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가족> 뒤늦게 후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
★★★★
" 당신은 정말로 좋은 사람인 것 같군요.. "
1953년의 작품으로 일본 영화사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대표작이자 걸작으로 꼽히기도 하는 <동경이야기>를 리메이크하고 있는 <동경가족>은 분명 부담감이 컸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는 분명 위험한 작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60년이라는 간극을 두고 있음에도 이 작품이 지금에 와서 다시 리메이크 되었고 그 작품이 호평을 받았던 이유는 가장 보편적이면서 즐겨 이야기되는 '가족'이라는 화두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가족'이라는 소중한 가치는 절대 변하지 않은 것일테니까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53년작 <동경이야기>를 리메이크한 작품 <동경가족>
< ▲ 도쿄에 거주중인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하신 부모님 >
1953년작 <동경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후 결혼하여 도쿄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했던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동경가족>은 그 시대적 배경에서 변화를 두고 있습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이 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가 대격변을 맞이했기 때문이죠. 그것은 바로 엄청난 피해를 낳았던 대재앙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였는데, 미국의 역사가 '9.11 테러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한다면 일본의 역사는 바로 이 '3.11 대지진'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만큼 그 재앙 이후로 일본인들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일본의 영화들이 대부분 '3.11 대지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재앙은 그들의 문화에도 큰 변화를 가져 왔는데, 그렇게 일본 사회에 엄청난 상처를 안긴 재앙을 야마다 요지 감독은 <동경가족> 속에 녹여 놓고 있었습니다.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남긴 크나큰 상처가 영화에 녹아있습니다
< ▲ 3.11 대지진 이후 크나큰 상처를 입은 일본 사회
영화속 두 젊은이들에게 감독의 마음이 전달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그 재앙을 경험하고 난 뒤 방향을 잃어버린 일본 사회의 안타까운 모습을 나이든 아버지의 입을 통해 한탄하고, 그 재앙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사람의 모습 속에 그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서민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자조하거나 주저 앉아서 한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재해의 현장에 봉사 활동을 하러 갔다가 만나 연인이 되었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두 젊은이 쇼지(츠마부키 사토시)와 노리코(아오이 유우)가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과 그 진실된 노리코에게 전해지던 어머니의 유품을 통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일본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느끼는 노감독의 희망이 그려지고도 있었던 것인데 이런 이야기들이 결코 과장되게 그려지거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떠나서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 !
무척이나 보편적으로 느껴졌었고 우리 한국사회의 모습과도 닮아있던 '부모님'의 모습
< ▲ 먼길을 달려 도쿄로 오셨던 부모님이 원했던 것은 이런 호화로운 호텔의 식사나 잠자리가 아니었습니다 >
이처럼 영화 전체에 '3.11 대지진'의 아픔이 넌지시 깔려있긴 하지만 그런 부분은 한켠으로 밀어두더라도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보편적인 것으로 느껴졌었고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과도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섬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던 부모님이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도쿄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이 작품속 가족의 다양한 모습들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부모님과의 나들이를 계획했다가도 갑작스러운 일때문에 그 약속을 취소하는 큰 아들을 보면서도 미소로 화답하던 노부부, 하지만 편히 쉬시라고 호텔로 모셨던 둘째 딸의 권유에 마지 못해 호텔에서 보낸 그 하룻밤은 부모님에게 상처가 됩니다. 자신의 행동이 부모님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 했지만 한켠으로는 귀찮은 마음도 있었던 그 본심이 부부에게 전해졌었기 때문이죠. 노부부가 기대했던 도쿄에서의 시간은 호화로운 호텔방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가장 걱정스러운 아들이었던 막내 아들의 단칸방에서 함께 했던 하룻밤처럼 그저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나누고 밥 한그릇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니까요.
덩그러니 혼자 앉아 계신 아버지의 굽은 등을 보고 있으니 절로 눈시울이 붉어지던..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말이 있듯이 뒤늦게 후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
< ▲ 이 장면은 사진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같네요.. >
비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지 못한 막내 아들에 대한 걱정은 가실 일이 없었고 아들은 그런 관심을 불편하게 생각하기도 했으며 아버지에게는 껄끄러운 감정을 갖고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의 도리는 다했다'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자녀들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닌 진심을 나누는 그런 시간들을 기대했었던 것인데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결코 밖으로 표현하시지는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에서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 그대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외로운 호텔방에 앉아서 두런 두런 옛이야기를 나누시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더라구요. 하지만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영화는 결코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던 영화의 이야기가 더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는데, 구부정하게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것은 나 역시 이 영화속 인물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 하는 반증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말이 있듯이 뒤늦게 후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일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