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소년의 고통스러운 성장
★★★★
" 니가 니 말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어
니가 말하는대로 살았으면 좋겠어 "
2010년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만든 단편 영화 <얼어붙은 땅>을 가지고 국내 최연소 칸 영화제 입성이라는 쾌거를 이룩해낸 김태용 감독은 그 작품에서 경계선에 놓여있는 소년의 내적 갈등을 담아냈는데 4년이 지난 올해에 그는 또 한명의 '소년'과 함께 이번에는 '장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스스로 집을 뛰쳐나와 보호시설에 들어갔던 소년 '영재'(최우식)를 따라가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그 소년의 사는 법을 담아내고 있던 영화 <거인>이 그것으로 감독은 이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얼마나 털어낼 수 있었을까요.
무책임한 아버지를 보는 것이 끔찍했던 소년 '영재'
그래서 그는 홀로 집을 나와 '이삭의 집'이라는 보호시설로 들어갔습니다
< ▲ 보기 싫었던 아버지가 있는 집을 떠나 '이삭의 집'이라는 보호 시설로 들어가게 된 '영재'(최우식)
위 사진속 남자는 '이삭의 집'의 아빠입니다 >
"다리만 아프지 않았어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영재의 아버지는 지극히 무책임한 인물입니다. 그는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교회를 다니며 후원금을 받아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아버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던 영재는 동생을 아버지의 곁에 두고 꽤 오래전에 홀로 집을 떠났습니다. 게다가 그런 아버지로 인해 공사장에서 인부들에게 밥장사를 하고 있었던 어머니는 허리를 크게 다쳤고 요양을 위해 고향에 있는 집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그 가족은 그야말로 '가족'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기도 했는데 그렇게 집을 나온 영재는 스스로 성당에서 운영하는 '이삭의 집'이라는 보호시설로 들어갔고, 이삭의 집의 보호자들을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며 '박영재'라는 이름보다는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더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17살이라는, 시설을 나가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영재는 초조할 따름입니다. 보기 싫은 아버지가 버티고 있는 집에는 결코 들어가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보호시설에 머물 수도 없었던 것이죠. <거인>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소년의 발버둥이..
건조하게 느껴질만큼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었던 영화, 그래서 더 와닿았던 감정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자욱하게 낀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았던 영재
< ▲ 소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가득 >
<거인>은 영화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건조하게 느껴질만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던 영화이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더 잘 와닿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영재로 부정하고 싶은 존재인 아버지와 연결되는 '영재'라는 이름을 지우고 싶었던 그는 '요한'이라는 이름뒤에서 나름의 안식처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 역시도 결코 녹록치 않은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재'로서 살아가기에는 더더욱 막막했던 현실,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영재는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내던져져 있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자욱하게 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어디에도 희망의 불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던 영재, 그럴수록 더 큰 막막함과 안타까움만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이 없었던 그로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남기 위한 선택들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부도덕한 일이든,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는 일이든.. 이처럼 <거인>은 소년이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지만 그럼에도 함부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던 그 화법이 인상적인 작품이었고 그래서 더 몰입감이 강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무책임한 어른들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
< ▲ 그런 영재에게 동생까지 떠넘기려고 했던 무책임한 아버지 >
그리고 영재뿐 아니라 영재의 동생, 그리고 영재와 같은 방을 썼던 '범태'를 비롯하여 영화속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에게서 연민이 느껴지고 그들과 관계되는 인물들의 행동 역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동생까지 영재가 살던 그곳으로 떠넘기려고 했던 아버지의 그 행동도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그로써 어쩌면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일 수도 있어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동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무책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대변이 되는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세상의 큰 벽과 마주하게 되는 그들이 느끼게 되는 막막한 심경들이 철저히 그들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었던 이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던 것인데 이런 힘든 성장 과정을 거쳐서 훌륭한 감독으로 성장한 김태용 감독, 정말 큰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최우식'
당연히 그 상을 받을만한 연기였네요.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 ▲ 영재와 그의 동생, 그냥 그들 모두에게 연민이 느껴지네요.
특히 영재를 연기한 '최우식'씨의 연기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
또한 이 작품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최우식'씨의 연기가 아닐까 싶네요. 그의 연기를 본 것이라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윤유준'이란 그닥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이 전부였었는데 이번 작품 속 그의 연기는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오갈데 없이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던져진 소년이 느끼던 그 수많은 감정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던 소년 '영재'의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담아내고 있었던 이 작품에서 그는 그가 느끼는 그 감정들을 함께 공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대단히 놀라운 연기를 통해서 소년 '영재'를 표현해냈는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에게 '올해의 배우상' 영광이 돌아간 것이 충분히 수긍이 가는군요.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대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