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신들리다

‘걸신’은 ‘빌어먹는 귀신’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흔히들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어떤 이유로 ‘의(衣)’를 맨 앞에 내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의(衣)’보다는 ‘식(食)’이 더 중요하므로 그 중요도를 따지면 마땅히 ‘식(食)’을 앞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 ‘먹는 일’은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 잘 먹고 맛있게 먹는 일이 행복이라면, 그 반대는 불행인 셈이다. 그러므로 ‘먹는 일’은 인간 행복의 절대적 조건이 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웰빙(참살이)’의 중요한 요소가 바로 ‘먹는 일’이 아닌가.

‘먹는 일’이 ‘웰빙’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것에 너무 집착하면 추해 보인다. 먹는 것밖에 모르는 우둔한 ‘돼지’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돼지처럼 살이 쪄서 추해 보일 수도 있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먹기 위해 허발하는 꼴이란 추하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먹는 데는 감돌이 일에는 배돌이(먹는 일에는 남보다 먼저 덤비나 일할 때는 꽁무니만 뺌)”라는 속담은 먹는 일에 남보다 먼저 덤비는 짓이 얼마나 추한 모습인가를 훈계한다.

이렇듯 ‘먹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해 게걸스럽게 먹을 때 ‘걸신들리다’는 단어를 쓴다. 이는 ‘걸신이 들리다’는 표현에서 주격조사 ‘－이’가 생략된 뒤 축약된 것이다. “누가 먹기에 걸신이 들렸단 말인가. 그동안을 못 참아서 첫 꼭지를 떼다니 될 법이나 한 수작인가”에서 보듯 ‘걸신이 들리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걸신’은 ‘귀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걸레 같은 귀신’, ‘거지 귀신’, ‘굶어 죽은 귀신’은 아니다. 한자 ‘乞神’이므로 ‘빌어먹는 귀신’이다. ‘걸(乞)’이 ‘빌다’, ‘구걸하다’의 뜻이어서 ‘걸신(乞神)’이 어떤 귀신인지는 자명해진다.

‘걸신’이라는 귀신은 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고 사는 처량한 신세이다. 빌어먹다 보니 밥이 모자라 항상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음식만 봤다 하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걸신’이라는 귀신이 몸을 덮친 것이 바로 ‘걸신이 들리다’이다. ‘들리다’에는 ‘병에 걸리다’의 뜻도 있지만 ‘귀신이나 넋 따위가 덮치다’의 뜻도 있다. 어떤 귀신이든 몸에 들어오면 그것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귀신의 장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걸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걸신’이 음식을 빌어먹으며 그것을 탐하는 귀신이므로 걸신이 들리면 꼭 걸신처럼 식탐(食貪)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걸신이 들리다’나 ‘걸신들리다’에 ‘굶주려 음식을 탐하는 마음이 몹시 나다’와 같은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너 걸신들린 듯이 왜 그렇게 폭식을 하냐?”에 쓰인 ‘걸신들리다’가 그 본래의 의미로 쓰인 것이라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사람의 걸신들린 행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에 쓰인 ‘걸신들리다’는 변화된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렇듯 걸신이 들려 음식을 지나치게 탐하는 사람을 ‘걸신쟁이’라고 한다. 이는 ‘걸신’에 접미사 ‘－쟁이’가 결합된 어형인데, ‘－쟁이’는 일부 명사에 붙어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한다. 그러니까 ‘걸신쟁이’의 ‘－쟁이’는 ‘걸신’이 갖는 ‘식탐’이라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을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고집쟁이, 무색쟁이’의 ‘－쟁이’와 기능이 같다.

대부분의 ‘걸신쟁이’는 ‘걸신증(乞神症)’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다. ‘걸신증’은 음식을 지나치게 탐닉하는 병이다. 사전에는 ‘음식을 탐하여 지나치게 살이 찌는 병’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이는 ‘비만증’과 비슷하다. 반면, 먹는 것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거식증(拒食症)’과는 반대 개념에 가깝다.

음식을 지나치게 탐하는 ‘걸신증’이나 그것을 무조건 거부하는 ‘거식증’은 먹는 일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먹는 일’은 일상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정도에서 벗어나면 이처럼 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