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정도로 광활한 인도의 시골풍경을 충분히 누리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 지지만

인도 안의 작은 인도같은 좁은 기차칸에서 만나는 인도인은 인도여행에서의 특별한 기억을 채워주는 특별한 곳이다.

그래서.. 찾아가는 도시에서 발견하는 일상의 경험이 여행의 일부라면

기차에서 우연처럼 마주치는 특별한 인연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부처럼 느껴진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이제는 기억도 가물하지만,

유레일 패스로 다녔던 유럽과 비교해도,

인도의 기차여행은 특별했다.

  

30일 동안 열 번의 밤기차타기..

여러 가지 일들로 어느 한 번도 기억에 남지 않은 적이 없지만,

사트나 역에서 가야로 가던 기차안에서의 시간들은 조금 더 특별했다.

그동안 기차칸이 나뉘기는 해도 늘 두 서너명의 일행들과 함께였는데

이날 밤은 처음으로 혼자 뚝 떨어져 밤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이었다.

 

북적거리는 플랫폼..그리고 혈관 속에서 긴장감이 심장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기분으로

벌써부터 만원인 슬리퍼칸으로 뛰어가서 자리를 찾고 보니 내 자리는 이미 누군가 점령한 상태..

세 사람이 앉는 자리에 여섯명이 앉아 있었다.

 

너무도 당당한 표정으로 무심한 듯 올려다 보는 그들에게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래야,

종이조각 한장인 표를 흔들며 내 자리에 대한 권리를 밝히는 것 뿐..

그래봤자 그들의 표정이 말하는 바는...그래서??? 어쩌라고..?..다.

그리고 누군가 일어나는 대신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가까스로 내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만 할 뿐이다.

우선은..무거운 배낭을 그들 발 사이에 턱~하고 내려놓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낀다.

내 자리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찾는 건 그 다음 일이다.

 

  

중간칸 침대..맨 아랫칸에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침대를 세울 수가 없고,

침대는 아홉시가 넘어야 벽에 침대모양으로 갖추고 지친 몸을 뉘어 잠을 청할 수 있다.

제일 꼭대기 3층 침대같으면 거기에 누워 있는 사람을 불러 내리고 미리 잠을 청할 수 있지만,

제일 애매한 자리가 2층 중간칸 침대.

 

 

일단...아랫 자석에 비집고 앉아 내 주위를 감싸고(!) 앉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동안 만났던 대체로 호의적인 인도인과 달리 약간은 무뚝뚝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향해 미소짓자 그들은 낯선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을 애써 감추려는 듯 어색한 눈길을 돌려 버렸다.

 

 인도 기차는 열차 안에서 정차역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목적지 주변에 가까워지면 긴장하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물어서 다음 역이 어딘지 물어야 한다.

새벽즈음엔, 짜이~짜이~ 외치며 아침잠을 깨우는 차이 판매원에게 묻기도 하지만,

좌석 주변의 인도인들과 친해진다면 친절한 인도인들은 내려야 할 때를 부지런히 일러 주기도 한다.

 

그들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은 뒤, 나는 가야로 간다고 했다.

어떻게든 말을 붙이며 친해져야 했으므로..

정말 쉬고 싶은 맘을 꾸욱 누르고 계속 말을 걸었다.

 

 

이런 일은 첨이었는데..무뚝뚝한 사람들이 대답을 안 한다..속으로 당황스럽다..어쩜 좋아..이 사람들 뭔일 있남..? @@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이 사람들이 영어를 못 한다는 걸 알았다. 에궁..이다.

(이럴 때 힌디어라도 몇 마디 알고 있었음 얼마나 좋아..ㅠㅜ)

 

 

 

 

 

 

내 옆에 앉았던 일가족.

도무지 웃지 않던 아이들의 엄마와 잠시도 가만있지 않던 세 아이들..

결국 비장의 무기,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사진을 찍어서 아이들과 엄마에게 보여주며,

좀 웃어봐요~~~웃는 게 이뽀요~~~^___^

손짓으로 내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표정을 만들자...

 

 

  

 

 

 

이 여인...드디어 나를 향해, 아니 카메라를 향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덕택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뾰족한 긴장감이 누그러지는 걸 느끼고..

 

 

 

 

아이들과 옆 자리의 부부가 누그러지자..

앞 자리에 남자친구와 새초롬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젊은 처자의 굳은 입가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세련된 옷차림과 미모가 눈에 띄게 돋보였던 이 처자는 갓 결혼한 새댁이라고 했다.

옆에 앉았던 남자는 사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였는데, 알고보니  군인이었다.

 

통로까지 사람들이 가득찼던 기차 안에서 나를 둘러싼사람들이 계속 바뀌었다.

 

 

 

 

 

 

 

두어 시간 동안 내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던 이 사람은

압헤이 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본인 말로는 테크니션(기술자)이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니 구자라트(Gujrat)에 산다는 말을 못 알아듣고.. 나는 가야에 간다고만 계속 되뇌었다.

종교와 기타 등등에 관해 꽤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너무 피곤했던지, 무슨 말들이 오고 갔는지 기억이 안난다. ㅠㅠ

 

만원 기차칸 안에서 자리에 앉은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좌석 기둥에 잔뜩 몸을 기대고 선 사람들까지

산만한 동양인 처자를 세심히 관찰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마주보고 앉았던 이 노인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아..학자처럼 보인다고 했더니..말없이 웃기만 했다.

한참을 옆 자리의 압헤이씨와 이야기하는 걸 듣기만 하더니, 어느 순간 세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분..비하르의 사르보다야 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란다.

 Principal Yamuna Singh.. (인도에 싱씨가 참 많기도 하다.)

성공한 네 아들의 줄줄이 사탕 이야기와 언어 이야기도 잠시 곁들이다가

산스크리트어 전문가께서 초간단 산스크리트 강의를 하며 잠시 즐거운 시간이 흘렀다.

어순에 맞춰 산스크리트어로 단어를 바꿔 문장을 말하자 옆자리의 압헤이가

인도말도 금방 배우겠다고 함께 거들었다.

 




영어와 힌두어와 산스크리어를 써가며

흔들리는 어두운 기차안에서 배우는 산스크리트어...ㅎ

즐거웠다.

 

잠시 열차가 정차했을 때.. 반가운 사람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혼자 보내놓고 걱정이 된 일행들이 기차가 정차하는 사이 먼길(!)을 둘러 찾아왔다. ^^

기차에서 내려 따뜻한 차이를 마시는 동안

두어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ㅠㅜ)

 

 

 

다시 기차에 올랐을 때..

외국인이 사진을 찍어준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몇 사람이 내게로 와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아자씨..자신은 군인이라며, 아들을 데리고 와 영어를 잘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더니

아들에게 내게 영어로 얘기해 보라며 쿡쿡 찔렀다.

 

  

 

 

 

잠시 후 아이의 엄마가 동생도 데리고 등장하시고..

 

 

솔직히 말하면..정말 피곤에 겨워 어서 빨리 잠을 청하고픈 마음이었지만..

나는 이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청하는 대로 주소를 적어주고,

그들의 주소도 받아 적었다.

 

 

놀랍게도..이 아이들은 정확하게 내가 한국에 도착한 날 밤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아홉시가 다 되어갈 무렵, 기차안의 사람들은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 무렵이었던가..

기차가 어둠 속을 달리던 중,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더러 불꽃이 보이는 강을 쳐다보라고 하더니

갑자기 창밖을 내다보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무슨 일인가 가늠할 수 없었던 나는 그냥 밖을 쳐다보기만 했는데..

칠흙처럼 어두운 강가와 강위로 수많은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쁜 처자가 강이 만나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거기가 어딘지 정확한 위치는 여전히 잘 모른다.

하지만 사트나에서 가야로 가는 철로 위에서 만나는 성스러운 강 위에서

사람들은 창가로 몰려들어 강을 향해 기도를 올렸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기차안에서의 짧은 기도 후 그들의 표정은 참 행복해 보였다.

 

  

 

 

 

 

 

이쁜 처자는..처음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밝은 표정을 남기고 나보다 먼저 내리면서

남편이 대신 써 준 주소를 남겨주며 꼭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한 달 후, 나는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찍은 선명하지 않은 사진이지만

그들의 주소로 사진을 보냈다. 생각보다 인도로 보내는 우송료가 비싸지 않았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면서...ㅎ

 

 

 

  

 

 

이윽고 늦은 밤..침대를 펼치고 잠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눈을 뜨고 둘러보니 내 옆에 앉아 있던 두 싱Singh 들이 화장실 옆 빈자리에 앉아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저렇게 다정하게 하고 있었을까..

 

 

 

 

 

 

 

 

 

그런데..

카메라 가방에 넣어 둔 표가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히 탈 때 들고 탔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리 주변을 뒤져봐도 안 보였다.

갑자기 걱정이 차 올랐다.

표 검사원...아직 안 왔는데...어쩌지...???

 

그때, 쌤이 먼 길을 뚫고 찾아왔다.

우리 칸에 자리가 비었어요~~라는 쌤에게,

쌤~~~~나, 표 잃어 버렸떠~~ 했더니,

얼른 가방 챙겨 다른 칸으로 가자고 한다.

내게로 오는 동안 검표원을 만났으니 곧 이리로 올 거란다.

 

헐~~부리나케 짐을 챙겨 일행이 탄 앞칸으로.. 앞칸으로...바쁘게 가는 도중에

검표원이 한참 자는 사람들을 깨워가며 표 검사중이었다.

배낭을 짊어진 나를 보고도 표를 보잔 말없이 그냥 지나쳐 일행들이 모인 곳으로 왔다.

이미 일행들의 표는 다 검사했으니 다시 올 일은 없었다.

 

쌤의 얘기로는,

외국인이 표가 없으면 10배이상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근데, 잠시 전까지 열차 사이에 사람이 왕래할 수 없도록 철문으로 막아 놨었단다.

철문이 걷힌 걸 보고 내게로 찾아 왔다는 쌤..

 

휴~~~~~!

 

잠을 잊고 달려와 준 쌤이 고맙고..

혼자 보내놓고 걱정해준 일행들이 고맙고..

특별한 경험을 나눠 준 열차 안 그들이 고마운 길고도 짧은 밤이었음을..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