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4 / 김별

현충사 가는 길,

은행나무 숲길은 이미 절정을 향해 타올랐다고

썼다가 지우고

약속할 수 있는 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거라고

영원이란 단지 깨고 싶지 않은 순간의 꿈이라 해도

이제 아무것도 약속 할 수 없다고

그렇게 썼다가 지우고

풀꽃 반지를 아직 그대의 손가락에 끼워 드리지 못했다고

들꽃의 향기도 꽃잎도 이미 다 사라진 날에

사랑조차 세상사의 이해타산이 되어버린다면

겨울이 오기도 전부터 봄을 기다리는 오랜 습성으로

꽃이 피어난들 무슨 소용이냐고

철새들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계절을 적시는 찬비가 뿌리지만

마음까지 젖진 말라고

밤길 조심하라고

밥 잘 챙겨 먹고

따듯이 입고 감기 조심하라고

자유로우라고

바람보다 새들보다

뜨거우라고

꺼지지 않은 가슴의 불을 간직하라고

태어난 자리가 무덤인 나무처럼

우직하게 한 자리를 지켜야

완전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아프지 말라고

먹었던 독한 마음, 착한 척 하지 말라고

그 입술

언제나 장미처럼 달콤하라고

쥐 잡아 먹은 듯이

단풍잎보다 더 빨갛게 요염하라고

꼭 그러라고  

썼다가

지우지 못하고

낙엽 속에 태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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