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사실 무슨 이름이 따로 있는 건 아닌데, 수녀님들이 하시다 보니 수녀원 호스텔이라고 손쉽게 부르게 된 것 같다. 원래 용도도 호스텔이 아니기 때문에 호스텔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말이지만, 길을 물으면 사람들도 어김없이 이곳을 알려주니 이미 꽤 유명해진 호스텔임은 틀림없다. 이래저래 수녀님들이며 순례오신 분들께 민폐인데 여름 캠프때만 아니면 언제든 와도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시니 어찌보면 머무는 게 참 송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난 솔직히 아씨시라는 도시 자체보다 이 곳에 머무는 게 더 좋았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특유의 안정적인 분위기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이었으니까. 오죽하면 노수녀님이 나 어디 안 돌아다니고 방에만 처박혀 있다고 걱정하셨을까? 하여간 좋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 예약 : 우선 이 곳에 예약을 하고 갈 생각이라면 무조건 현지에 가서 현지 이탈리아 인에게 부탁하는 게 좋다. 나는 다른 숙소들처럼 주소랑 전화번호 달랑 들고 갔다가 연결이 되도 말이 안 통해서 몇 유로 그냥 날렸었다. 아씨시 숙소는 여기말고 다른 곳을 알아온 곳이 없어서 걱정하다가 오르비에토 숙소 아줌마에게 그런 사정을 얘기하고 대신 예약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다행히 친절한 아줌마라 흔쾌해 해 주었다. 대신 전화 걸어서 수녀님이랑 얘기해서 그걸 다시 나에게 영어로 얘기해 주고 내가 하는 말을 다시 이태리어로 말해주었는데, 덕분에 예약을 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영어가 가능하다고 해도 절대 예약할 수 없는 곳이다. 아줌마도 수녀님이 엄청 나이드신 분 같다면서 내가 왜 예약을 못했는지 이해하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예약을 꼭 하고 가야 마음이 편한 분이라면 여기서 이탈이아어를 할 줄 아는 분께 부탁을 하든지, 현지에 이탈리아인에게 부탁해야 할 것이다. 영어하는 수녀님이 계시는데, - 한국 수녀님도 계시고 - 근데 다들 하는 일들이 바쁘셔서 전화를 한다 해도 연결될 확률 거의 제로에 가깝다. 보통들 무작정 예약없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 위치 : 아씨시 역에서 내리면 버스표를 역 안 가게에서 사서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는 per assisi라고 써 있는 곳에서 타면 되고, 그 밑에 시간표와 노선도가 있으니 참고하자. 정류장에 호스텔이라고 써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서 내리면 된다. 어디서 내려야될지 막막하다면 사람들한테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이냐고 물어서 맞다면 내리면 된다. 거기서 내려도 바로 찾아갈 만한 거리는 아니다. 아씨시 버스들이 시내 외곽 쪽으로만 도는데 수녀원은 완전 중심쪽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찾아간다. 거기서 2층 성당에서 바로 보이는 길이 San Francesco 거리다. 그 거리 13번지에 있다. 13번지 찾기가 쉽지 않으니 잘 찾아야 한다. 번지수가 순서대로 있긴 한데 글씨가 작아서 헤맬 수 있다. 하여간 버스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짐들고 가려면 죽어난다. 지그재그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데 난 정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마침 그 때는 도와준다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단단히 다짐하고 가야한다. 잘 모르면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잘들 가르쳐 준다.

* 외부 : 건물이 두 개가 연결된 구조다. 보통 머무는 곳이 13번지인데, 사실 여기는 여름에 캠프 온 초등학생들을 위한 곳이라고 한다. 진짜 순례객들이나 관광객이 머무는 곳은 옆 건물로 식당이 있는 곳인데 그 쪽이 조금 더 비싸다. 거기는 싱글룸, 더블룸등이 갖춰져 있다.

* 내부 : 내부는 말 그대로 수녀원이다. 말했듯 원래 호스텔로 지어진 곳이 아니라 수녀님이 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어 들이신 것이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그야말로 수녀님이 기거하시는 곳이다. 그러니까 호스텔처럼 머물면 절대 안된다. 밤에 일찍일찍 들어가고 조용조용 움직이고 수녀님들 만나면 인사드리고 해야 한다.

머무는 곳은 지하다. 도착하면 수녀님이 방 열쇠를 주실 거다. 방이라기엔 엄청 큰데 침대가 다섯 개 있고 싱크대가 풀로 갖춰져 있고 그릇도 다 있고, 창문 쪽에는 테이블과 책장이 있는 작은 방이 딸려 있으며 샤워시설을 갖춘 욕실이 두 개나 있다. 도미토리라고 불린다. 수녀님들이 청소하시는 곳이라 엄청 깔끔하다. 방 안 시설은 다 활용할 수 있어서 그릇도 설거지만 해 놓는다면 맘대로 쓸 수 있고 조리도 가능하다. 욕실도 크고 깨끗해서 쾌적하고 속옷 빨래 정도는 할 수 있다.

3월에 갔을 때는 아침 저녁으로만 라디에이터가 들어왔는데 따듯했다.

* 가격 : 도미토리에서 잔다면 1박에 15유로로 저렴하다. 원한다면 옆 건물을 쓸 수도 있는데 싱글룸, 더블룸 등을 쓸 수 있다. 내가 물었을 때는 싱글룸이 1박에 25유로였는데, 4박하는 동안 도미토리에 나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서 싱글룸으로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하고 부딪치는 게 싫은 사람이라면 싱글룸을 원한다고 말하면 그 쪽으로 방을 주실 거다.

* 식사 : 보통의 호스텔과 달리 원한다면 아침, 점심, 저녁을 다 먹을 수 있다. 아침은 3유로, 점심, 저녁은 10유로인데 식사가 정말 환상적으로 나온다. 나는 여기서 4박하면서 저녁은 매일 먹고 점심은 2번, 아침은 1번 먹었는데 정말 후회가 없었다.

아침은 보통의 호스텔처럼 간단하게 나오는데 음료가 뜨거운 우유, 커피, 홍차등으로 다양하고 빵도 맛있다. 하지만 그보다 점심, 저녁이 진짜 압권이다. 보통 이탈리아에서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면 아무리 싸게 먹어도 팁까지 15유로 정도 든다. 근데 여기는 팁같은 거 낼 필요 없이 10유로에 물, 와인, 샐러드, 메인 요리, 디저트, 커피까지 다 먹을 수 있으니 그보다 좋을 수가 없다. 게다가 모두 수녀님들이 순례자들에게 대접하려고 정성껏 만드시는 요리다. 이보다 맛있는 요리를 어디가서 먹을 수 있겠는가?

점심은 주로 메인 요리로 스파게티가 나오고, 저녁으로는 고기류가 나온다. 샐러드용 야채는 항상 주시고, 메인 요리와 함께 콩요리나 야채볶음 같은 것이 곁들여져 나온다. 접시에 꽤 많은 양이 나오는데 테이블 단위로 주시고 거기서 먹을 만큼 덜어 먹으면 된다. 더 먹고 싶으면 더 달라고 해도 된다. 나는 한국 수녀님이 어찌다 퍼 날라 주시는지 민망할 정도였다. 디저트로는 과일이 나오는데 그것도 두 세종류가 나온다. 밥 먹는 내내 수녀님들이 옆에서 시중까지 들어주시는데 완전 황송하다.

* 규칙 :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기는 호스텔이 아니라 수녀원이고, 수녀님들과 순례자분들이 머무시는 곳이다. 늦게까지 술먹고 놀고 이런 거 안된다. 아무리 늦어도 10시 전에는 들어가야 하고, 방열쇠는 나갈 때 수녀님께 맡기고 나가야 한다. 식사를 수녀원에서 하고 싶으면 적어도 하루 전에 미리 말씀드려야 한다.  침대에는 도착했을 때 매트리스만 있는데 장에서 자기가 시트와 베개, 담요를 꺼내 직접 세팅 해야 하고 퇴실할 때 다시 다 정리해서 테이블 위에 놓고 나와야 한다. 그 외에는 예의바르게만 지내면 된다. 수녀원에 있다는 걸 잊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

* 친절도 : 친절도를 따지는 게 어불성설인 곳이다. 다들 친절하시다. 특히나 한국 수녀님, 엄마처럼 이모처럼 너무 잘 챙겨주신다. 원래 음식이 이탈리아 식으로 코스별로 서빙되는데 한국인들은 원래 다 같이 먹는다면서 한꺼번에 주시고 필요한 거 없는지 항상 묻고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하신다. 덕분에 아침도 따로 사먹을 필요 없이 저녁에 수녀님이 챙겨주신 빵과 과일로 충분히 가능했다. 여기 도착했을 때가 감기가 옴팡 들었을 때였는데 수녀님이 레몬차 끓여 먹으면 좋다고 친히 레몬까지 구해서 주셨다. 덕분에 도착하고 다음날 감기가 떨어졌다. 그 외에 다른 수녀님들하고는 영어 하시는 두 분을 제외하고는 전혀 말이 안 통했지만 항상 마주치면 인사건네주시고 잘 지내냐고 물어주셔서 좋았다. 덕분에 나도 여기서 이탈리아어로 열심히 인사하고 다녔다.

* 인터넷 사용 : 컴퓨터 자체가 아예 없다. 전화도 나가서 공중 전화를 써야 한다. 대신 안내 책자들이 방에 몇 개 있어서 영어가 가능하다면 이용할 수 있다.

* 주의 사항 : 원래 여름에 캠프오는 아이들을 위한 장소를 그 외 쓰지 않는 시간에 도미토리로 내어주시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여름 캠프 기간에는 간다고 해도 쓸 수 없단다. 여름에 가려는 계획이 있는 분들은 미리 숙박 가능한 지 확인하고 가시길...

이곳은 특이하게 한국인들만 오는 숙소다. 한국에 계신 적이 있었던 수녀님이 찾아오는 한국 사람들을 들여 재우시던 것을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알게 되어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다보니 아예 호스텔의 도미토리처럼 계속해서 사용하게 된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라야 다 한국 사람들이고 그들과 같이 오는 외국인들이 다인 곳이다. 수녀원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한국인들만 찾는다는 것도 특이한 곳이다. 따라서 내가 어떻게 지내고 나오느냐에 따라서 수녀님들께 한국사람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고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는 곳이다. 따라서 머무는 동안 예의바르게 지내고 떠날 때 뒷정리를 깨끗이 해야 한다. 그래야 수녀님들이 계속해서 싼 가격에 그곳을 기쁜 마음으로 다음 한국 여행객에게 내어주실 테니까. 솔직히 나는 다시 간다면 여기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닌 마음도 있다. 이곳만큼 쾌적하고 기분좋게 머물수 있는 숙소를 아씨시에도 또 찾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있는 반면, 그만큼 수녀님들께 민폐를 끼쳐드리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 없는 여행자들에게 아씨시의 이 수녀원은 정말 단비같은 곳일 것이다. 가게 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머무시길 바란다.