 예전 모습을 보기라도 했듯이 말이죠. 그리고 '노먼'을 통해 그토록 가혹한 전쟁터에서도 끝까지 살아있는 '인간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실적인 '액션'은 인상적이지만

이야기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너무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변화들

​< ▲ 이 여자 '엠마'와의 일 때문이었을까요.​

극중 '노먼'의 변화가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

이런 대장의 조련 속에서, 그리고 반복되는 전투속에서 조금씩 변해가게 성장하게되는 '노먼', 하지만 이 변화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부분들은 다소 아쉬움이 있습니다. 독일군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할만큼 나약했던 노먼이 불과 얼마지나지 않아 그렇게 성장, 혹은 변화해버린 모습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던 것이죠. 잠시 머물렀던 그 마을에서 만났던 여인 '엠마'와의 일을 통해 '전쟁터'라는 비이성적인 공간에서는 누굴 죽고 죽이는 그런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분노'의 감정 이외에 누굴 사랑하거나 동정하는 감정 따위는 사치임을 알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이 변화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도 다소 어색함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노먼'뿐 아니라 '노먼'에 대한 다른 부대원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것은 감독의 전작 <사보타지>와 조금은 흡사한 느낌이네요. 그 사실적인 '액션'의 연출은 인상적이지만 디테일한 '이야기'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 <퓨리>도 역시 그러했으니까요.

누구를 위한 전쟁인 것인가, 무엇을 위한 전쟁인 것인가.

전쟁의 포화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 ▲ 사실적인 탱크 전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 '퓨리' >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부분만큼은 역시나 명확했던 작품 <퓨리>였습니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라는 말로 설명되는 전쟁이라는 힘의 논리, 하지만 그 전쟁터에서 빗발치는 총알 한방에 쓰러져가는 이들은 모두가 누군가의 아들, 혹은 누군가의 아버지입니다. 수천 수만명이 죽어나가는 그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희생되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드라마가 있는 것이죠. 누군가는 사랑하는 아내가 초조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였을테고 누군가는 보고 싶은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아버지이기도 할 것이구요. 그렇게 모두에게는 사연이 있고 드라마가 있지만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행위는 그 소중한 사람들 한명 한명에게 의미 없는 희생을 강요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일까요. 또 누구를 위한 전쟁일까요. 때문에 극중 노먼의 "대체 왜..."라는 대사가 상당히 와닿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도 포함되고 있었던 수많은 전쟁, 그 전쟁의 포화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울리고 있고 그렇게 의미없는 희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