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김별
 

조금씩 때로 아주 많이...

오랜 세월 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온몸을 짓누르는 날

어디에 갈 곳도 쉴 곳도 없어

얼마 만인가

오늘은 산을 올랐다
 

집 뒤의 작은 동산 오솔길이건만

이내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

중간도 못 가 휘청거리며 힘겨워 할 때

소나무가 뿌리를 뻗어

계단을 만들어 주었다
 

힘들어하지 마세요

손을 잡아드리지요

당신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더 나을 것도 없는 그날이 그날

어디에 속 시원히 하소연 할 곳도 없어

좋은 사람과도 괜한 꼬투리로 짜증과 한숨

이내 후회하고 돌아설 속좁은 큰소리만 늘어 가는데

그 세월만큼 빼앗겨버린 꿈은

작은 그늘에도 구석구석 슬픔의 곰팡이로 피어

이제는 즐거울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눅눅한 일상을

잠깐 볕이 드는 창가에서

손톱이나 깎으며 걱정이나 달래보지만
 

오랜 지병에 체념의 편안함을 배워버린 만성병환자처럼

문밖을 나서는 것조차 귀찮고 두렵기만 해

몇 발자국 남짓한 거리의 산조차 아득히 먼 섬이라도 되는 양

시간이나 핑계 대며 아예 잊고 살았는데

쓰러질 듯 후들거리기만 하는 걸음을

기다린 듯 일으켜 세워주었구나
 

무사히 나를 인도한 나무는

험한 세상을 떠돌다 지쳐 돌아 온

자식을 맞은 어머니인 듯

편히 쉴 수 있도록

넓게 뻗은 가지 밑에 평평한 돌을 놓아주고

시원한 바람으로

지끈거리던 머리와 흘러내리는 땀을 식혀주었다

우울한 기분을 위해서는

새들을 불러 모아 즐거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아! 그리고

꽃보다 진한 솔향이

찌든 폐 속으로 가득 들어와

탁한 피를 옹달샘물처럼 맑게 하고

지친 몸을 거짓말처럼 거뜬히 해 주었다
 

아! 날아갈 것 같애

날개를 단 듯 날아갈 것 같애

아! 편안해

고향에 온 듯

원래 내 자린 듯

모든 시름을 잊고 편히 쉴 수 있게

아! 정말 편안해..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처럼 지치고 외로울 때

언제든 다시 오세요

당신을 기다려

언제까지나 여기 서 있겠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고백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소나무야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그 자리를 지킨 것으로

감동이 되어 준 나무야

따뜻한 차 한 잔도

왁자한 건배의 술잔도 없이

세상에 누가 있어

주는 것만으로 진정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겠느냐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행복과

이상일 뿐이었던 자유를

아무런 대가없이 더 큰 기쁨으로 돌려 줄 수 있겠느냐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연인처럼 아름다운 나무야

소나무야

나도 널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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