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이 좋다

변죽을 울리다? 번죽이 좋다?

사람의 성격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소심한 성격이 있는가 하면 대담한 성격도 있고, 느린 성격이 있는가 하면 바지런한 성격도 있으며, 쉽게 노여워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 있는가 하면 웬만한 일에는 노여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격도 있다.

우리말에는 이러한 각양각색의 성격을 표현하는 관용적 표현들이 잘 발달되어 있다. 소심한 성격을 ‘좁쌀영감 같다’고 하고 지나치게 대담한 성격을 ‘간이 붓다’고 한다든지, 굼뜬 성격을 ‘거북을 타다’고 하고 바지런한 성격을 ‘개미 같다’고 한다든지,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을 ‘색시 같다’고 하고 쉽게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성격을 ‘반죽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반죽이 좋다’는 표현은 이상하게도 ‘변죽이 좋다’나 ‘번죽이 좋다’로 쓰이기도 한다. ‘변죽이 좋다’나 ‘번죽이 좋다’는 ‘반죽이 좋다’의 변형에 불과하므로 잘못된 표현이다. ‘반죽’의 제1음절 모음을 잘못 발음하여 ‘변죽’이나 ‘번죽’으로 잘못 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반죽이 좋다’를 제치고 ‘변죽이 좋다’가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질문에 ‘반죽이 좋다’가 아니라 ‘변죽이 좋다’가 올라와 있는 것만 보아도 실제 ‘반죽이 좋다’보다는 ‘변죽이 좋다’가 더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거듭 언급하거니와 ‘변죽이 좋다’도 아니고 ‘번죽이 좋다’도 아닌 ‘반죽이 좋다’가 맞는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 ‘반죽이 좋다’의 ‘반죽’은 무엇인가? ‘반죽’은 본래 ‘가루에 물을 부어 이겨 개 놓은 것’을 가리킨다. 빵을 만들거나 면발을 뺄 때 가루에 물을 붓고 이겨 갠 가루 뭉치가 ‘반죽’이다. 그렇다면 ‘반죽이 좋다’의 표면적 의미는 ‘물을 부어 갠 가루 뭉치가 엉기지 않아 좋다’가 된다. 달리 말하면 ‘반죽이 잘되다’이다.

그러나 관용 표현으로서의 ‘반죽이 좋다’는 이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성미가 유들유들하여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다’는 비유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죽이 잘되다’에서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다’로의 의미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반죽이 잘되다’가 무엇을 함축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반죽’은 가루에 물을 붓고 적당히 치대어 만든다. 반죽을 잘하려면 오랫동안 이리저리 주물러야 한다. 그래야만 엉김이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끈기가 있는 ‘반죽’이 된다. 이렇듯 잘된 반죽은 부드러우면서도 끈기가 있다. 잘된 반죽이 갖는 ‘부드러움’과 ‘끈기가 있음(차짐)’이라는 특성이 사람의 성격에 확대 적용되어 ‘반죽이 좋다’에 ‘성미가 유들유들하여 노염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다’는 비유적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드럽고 차진 반죽처럼 성미가 유들유들하면 노염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고 조금은 뻔뻔해진다.

그럼 ‘반죽이 좋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죽이 좋다’나 ‘번죽이 좋다’와 같은 유사 표현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인가? ‘변죽이 좋다’는 순전히 ‘반죽’과 어형이 유사한 ‘변죽(그릇이나 세간 따위의 가장자리)’에 이끌려 변형된 것이다. ‘변죽’은 ‘좋다’와는 어울리지 못하고 주로 ‘울리다’나 ‘치다’와 어울려 ‘변죽을 울리다(바로 집어 말을 하지 않고 둘러서 말을 하다)’, ‘변죽을 치다(변죽을 울리다)’와 같은 표현 속에서 쓰인다. ‘반죽’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와 어형이 유사한 ‘변죽’을 얼른 떠올려 ‘반죽이 좋다’를 ‘변죽이 좋다’로 슬쩍 바꿔 놓은 셈이다. 그러나 ‘반죽’과 ‘변죽’은 전혀 별개의 단어이므로 ‘변죽이 좋다’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한편, ‘번죽이 좋다’는 ‘반죽’을 모음조화에 따라 ‘번죽’으로 바꾸면서 등장한 것이다. ‘언죽번죽(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고 비위가 좋아 뻔뻔한 모양)’이라는 부사가 쓰이고 있어 ‘반죽’이 ‘번죽’으로 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번죽’이 일상화되지 않고 ‘반죽’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굳이 ‘반죽이 좋다’를 ‘번죽이 좋다’로 바꾸어 표현할 이유는 없다.

이제 ‘반죽이 좋다’가 어원적으로 맞는 표현임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므로 ‘변죽이 좋다’나 ‘번죽이 좋다’와 같은 유사 어형에 현혹되어 잘못 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