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 김별

꽃을 따라 떠난 길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별을 따라 떠난 길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쯤에서 꽃이 되었을 겁니다

별이 되고 나무가 되고

별꽃 피는 어느 낯선 언덕에 감빛 노을이 되었을 겁니다

온 산을 활활 다 태운 단풍 숲으로 떠난 길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천지간을 분간할 수 없는 눈발 속으로 발자국도 없이 떠난 길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도 내 가슴에 그리움과 기다림의 언덕이 되었지만

나는 그들이 떠나야 했던 이유와 돌아오지 못한 이유,

남겨 놓은 미소와 뒷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들도 기어이 꽃이 되고 별이 되고

문득 뒤돌아본 지울 수 없는 풍경 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감추고 있을 겁니다

다시 그 가을이 깊어갑니다

날마다 빈 우체통을 찾았다 돌아서는 발걸음은

갈대처럼 가벼워진 육신조차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 어느새 얼음처럼 차갑습니다.

이제 산도 나무도 풀꽃도 아름다움조차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놓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이미 남루해진 모든 것을

기온과 바람에 맡겨야만 할 것을

점점 몸을 감싸기만 합니다.

잘 계시는지요.

님을 찾는 일이

숲속 옹달샘을 찾는 새벽길만큼이나 마음을 정갈하게 하지만

단풍잎 한 장도 못 되는 작은 소식 한 소절 내려놓는 일조차

세상살이만큼이나 조심스럽고 힘들고 어려운가 봅니다.

동무라 동행이라 연인이라 이름 지을 수도 없지만

결코 타인이 될 수 없는 기가 막힌 무슨 운명 때문이기보다는

내가 짊어진 초라한 행색의 삶 때문일 겁니다.

지난여름이 가혹했기에 오히려 더 예쁜 물이 든 나뭇잎을

아직 이슬 묻은 더 깨끗한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마주앉아 차 한잔 하고 싶은 마음조차 욕심이거나

돌무더기에 돌 하나를 더한 혼자만의 약속이겠지만

세월에 몸을 맞기기에 더 편안한 그런 무엇도 있을 겁니다.

어느새 삭정이만 남은 나무들이 산이 요즘은 못난 사람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시를 쓰는 일이 언제나 잘못을 반성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일이

채울 수도 없는 것을 버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몰래 왔던 길을 다시 소리 없이 돌아서는 이슬 묻은 밤길이 되었습니다.

눈물을 감추듯 마음도 말도 눈길도 더 깊이 감추는 일이 되었습니다.

붙이지 못한 가을 편지는

그렇게 다시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낙엽처럼

깊고 어두운 내 가슴의 심연 속으로 사라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