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제왕 ‘나물’요리는 어디로 갔을까

비만이 세계 각국의 건강 재정을 갉아먹는 골칫덩이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서양에서는 21세기에 주목해야 할 음식 트렌드로 주저없이 ‘한식’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최근 USA투데이에서 2012년 주목해야 할 12가지 음식 트렌드를 소개했는데요, 그 중에는 한국의 김치가 당당하게 포함돼 있었습니다.
 
세계 1급 요리사들과 외식업계 큰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마드리드 퓨전’ 음식 박람회는 매년 세계 요리 트렌드에 부합하는 음식문화를 가진 나라를 주빈국으로 발굴해, 그 나라의 음식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는데요, 올해는 바로 한식의 해였습니다. 이 박람회의 사무국장은 “한식은 자연에 바탕을 두고 재료 자체의 맛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간장 고추장, 김치 등 발효음식이 근간을 이룬 건강한 음식입니다. 먹으면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에 올해 주빈국으로 초대했다”고 밝혔습니다. 한 외국 음식전문 기자는 한식에 대해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요리가 많은 중국과 달리 담백하고 섬세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영양의 밸런스를 맞출 뿐 아니라 김치나 된장과 같은 발효음식이 많은 한식은 그야말로 ‘궁극의 웰빙 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외신 기자의 지적처럼 ‘담백한 맛’또한 한식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식이 서양에서는 각광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홀대받거나 변질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홀대받고 있는 대표적인 한식은 나물, 시래기 등과 같은 채소 음식들입니다. 채소가 귀한 요즘과 같은 겨울철에는 모진 비바람 맞으면서 각종 영양소가 응축돼 있는 꾸덕꾸덕한 시래기로 국도 끓여 먹고, 졸여도 먹으면서 겨울을 거뜬하게 났습니다. 요즘은 시래기를 찾아보기도 귀할 뿐 아니라 해 먹는 방법을 몰라서 밥상에 올라오는 경우도 드뭅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참기름과 소금만으로 전국 팔도에서 나는 다양한 채소들을 나물로 무쳐 먹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주부들 중에서 나물 요리로 밥상을 차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명절 음식도 예전에는 나물 요리들이 종류별로 푸짐했었지만 요즘은 손만 많이 가고 인기는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나물 대신 불고기, 갈비찜과 같은 달짝지근한 고기 요리가 한식의 제왕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서양식을 닮아 기름에 볶고 튀기고, 구운 음식들 위주로 상을 차리다 보니 아이들도 나물 반찬하면 고개부터 가로 젓기 일쑤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수십 년 뒤엔 나물 요리가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깁니다.
 
서양사람들이 한식을 비만, 성인병과 맞서 싸울 수 있는 21세기의 음식 대안으로 재조명하고 있는 까닭은 분명, 한식의 고기 요리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기 요리라면 한식보다는 서양식이 더 일가견이 있을 테니까요. 비빔밥이 외국에서 요즘 각광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흙의 정기가 살아있고, 자연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각종 채소들로 만든 국이나 찌개, 나물 요리 등이야말로 진짜 ‘한식 중의 한식’이라고 생각됩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음식입니다.
 
주부님들께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물 요리, 어~렵지 않습니다. 기름에 볶고 튀기고, 고기 굽는 것보다 채소 데쳐서 무치는 게 더 간단합니다. 나물 다듬고 데치기 힘드시다구요? 다 손질해서 삶아놓은 것들도 마트에서 팔고 있으니 얼마나 간편한 세상입니까?
 
아직 추운 3월입니다. 식탁에 푸릇푸릇 봄을 먼저 들여 보세요. 건강 꽃이 필 것입니다.

글: 힐리언스 선마을 이시형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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