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볼 수 있는 축복　

오마이뉴스 - [속보, 세계] 2003년 04월 03일 (목) 09:33

이렇게 온 천지에 봄꽃이 만발해 있어도 볼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벚꽃축제니 장미꽃 축제니 요란한 향연이 전국에 널려 있건만,

두 눈 멀쩡한 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못 가지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이들이 너무도 많다.

몇년 전, 남편이 협심증으로 수술을 했다.

갑자기 가슴이 조이고 아프다는 남편과 병원에 갔을 때 협심증이라고 했다.

많지도 않은 나이에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에 남편 자신은 물론이고

나 역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동맥을 통해 심장혈관을 확장시키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남편을 입원실에 남겨두고 잠시 생각을 하며 병원 근처를 걷고 있었다.

앞으로 퇴원을 하고 나면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까?

남편 걱정에 정신이 팔려 땅만 보고 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애타게 구원을 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없어요? 좀 도와 줘요!"

얼른 달려가 보니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 한 분이

길을 건너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데, 어느 누구 한 사람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아저씨, 어디로 가려고 하는데 그러세요?"

"만두 가게 앞에 분명히 횡단보도가 있을 텐데

지팡이로 아무리 만져봐도 모르겠어요."

그 길은 일반인이 다니기도 비좁아서

장애인이 다니기에는 여간 힘이 들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아저씨는 늘 다니던 길을 조금 지나쳐 버리는 바람에

횡단보도 있던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


사람들은 아저씨가 그렇게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데도

멍뚱멀뚱 구경만 할 뿐 도와 줄 생각조차 하지를 않았다.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아저씨를 횡단보도에 데려다 주고 길을 건너게 해 주었더니

이제부터는 잘 갈 수 있다고 어찌나 고마워 하던지...

남편은 다행히 협심증이 심하지 않은 상태에 발견이 되어

약으로 조절이 가능하다고 하는 희망적인 얘기를 듣고 퇴원을 했다.

병원을 나서면서도 길가에서 만났던 그 아저씨의 애타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자꾸만 그곳을 돌아보게 되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에게 얘기했다.

우리는 약으로 치료될 수 있는 병이지만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할까?

말을 못하고 귀가 안 들리는 불편보다 더한 것은

앞을 볼 수 없는 불편함일 거라고...

말을 할 수 없거나 귀가 들리지 않더라도

쪽지에 적어 의사전달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바깥세상을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을 해보았다.

얼마 전에 전철을 타고 가다가,

엄마 손을 잡고 올라오는 검은 안경을 쓴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母子를 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 학생이 앞이 안 보이는 장애인으로 생각되어 서있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 학생이 마구 웃으며 자기 엄마를 쿡쿡 찔렀다.

엄마도 따라 웃었다. 도리어 자리 양보한 내가 무안해 하고 있었는데,

그 학생은 쌍꺼풀 수술하고 집에 가는 중이었단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같이 웃었고,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 열심히 안 할 때 가끔 무섭게 야단도 치고,

아이들로 인해 실망도 하곤 한다.

내 자신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우울해지기도 하고,

주변의 상황에 대해 상대적 빈곤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불편한 몸으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불평인지...

건강한 두 눈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

어느 곳 하나 장애 없이 건강하다면 더 말해 무엇할까마는,

세상일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신체적인 장애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인 장애도 없는,

모두가 건강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의 눈이라도 맑게 지니도록 정신수양이나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