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체

‘염치’를 알면 ‘얌체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순수 고유어와 한자어 및 외래어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자어인데 전체 국어의 60퍼센트를 넘는다고 한다.

이들 한자어는 외형상의 간결성, 형태상의 안정성, 의미상의 전문성 등으로 고유어를 제치고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완만하게 국어 어휘 체계 속에 동화되어 제 본모습을 잃어가는 추세도 보인다.

물론, 국어화한 한자어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일단 어형이 변하기 시작하면 그 정도가 아주 심하기 때문에 자칫 고유어로 착각하기 쉽다. ‘성냥, 숭늉, 영계’도 그러한 예에 속하는데, 이들은 ‘석류황(石硫黃), 숙냉(熟冷), 연계(軟鷄)’라는 한자어에서 변한 것이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얌체’라는 단어도 한자어에서 변한 것이다. 그런데 ‘얌체’는 그 어형뿐만 아니라 의미까지 변하여 앞에 제시한 여러 한자어들과 또 다른 성격을 지닌다.

‘얌체’는 한자어 ‘염치(廉恥)’로부터 출발한다. ‘염치’는 “염치와 담을 쌓을 놈”, ‘염치를 차리다’ 등에서 보듯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염치’는 ‘얌치’로 어형이 변하는데, 이때만 해도 의미상의 큰 변동은 없다. ‘염치’와 ‘얌치’는 모음 차이에 의해 약간의 어감(語感) 차이만 보이면서 지금까지 공존하고 있다.

‘염치’에서 변한 ‘얌치’는 다시 ‘얌체’로 변한다. 제2음절의 ‘치’가 ‘체’로 변하여 어형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염치가 없는 사람’으로 그 의미도 달라졌다.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추상적 의미가 ‘그 마음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구상적 의미로 바뀐 것은 그렇게 부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긍정적 의미가 부정적 의미(즉, ‘염치가 없는 사람’)로 바뀐 것은 아주 특이하다.

추상적 의미를 구상적 의미로 바뀌게 한 것은 아마도 ‘얌체’의 ‘체’가 아닌가 하나 이 ‘체’의 정체는 잘 알 수 없다. 혹시 한자 ‘體’이거나 의존명사 ‘체’가 아닌가 한다. ‘얌체’가 ‘모르면서도 아는 체, 못난 것이 잘난 체,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는 짓이나 그러한 사람’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보면 의존명사 ‘체’에서 유추된 어형일 가능성이 더 크다. 말하자면 ‘얌치’가 의존명사 ‘체’에 이끌려 ‘얌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도 하나의 추정에 불과하다.

한편, 긍정적 의미를 부정적 의미로 바뀌게 한 장본인은 ‘얌체 없다’와 같은 구조로 ‘얌체’와 자주 통합하여 나타나는 부정어 ‘없다’이다. ‘없다’가 지니는 부정적 의미에 전염되어 ‘얌체’가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보면 ‘얌체’는 한자어 ‘염치(廉恥)’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것에서 변한 ‘얌치’에서 변형된 것이고, 그 변형 과정에서 의미 변화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얌체’가 기실 ‘염치(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라는 단어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정말 ‘얌통머리(야마리)’ 없는 ‘얌체’들도 ‘염치’를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염치’ 없는 ‘얌체’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