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러운 세상에도 연꽃이 피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 언제나 남자냄새 진하게 나는 이야기만을 보여줬던 윤종빈 감독이 다시 한번 '남자 영화'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범죄와의 전쟁>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커진, 그야말로 '떼'로 돌아왔는데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페르소나'로 거듭나고 있는 하정우가 함께하고 전작에 출연했던 다수의 배우들까지 다시 그 이름을 올리면서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의 조합은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줘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올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국 블록버스터 가운데 가장 큰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작품 <군도 : 민란의 시대>, 영화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시사회를 통해 미리 보고 왔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했던 '조선 철종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 ▲ 더 이상 참지 못한 농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했던 '조선 철종 시대' >

<군도 : 민란의 시대>의 배경은 조선 철종시대로, 정치에 어두웠던 무능한 '철종'은 그야말로 허수아비와 다름 없었기 때문에 그의 외척 일파는 전횡을 일삼았고 그로 인해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때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백성들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백성들이 가진 것이라면 쌀한톨까지 모두 착취하려는 탐관오리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는데, 그런 현실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수많은 백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했습니다. 그야말로 영화 제목처럼 '민란의 시대'가 바로 조선 철종시대였던 것이죠. 이런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가신다면 영화를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군도>는 이 혼란스러운 시대의 중심, 다른 곳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나주'를 배경으로 나주 대부호의 서자이자 조선 최고 무관 출신이지만 신분적 제약으로 인해 더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한 백성의 적 '조윤'(강동원)과 천하디 천한 쇠백정 '돌무치'(하정우), 그리고 조선판 '로빈후드'라고 할 수 있을 도적단 '군도'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작금의 현실과 이 역사적 배경이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닐듯

< ▲ '나주'에는 그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군도'가 있었습니다 >

이 작품은 그 배경에서도 느낄 수 있다시피 상당히 암담한 시대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가진자는 더 가지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고 아무런 힘이 없었던 가지지 못한 자들은 일방적으로 그런 착취에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으면서 하루 하루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자들은 더더욱 악랄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조선 철종시대'라는 역사에만 기록되어 있는 일일까요? 작금의 현실은 그 모습과 방법만 달라졌을뿐, 이 시대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은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권력자, 가진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 배채우기에만 급급하고 있고 '인맥', '혈연'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네트워크는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고도 있는데 과연 현실의 모습이 약 200년전 <군도>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싶습니다. 때문에 영화가 설정하고 있는 '서자'라는 신분적 제약(인맥), 안동 김씨의 전횡과 탐관오리들로 인해 피폐해진 조선의 모습(혈연, 비리) 등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조선 철종시대에 투영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었고, 영화를 한 편의 풍자극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

하지만 영화는 결코 무게만 잡거나 어둡게 이야기를 풀진 않습니다

< ▲ 올해로 꽃다운 나이 18살 되신 돌무치(하정우)가 인사하는군요. 참.. 고생 심하게 했나봐요 >

그런데 이렇게 어두운 시대상을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도>는 결코 무게를 잡거나 어둡게 이야기를 풀어가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배경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에서부터 진지함은 조금 내려둔채 이야기를 이어가고, 영화 중간 중간 코믹한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큰 웃음을 주는 장면들도 많았었구요. 그리고 현대의 '고금리 사채'를 그 시대의 현실에 맞게 삽입하고 있는 등 현재와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무겁지 않게 담겨 있으면서 웃기지만 그저 웃을 수만은 없는 웃픈 영화로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게다가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 그리고 그와 어우러지는 음악은 마치 '서부 영화'의 한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등 재밌는 시도들 역시 많았는데 윤종빈 감독은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영화의 완급 조절을 했고 그 덕분에 이 작품의 배경은 <용서받지 못한 자>만큼, 아니 그보다 더 어두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오락 영화로 볼 수 있었습니다.

'민중의 소리가 들리는가' 라고 울부짖던 <레미제라블>이 살짝 떠오르던..

< ▲ 역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강동원', 잘생기긴 잘생겼네요 >

전 이 영화를 보면서 <레미제라블>을 떠올렸습니다. 예전에 <레미제라블>의 리뷰에 "당시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했던 민중들까지. 영화 속의 인물들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가련함'으로 통일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중에서 유이하게 희망적으로 느껴졌던 인물은 코제트와 마리우스였습니다" 라고 썼었습니다. <레미제라블> 리뷰에서 언급했던 '가련함'이라는 감정은 이 작품 <군도>의 느낌과도 일치하는 것이었구요. 그리고 <군도> 역시 '희망의 상징'으로 '아기'를 내세우면서 <레미제라블>을 떠올리게 만들더군요. 더러운 세상에도 연꽃이 피는 것처럼, 참혹한 세상에서 태어나 온갖 역경을 겪었지만 꿋꿋하게 살아남았던 그 아기, 스포가 되기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후반부 '그'의 심경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준것 역시 바로 '아기'였었는데 <레미제라블>에서 '희망의 결합'이었던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만남처럼 '군도'의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와 새로운 희망, 새로운 생명의 탄생인 '아기'의 결합은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윤종빈 감독의 바램으로 느껴지는 것이더군요.

2시간 30분의 긴 러닝타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영화, 재밌게 봤습니다

< ▲ 마동석씨를 비롯하여 엄청난 멀티캐스팅을 보여주는 영화, 그 멀티캐스팅 나쁘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이 작품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멀티 캐스팅'입니다. 멀티 캐스팅은 잘 사용할 경우엔 상당한 득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독이 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의 멀티 캐스팅은 일정부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였습니다. 상당히 많은 배우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특징과 역할을 확실하게 설정하는 꼼꼼한 활용을 보여주기도 했었구요.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하정우'가 아닌 '강동원'이었는데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그의 이미지와 영화속 악역이 제법 훌륭하게 매치가 됐었습니다. '강동원을 위한 영화'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더라는 ! 다만 '이야기'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그동안의 윤종빈 감독 작품과 비교하면 이야기의 구성이 더 낫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 이 작품 역시 '1. 지리산 추설, 2. 죽음의 행렬, 3. 신세계, 4. 백성을 구하라, 5.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 이라는 다섯개의 챕터를 갖고 있습니다. 요즘 이렇게 챕터를 나누는 것이 유행 ?

* 영화 음악도 상당히 좋더라구요. 특히 메인 테마를 비롯해서 '챕터 3. 신세계'로 넘어가는 장면에서의 음악이 상당히 좋았던지라 나중에 OST가 나온다면 꼭 다시 들어보고 싶습니다. 음악 감독님 이름 눈여겨 보고 기억했었는데 고새 까먹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