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빠진 놈

쓸개가 빠지면 사람 노릇 하기 어렵다

우리 몸에는 ‘오장(五臟)’과 ‘육부(六腑)’가 있다. ‘오장’은 ‘간장, 심장, 폐장, 신장, 비장’의 다섯 가지 내장이고, ‘육부’는 ‘대장, 소장, 위, 쓸개, 방광, 삼초’의 여섯 가지 기관이다. 이로써 ‘쓸개’는 ‘육부’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쓸개’는 간장에서 분비되는 쓸개즙을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농축하는 주머니이다. 그래서 ‘쓸개주머니’라고도 하는데, 샘창자(십이지장) 안에 음식물이 들어오면 쓸개즙을 분비해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

‘쓸개’라는 말은 매우 독특하다. ‘오장’이나 ‘육부’에 속한 기관을 가리키는 말이 대부분 한자어인데 반해 ‘쓸개’만 고유어이기 때문이다. ‘쓸개’는 15세기에 쓰이던 ‘쓸게’에서 온 말로, “담쓸게라(『金剛經三家解』)”는 구절로 보아 한자어 ‘膽(담)’과 함께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쓸게’는 일단 ’쓸과 ‘－게’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쓸‘에 대해서는 형용사 ‘－〔苦〕’와 관련된 어형으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라는 형용사가 관형사형어미 ‘－ㄹ’을 취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여 그렇게 설명하기 어렵지 않나 한다. 다만 쓸개에 있는 담즙이 매우 쓰다는 점에서 ‘－’라는 형용사를 이용한 조어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술을 많이 먹고 토하다가 토할 것이 없을 때 ‘똥물이 올라온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쓸개즙이다. 쓸개즙은 쓰디쓰다. ‘쓸개 씹은 얼굴’, ‘쓸개 씹은 개’ 등과 같은 표현을 통해서도 쓸개즙의 맛이 얼마나 쓴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접미사 ‘－게’가 ‘집게(집-+-게)’, ‘지게(지-+-게)’ 등에서 보듯 주로 동사 어간에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도 관형사형 ‘’쓸에 접미사 ‘-게’가 결합된 것이라는 설명은 좀 이상해 보인다. 그래서 ‘쓸게’의 ‘쓸'을 ‘－’의 관형사형이 아니라 그 자체를 동사 어간으로 볼 수도 있다.

‘쓸게’라는 단어의 독특함은 다른 신체 부위 명칭과 조어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신체 부위 관련 고유어들은 ‘눈, 코, 입, 배꼽, 목젖’ 등에서 보듯 단음절어(單音節語) 아니면 명사와 명사가 결합된 합성어가 대부분인데 ‘쓸게’는 파생어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쓸게’라는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든, 이것이 18세기의 ‘쓸게’를 거쳐 현재의 ‘쓸개’로 이어졌다.

‘쓸개’는 다른 ‘오장’, ‘육부’와 관련된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쓸개’에서 과감한 기운이 나온다고 생각하여 ‘용기’와 ‘줏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믿기도 하고, ‘쓸개’가 신체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결단을 내리는 곳으로 인식하여 ‘결단(決斷)’, ‘대담(大膽)’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기도 한다. 또 ‘쓸개’의 쓴맛으로 인해 ‘고통’이나 ‘낭패’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쓸개’는 ‘대담’과 ‘줏대’의 상징으로 많이 쓰인다. ‘대담’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膽力(담력)’이나 ‘大膽(대담)’과 같은 한자어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물론 ‘쓸개자루가 크다(담력이 커서 겁이 없다)’와 같은 관용 표현을 통해서도 ‘쓸개’가 ‘담대함’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줏대’라는 상징적 의미는 ‘쓸개가 빠지다(하는 짓이 사리에 맞지 않고 줏대가 없다)’, “쓸개 빠진 놈(정신을 바로 차리지 못하는 사람)” 등과 같은 관용 표현에 쓰인 ‘쓸개’에서도 확인된다. 과감한 기운이 나온다고 믿는 ‘쓸개’가 빠졌으니, ‘정신’을 차릴 수 없고 ‘줏대’를 세울 수 없다고 믿는 것은 당연하다.

‘쓸개’에 ‘대담’, ‘줏대’ 등의 상징적 의미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동물의 쓸개는 최고급 한약재로 쓰인다. 소의 쓸개에서 추출하는 ‘우황(牛黃)’, 곰의 쓸개인 ‘웅담(熊膽)’은 물론이고 개의 쓸개까지 그 약효가 매우 놀랍다고 한다. 이를 보더라도 ‘쓸개’의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