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시아 사랑 / 湖夜 이춘효 - 
 

햇살이 선명한 날  

뒷걸음질 쳐 다다른 숲

하얀 꿀단지처럼 매달린

눈부신 꽃더미

얼굴에 확 풍기는 아카시아 향기에

닫고 살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아카시아 향내 그득한 숲길을 걸으며

숨을 들이쉴 때마다

저기 세상으로부터 끌고 온

묵은 공기 와르르 무너진다

숲속 나무들은 지금

꿈의 비늘 흩날리는 향기에 묻혀

절반씩 다른 생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는 셈이 아니던가

꿀 향기를 풀어 놓아

어디서 날아 왔는지

꽁지를 하늘로 치켜들고

머리는 꽃 속에 파묻어

꿀을 빠느라 정신이 없는

벌떼들 아래서 배회하는

꽃그늘은 마음의 빗장을 풀어도

좋은 휴식처다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건

가지끝에 매달린 바람의 일일뿐

여러 겹의 나를 하나의 나로 에워싼

초록의 그늘 아래

파아란 나의 바람이 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불시착처럼 떨어지는

아카시아 꽃잎들을 덥썩덥썩 받아주는

도시의 뒤란 꽃그늘에서

오래전 퇴화해버린 날개를 흔들며

나는 습관처럼 기지개를 켠다

2013. 5. 12. (울산대공원 숲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